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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의 신성장 전략, ‘유럽 그린딜’
정명규 주벨기에·유럽연합대사관 환경관 2020년 10월호


2019년 12월 출범한 새 EU 집행위원회(이하 EU 집행위)는 향후 EU를 이끌어갈 새로운 성장 전략으로 ‘유럽 그린딜(European Green Deal)’을 제시했다. 유럽 그린딜은 EU가 직면하고 있는 기후·환경 위기를 모든 정책 분야에서 기회로 전환시켜 궁극적으로 EU경제를 보다 지속 가능하게 만들기 위한 정책방향 및 실행계획을 담고 있는 로드맵이다. 유럽 그린딜은 온실가스 배출, 자원고갈, 환경오염 등을 수반하지 않고 모든 구성원이 낙오되지 않는, 근대적이고 자원 효율적이며 경쟁력 있는 경제 체제로 전환시키는 새로운 성장 패러다임이 필요하다는 시대적 요구를 반영하고 있다. 앞으로 EU의 정치·경제·사회의 다양한 분야에서 상당한 변화를 줄 것으로 기대된다.
한편 기후·환경 위기에 대응한다는 명분하에 새로운 성장 전략으로 제시된 유럽 그린딜에 대해서는 EU의 기후·환경·노동 규제를 외국 및 외국 기업에 적용해 보호무역 수단으로 악용하거나 EU 기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등 EU의 실익을 취하려는 의도가 숨어 있다는 지적도 있다. 미국, 중국과 함께 EU는 국제 정치·경제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지금까지 여러 선진적인 기후·환경 정책을 개발·이행해 왔다. 이에 유럽 그린딜의 주요 내용과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을 살펴보고자 한다.

2050년까지 기후중립 달성을 목표로 투자계획, 신순환경제 행동계획 등 발표
유럽 그린딜은 2050년까지 EU경제를 온실가스 배출제로 경제로 전환시키는 것을 최상위 목표(overarching objective)로 설정하고, 이를 위해 기후변화, 에너지, 순환경제, 빌딩, 수송, 농업, 생물다양성·생태계, 재정지원, 연구·혁신, 교육·훈련, 국제협력, 이해관계자 참여 등 여러 분야에서 향후 정책방향, 구체적 실행계획, 일정 등을 제시하고 있다. 지금까지 발표된 내용은 다음과 같다.
EU 집행위는 우선 지난 1월 ‘유럽 그린딜 투자계획(European Green Deal Investment Plan)’을 수립했다. 2050년까지 기후중립 경제를 달성하는 등 유럽 그린딜을 이행하기 위해서는 EU, 회원국, 민간 부문의 투자가 필요한바, 이러한 투자를 유인하기 위해서다. 이 계획은 향후 10년간 최소 1조 유로 규모의 기금 조성, 녹색 예산·조달 시스템 구축, 공정전환 지역에서의 국가보조금 승인절차 간소화 등 공공 및 민간 투자를 유도하기 위해 필요한 제도 구축을 주요 내용으로 한다.
화석연료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 저탄소경제(기후중립)로의 전환 시 사회·경제·환경적 비용이 상대적으로 큰 지역 및 부문을 특별히 배려하기 위한 공정전환 메커니즘(Just Transition Mechanism)도 제시됐다. 공정전환 메커니즘은 취약 지역에 2021∼2027년 최소 1천억 유로를 지원하는 공정전환기금(Just Transition Fund) 신설, 유럽투자은행(EIB)의 융자 지원(250∼300억 유로) 등을 통해 지역 난방망과 건물 리노베이션에 대한 투자 지원, 회원국·투자자 등에 기술적 지원을 제공하고 지역사회·지방정부·사회파트너·NGO 등이 참여하는 공정전환 플랫폼이라는 거버넌스 구축 등을 포함한다.
3월 초에는 유럽 그린딜의 핵심 목표인 ‘2050년까지 기후중립 달성’에 법적 구속력을 부여하기 위한 ‘유럽기후법(안)’이 제안됐다. 여기에 담겨 있는 내용은 ‘2050년까지 기후중립 달성’을 법적 구속력 있는 목표로 설정, 영향평가를 거쳐 EU의 새로운 2030년 온실가스 감축 목표 제시(1990년 대비 40% 감축→50∼55% 감축), 새로운 2030년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필요한 관련 법률(온실가스 배출권 거래제 지침, 재생에너지 지침 등) 개정(안)을 2021년 6월까지 제안, 2050년 기후중립을 달성하기 위해 2030년부터 2050년까지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경로를 설정하고 이에 대한 정기적 평가 실시, 특정 회원국의 행동이 기후중립 목표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판단될 경우 EU 집행위가 해당 회원국에 적절한 권고를 할 수 있고 회원국은 이를 충분히 고려해야 하는 의무 부여 등이다.
