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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D 파트너가 필요하다면 벨라루스를 찾아가 보자
주한일 KOTRA 벨라루스 민스크무역관장 2019년 08월호

한 달 전 즈음에 우리나라 중소기업 사장님으로부터 한 통의 편지를 받았다. 약 20년 전 벨라루스 기업과 함께 장비를 개발한 경험이 있는데 그때 개발에 참여했던 현지 엔지니어를 다시 찾고 싶으니 무역관에서 좀 도와 달라는 요청이었다. 광학장비를 제조하고 있는 한국 기업이었는데, 당시 벨라루스 광학기계 제조사와 공동 연구개발(R&D)을 했던 것이다. 다행히 당시 개발에 참여했던 엔지니어가 그 회사에 아직 근무하고 있어 쉽게 연락이 닿았고 한국에 있는 기업에 연락처를 전달할 수 있었다.
IT 프로그램 개발, 알고리즘 개발, 제품 상용화 기술 개발 등 벨라루스 현지의 우수한 연구진을 찾아 달라는 요청을 종종 받곤 한다. 대략 1년에 서너 건씩 그런 요청이 들어오는데, 한국 기업들과 얘기해보면 벨라루스 연구진 및 엔지니어의 기술과 성과에 대한 만족도가 꽤 높은 것을 알 수 있다. 매년 꾸준히 문의가 들어오는 것만 보더라도 우리 기업들 사이에서 벨라루스 출신 연구원과 엔지니어의 실력이 어느 정도 정평이 나 있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구소련 시절부터 알려진 과학기술 강국
구소련 국가들이 전통적으로 뛰어난 과학기술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우리 기업들 사이에서도 잘 알려진 사실이다. 대부분은 과학기술 강국이라고 하면 러시아를 먼저 떠올리곤 하지만 벨라루스도 구소련 시절부터 과학기술 강국으로 손꼽혔던 나라다. 운송장비, 석유화학, 반도체, IT 등 다양한 산업의 기반이 길게는 100년 전부터 자리 잡아 지금까지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인구가 1천만명이 채 되지 않는 나라치고는 제조업 기반시설이 상당히 잘 갖춰져 있는데, ‘스탈린이 제일 아꼈던 국가가 벨라루스다’라는 말이 허튼소리는 아닌 것 같다.
한 가지 차이점이 있다면, 러시아는 천연자원이 풍부한 반면 벨라루스는 천연자원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구소련 붕괴 후 시장개방과 함께 러시아는 자원수출을 통해 비교적 손쉽게 경제부흥의 길을 걸었다. 자원교역으로 쉽게 돈을 벌 수 있어 상대적으로 기술 개발과 R&D에 대한 관심은 점점 줄어들었다. 기초과학·응용과학·상용기술 개발역량이 약해지고 있는 것을 우려해 최근에는 기술역량 강화를 통해 제조업 부흥에 정책을 집중하고 있는 실정이다.
반면 벨라루스는 천연자원이 거의 없는 나라여서 기술과 인력 개발에 더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가진 것이 없어서 오로지 사람이 재산이고, 사람을 교육시켜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는 인식이 강하게 자리 잡고 있다. 2018년에 대통령령으로 발효된 「디지털경제 촉진법」도 이런 인식의 맥락에서 이뤄진 것이다.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대통령은 IT산업이 벨라루스의 미래를 책임질 가장 소중한 먹거리라고 늘 강조하고 있다. 현재 벨라루스는 1천개 이상의 IT기업과 3만명이 넘는 기술 인력을 보유하고 있다. GDP에서 IT 분야가 차지하는 비중은 5.1%에 달한다.
벨라루스는 IT 분야뿐만 아니라 산업기술 R&D 전반에 걸쳐 국가경쟁력을 키우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2018년 기준으로 벨라루스 내 R&D센터 수는 455개이며 연구 인력은 2만7,411명이라고 한다. 이 가운데 박사 인력은 627명이며 석사 인력은 2,864명으로 조사됐다. 특히 나노·바이오·제약·마이크로 산업을 4대 신산업으로 지정하고, R&D 활성화, 스타트업 및 비즈니스 인큐베이팅 사업 확대 등을 목표로 2016년에 벨바이오그라드(BelBioGrad)라는 산업특구를 열기도 했다. 프랑스의 알자스 바이오밸리(Alsace BioValley)를 비롯한 글로벌 클러스터를 벤치마킹했는데, 기술 강국이라는 과거의 영광을 이어가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벨라루스 정부가 R&D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지만, 정부의 재정지원이 넉넉지 않아 R&D 현장에서는 적지 않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벨라루스 정부의 연간 예산은 우리 돈으로 20조원 미만인데, 현실적으로 과학기술 개발, R&D 육성, 인력 양성 등에 충분한 투자를 할 여력이 없는 편이다. 특히 소재 개발, 장비 개발 등 산학협력에 기초한 상생 프로그램은 다소 빈약한 편이다. 기초과학에 대한 투자가 적극적으로 이뤄지지 않다 보니 학생들도 기초과학 분야에 진학하기보다는 IT 분야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프로그램 개발 매니저급의 연봉이 대략 4만달러라고 하는데, 보통 사람들에 비하면 연봉이 3~4배 많은 것이다. 톱 매니저급은 연봉이 10만달러에 육박한다고 하니, IT 프로그램 개발에 우수한 인력이 쏠리는 것이 당연한 일일 수도 있다.
벨라루스에서 화학소재 개발 분야에서 꽤 유명한 교수 한 분을 만난 적이 있는데, 자기 연구실에서 함께 연구할 학생이 점점 없어져 큰 걱정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한국 기업이 연구과제를 준다면 그 연구비용을 활용해 제자들을 양성할 수 있으니 한국 기업과 협력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좋겠다는 것이다. 실제로 벨라루스 기업이나 외국 기업이 산학협력에 투자를 하고 있지만 역시 IT 분야에 집중돼 있다. 기초과학에 기반을 둔 소재 개발 등은 아직 큰 인기를 못 끌고 있는 편이다.

한-벨라루스 기술협력은 양국이 상생할 수 있는 최적 분야
보호무역주의가 확산되고 있는 엄혹한 환경 속에서 우리 산업의 기술경쟁력 강화를 위해 R&D에 대한 투자는 더욱더 강화돼야 할 것이다. 특히 소재·장비 개발에 대한 투자와 경쟁력 확보는 국가경제의 미래를 위해 무엇보다 우선적으로 추진돼야 할 과제다.
이런 점에서 벨라루스와의 기술협력은 양국이 상생할 수 있는 최적의 분야라고 생각된다. 다행히 우리 정부는 벨라루스와의 과학기술 협력에 매우 적극적으로 대처하고 있다. 지난 4월에 열린 제3차 한-벨라루스 과학기술공동위원회에서 양국 간 신규 공동 연구사업 추진, 국가 R&D 정보 종합관리 체계 협력 등이 합의됐다. 나노, 바이오 등 주요 분야를 중심으로 양국 연구 현황과 성과를 공유하고, 벨라루스의 기초과학·원천기술과 우리의 응용기술을 결합한 상용화 협력에 대한 방안도 더 깊이 의논하기로 했다.
우리 기업들이 벨라루스의 연구소·기관과 협력하기 좋은 환경이 갖춰진 만큼 R&D 파트너로서 벨라루스에 대한 관심이 더 높아지기를 기대해본다. 한국에서 해결하기 힘든 과제가 있다면 벨라루스의 문을 한번 두드려보면 좋겠다. 아무리 고민해도 풀기 어려운 문제를 벨라루스에서는 쉽게 풀지도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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