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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닝포인트, 특별한 축복
나태주 시인 2019년 08월호

인생은 벽 위에 걸어놓은 그림이나 호수처럼 고요하고 무탈한 것이 아니다. 당연히 실패가 있고 위기가 있고 슬럼프가 있기 마련이다. 거기서 터닝포인트가 생긴다. 터닝포인트는 유턴과는 다르다. 유턴이 가던 길을 되돌아오는 것이라면 터닝포인트는 새로운 길, 낯선 길을 열어감이다. 그것은 선택이고 극복이고 탐험과 같은 것이다.
내 첫 번째 터닝포인트는 20대 중반에 있었다. 실연이 원인이었다. 군에서 제대하고 학교로 복직했을 때 한 교사를 만나 그에게 내 인생의 모든 것을 걸었는데 보기 좋게 딱지를 맞았다. 모든 것을 놓고 싶었고 인생을 포기하고 싶었다. 차마 그러지 못해 근근이 살아갈 때 시에 다시 한 번 열중하게 됐고 그러한 열중이 나를 시인으로 이끌었다. 그 교사가 과감하게 나를 버려준 것이 약이 된 것이다. 만약 그에게 버림받지 않았다면 나는 분명 시인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 당시엔 너무나도 분하고 억울하고 속상한 일이었는데 지나고 보니 그것이 아니었다. 인간의 일은 쉽게 알 수가 없다. 시간이 지나봐야 하고 또 지켜봐야만 한다. 그것이 신의 의도이고 주문사항이다.
두 번째 위기, 그러니까 두 번째 터닝포인트는 50대에 있었다. 시인으로 성장하다가 교직 성장을 위해 전문직으로 근무하던 시절이다. 시의 밭은 엉망이 돼 있었다. 답보상태. 제자리걸음. 문단이나 독자들로부터 잊힌 시인이 돼 있었다. 이래서는 안 되겠다는 각성이 왔다. 그것은 생애 최초로 떠난 유럽 여행길에서였다. 10박 11일 동안 나는 날마다 나를 설득하고 굴복시켰다. 돌아간다. 다시 학교로 돌아간다. 그것이 살길이다. 그다음 해, 다시 학교로 돌아왔다. 모든 것이 새로운 시작이었다. 생각이나 의도대로는 되지 않았다. 행동이 중요하고 습관이 먼저였다. 마음 가는 대로가 아니라 몸이 가는 대로였다. ‘지금까지 하던 대로는 하지 않으리라’가 그 첫 번째 강령이었다. 방송에 출연하지 않는다. 잡문을 쓰지 않는다. 친목 모임에 나가지 않는다. 신문·잡지를 읽지 않는다. 그런 날들이 쌓여 조금씩 변화가 일어났다. 새롭게 연필 그리기도 시작했다. 연필 그리기는 나에게 사물을 바라보는 새로운 방법을 가르쳐줬다. 앞모습보다는 뒷모습, 외면이 아닌 내면을 보게 했다. 역시 이 시절의 내가 없다면 오늘의 나는 없다고 봐야 할 것이다.
세 번째 터닝포인트는 교직 말년 60대 초반에 있었다. 내 몸으로 사고를 친 것이다. 쓸개가 완전히 파열돼 죽을 고비를 겪었다. 아니 죽을 목숨인데 살아난 사람이 됐다. 그것은 하나의 기적. 그 이후, 세상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고 세상 또한 나에 대한 대접이 달라졌다. 다시 한 번 나는 새롭게 태어난 인생이었다.
나의 시, 나의 모든 인생은 위기와 실패에서 나온 결과물이고 나름 터닝포인트를 가졌던 덕분이다. 바라고 원하는 것은 아니로되 인생에서 터닝포인트야말로 누구에게나 있어야 하고 그것은 슬기롭게 극복해야 할 관문, 하나의 통과의례와 같은 것이다. 특별한 축복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그것은 누구나의 인생도 그러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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