3월 말에는 전자기기, 정보통신기술(ICT), 배터리, 자동차, 포장, 플라스틱, 섬유 등 주요 상품에 지속 가능한 상품 전략 프레임워크를 도입해 순환경제로의 전환을 촉진하기 위한 ‘신순환경제 행동계획’이 발표됐다. 이 계획은 순환경제를 2050년 기후중립 달성을 지원하는 수단으로 인식하고, 순환경제와 기후중립과의 시너지 효과를 중요시하면서 플라스틱 오염에 대한 적절한 대응, 소비자에게 구매 제품의 지속 가능성 관련 정보를 제공하는 등의 소비자 권리 강화, 생산자가 제품의 전 생애에 걸쳐 성능을 책임지는 모델(product–as–a–service)에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등의 수선권리(right to repair) 수립, 음식물 쓰레기 감축 목표 제시, 식품서비스에서 일회용 포장·식기류 저감, 과대포장 및 포장재 규제를 포함한 폐기물 감축 로드맵 제시 등을 다룬다.
5월에는 2030년까지 유럽 생물다양성이 본격적인 회복 추세로 전환되도록 자연, 농지, 토양, 산림, 재생에너지, 해양생태계, 담수생태계, 도시, 오염, 침투 외래종 등 다양한 분야에서 필요한 조치를 포괄적으로 제시하는 ‘EU 2030 생물다양성 전략’이 발표됐다. 이 전략은 육지와 바다의 30%를 보호구역으로 지정하는 등 일관성 있는 ‘범유럽 자연네트워크(Trans–European Nature Network)’ 구축, 영향평가를 거쳐 법적 구속력 있는 EU의 자연보전 목표 설정, 2030년까지 농약 사용 50% 감소, 2만5천km 강물 복원, 비료 사용 20% 감소, 30억 그루 식목 등 자연생태계를 보호·복원하는 구체적 조치 실시, 2021년 중국 쿤밍에서 열릴 제15차 생물다양성협약 당사국회의에서 생물다양성 손실을 막기 위한 ‘포스트-2020 글로벌 생물다양성 프레임워크’에 대한 합의 도출에 EU가 주도적 역할 담당 등이 제시되고 있다.
앞으로 EU 집행위는 여러 분야를 구체화해 제안할 것이다. 올 하반기에는 지속 가능 화학 전략, 제8차 환경행동 프로그램, 산림 전략, 건물 에너지효율 개선 등이 제안되고, 2021년에는 탄소국경세, 수질·공기·토양에 대한 제로오염 행동계획, 대형 산업시설의 오염 대책 개정 등이 제안될 예정이다.

경제위기 극복 넘어 지속 가능한 저탄소·디지털 경제로의 전환 기대
올해 초부터 전 세계에서 코로나19가 급속히 확산됐고, 이에 대한 대응조치(외출금지, 휴교, 재택근무 등)로 인해 유럽에서도 불가피하게 경제·산업 활동이 크게 위축됐다. 이에 따라 일부 EU 회원국(체코, 폴란드 등)과 경제·산업 단체(유럽사업인연합, 유럽자동차제조협회 등)는 코로나19 대응 및 피해복구에 집중하기 위해 유럽 그린딜 등 EU의 강력한 기후·환경 정책을 완화·연기하거나 심지어 폐지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을 제기했다.
하지만 EU는 오히려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경제위기가 EU경제를 더욱 지속 가능한 저탄소 녹색경제로 전환시킬 수 있는 모멘텀이 될 수 있다고 인식하고, 코로나19와 무관하게 유럽 그린딜을 진행하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EU의 경제회복 계획에서 녹색 전환과 디지털 전환을 핵심 사항으로 부각시키면서, 코로나19로 인한 경제위기로부터의 회복이 EU경제를 단순히 이전의 경제 상태로 복귀시키는 것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저탄소·디지털 경제로 전환시키는 것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특히 7월 17~21일 열린 EU 특별정상회의에서는 코로나19로 인한 유럽의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총 1조8,243억 유로를 조성하고, 이 중 30%를 기후변화 대응 분야에 투자하는 등 유럽 그린딜, 디지털 단일시장 강화, 공정하고 포용적인 경제회복 분야에 재원을 중점 배분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유럽 그린딜 분야 중 일자리 창출과 경제성장의 효과가 큰 분야[건물 리노베이션, 순환경제, 신재생에너지(풍력, 태양광 등), 클린 수소경제, 클린 수송(전기차충전소 100만 개 등)]가 향후 유럽경제를 회복시키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그린 리모델링, 그린 에너지 등 분야에서 한국판 뉴딜과 상호협력 가능할 듯
7월 14일 한국 정부는 기존 경제성장 패러다임의 한계(저성장·양극화), 코로나19 위기로 인한 경기침체 및 사회·경제적 구조 변화(온라인·비대면 수요 증가, 기후위기 대응 시급성, 노동시장 재편 등)에 대응해 대한민국을 선도형경제, 저탄소경제, 포용사회로 전환시키기 위해 ‘한국판 뉴딜 종합계획’을 발표했다. 디지털 뉴딜, 그린 뉴딜, 안전망 강화 3개 분야 28개 세부사업으로 구성된 이 계획을 위해 올해부터 2025년까지 정부예산 약 114조 원(민간 포함 약 160조 원)이 투자될 예정이다.
이것은 EU 경제회복 계획의 방향과도 일맥상통하는 측면이 있다. 특히 한국판 뉴딜 정책 중 일자리 및 신산업 창출 효과가 커서 우선적으로 추진될 10대 대표사업으로 선정된 그린 리모델링, 그린 에너지, 친환경 모빌리티는 EU도 경제회복 계획에서 중요시하는 분야로 한국과 EU가 상호협력할 여지가 있는 분야라고 판단된다.
한편 유럽 그린딜 중에는 EU의 기후·환경 규제를 외국 및 외국 기업이 따르도록 압박하는 수단으로 변질될 우려가 있는 분야도 있다. 대표적인 것이 탄소국경세다. 이것은 외국 기업이 자국에서 생산한 제품을 EU로 수출하는 경우 제품에 대해 일정 비용[EU의 기업이 동일한 제품을 EU에서 생산할 때 EU의 강력한 온실가스 배출 규제로 인해 부담해야 하는 비용(온실가스 배출권 구입 가격 등)과 동일한 수준의 비용]을 부과하려는 것이다. EU 기업은 EU의 엄격한 온실가스 규제로 인해 제품 제조 시 비용이 커져 제품 가격이 비싸지만 규제가 약한 외국의 기업은 상대적으로 느슨한 온실가스 규제로 인해 제품 제조 시 비용이 적어 제품 가격이 저렴해지고, 이에 따라 시장에서 EU 기업이 불리해지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다. 즉 EU로 제품을 수출하는 외국 기업의 환경 비용을 증가시켜 EU 기업의 경쟁력을 높이려는 보호무역주의 수단이 될 우려가 있다. 현재 EU 집행위가 탄소국경세 도입을 준비 중이고 구체적 내용은 2021년 상반기에 제시될 예정이다.
향후 EU는 새로운 성장 전략인 유럽 그린딜의 여러 분야에서 야심찬 개선 목표를 설정하고, 이를 달성하기 위한 제도적 정비를 구체화할 것이다. 이와 동시에 EU는 각 분야에서 글로벌 공동대응을 강화하기 위해 국제협력을 주도하면서 G20 등 주요 국가에 EU의 노력에 동참하고 EU 수준의 적극적 행동을 보여줄 것을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 물론 한국도 포함될 것이다. 실제로 EU는 파리협정에 따라 한국이 올해 말까지 유엔기후변화협약에 제출할 장기 저탄소 발전 전략(long–term low greenhouse gas emission development strategies)과 올해 갱신할 국가결정기여(Nationally Determined Contribution)가 야심찬 수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는 메시지를 지속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앞으로 EU가 유럽 그린딜을 구체화하는 상황을 면밀히 관찰하고 한국이 EU와 즉각 협력할 수 있는 분야와 한국의 실정상 중장기적 측면에서 협력을 고려해야 할 분야를 구분하면서, 글로벌 기후변화 대응이라는 세계 추세에 뒤처지지 않으면서도 한국의 실익을 추구할 수 있는 치밀한 준비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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