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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 최고? 지구 최악?
허남웅 영화평론가 2019년 08월호

‘지구 최후의 밤’이라니? 지구가 와장창 풍비박산 나는 종말 영화인가? 지구에서의 마지막 날을 앞두고 연인이 에라 모르겠다 뜨거운 밤을 한 번 두 번 에라 또 모르겠다 여러 번 보내는 재난 배경의 로맨스 영화인가? 일단, 중국 영화다. 탕웨이가 주요 인물 중 한 명으로 출연한다. 중국에서 개봉 전 탕웨이가 ‘지구 최후의 날에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영화 관련 주제로 동영상을 업로드하면서 많은 사람의 관심을 모았다.
개봉하자마자 관객들이 ‘지상 최고의 영화’를 볼 기세로 극장에 몰려들었다. 보자마자 ‘뭐 이런 최악의 영화가 있어’ 환불할 기세로 무수한 악평을 쏟아냈다. 그러거나 말거나, 평론가들은 ‘세상에 이런 영화가!’ 왼손 엄지 하나 들었다가 부족한지 오른손 엄지를 하나 더 들어 ‘쌍 엄지’로 열렬한 호평을 갈음했다. 누군가에겐 최악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최고라면 ‘지구 최후의 밤’에 어울릴 만한 영화일 듯하다. 근데 도대체 무슨 얘기야?

꿈이야, 생시야
첫눈에 봐서는 지구 최후의 밤과는 전혀 관련이 없어 보인다. 그래서 도대체 무슨 얘기인지 ‘쉽사리’ 설명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니까, ‘쉬운’ 영화는 아니다. 그래도 ‘쉽게’ 설명하자면, 이 모든 일은 한 친구의 죽음에서 시작됐다고 뤄홍우(황각)는 내레이션으로 밝힌다. 어떤 친구가 죽었나? 친구 A다. 친구 B가 가해자인 것 같다. 뤄홍우는 친구 B를 잡겠다며 친구 B의 애인을 쫓는다.
애인 이름은 완치원(탕웨이)이다. 뤄홍우가 보니 완치원은 엄마와 닮았다. 근데, 완치원은 뤄홍우의 엄마 이름이기도 하다. 뤄홍우는 시간 여행으로 젊었을 적 엄마와 만난 것인가? 또 근데, 뤄홍우가 가지고 있는 초록색 표지의 소설책에는 극 중 이름이 완치원인 인물이 도둑질하러 들어간 집에서 겪은 사연이 담겨 있다. 뤄홍우는 소설을 박차고 나온 캐릭터를 현실에서 만난 건가?
뭔 말인지 알아먹기 힘든 〈지구 최후의 밤〉, 지구 최악의 영화 맞네. 도대체 뭐 하자는 건가. 뭐 하자는 건지 단서가 있다. 영화 시작과 동시에 나오는 뤄홍우의 내레이션이다. “그 여자만 나타나면 난 알 수 있다. 또 꿈이라는 것을. 난 꿈을 꾸는 동안 늘 의심한다. 내 몸이 수소로 된 건 아닐까. 만약 그렇다면 내 기억력은 돌로 만든 게 틀림없다.” 답이 나왔다. 뤄홍우는 기억력이 돌인, 돌아이(?)다.
실은 나도 기억력이 좋지 않다. 과거의 특정 기억을 떠올릴 때면 진실과 거짓이, 진짜와 가짜가, 시간과 공간이, 이 인물이 저 인간인지, 저 인간이 이 인물인지 등등 퍼즐 조각들처럼 마구 흩어져 있어 완벽한 하나의 형태로 맞추기가 용이하지 않다. 아니, 아예 불가능하다. 뤄홍우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 돌아이다. 기억이 돌로 돼 있다. 뤄홍우의 종잡을 수 없는 사연은 돌아가신 엄마의 잘 생각나지 않는 얼굴과 완치원이라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여자와 초록색 표지의 소설이 꿈처럼 마구잡이로 섞인 현실에서의 불완전한 기억의 형태일 것이다.

영화야, 현실이야
불쑥불쑥 찾아오는  뤄홍우의 기억을 깨진 유리창처럼 조각난 이미지로 편집하는 〈지구 최후의 밤〉의 제목은 영화가 시작한 지 1시간 10분이 지나서야 ‘아, 제목!’ 이제야 생각났다는 듯 화면에 등장한다. 이건 또 뭐 하자는 플레이인가. 이 영화의 전반부가 꿈과 생시의 관계를 불명확한 기억의 형태로 제시한 플레이였다면 후반부는 철저히 계산된 영화의 형태로 풀어간다. 단 한 번의 컷 없이 1시간을 ‘연속된 형태(one take one scene)’로 보여줄 뿐 아니라 심지어 3D다. 꿈속 같은 기억의 2D 평면을 영화 속의 입체로 확장한다. 아니다. 확장보다 ‘분리’라는 표현이 정확하다.
우리의 기억이란 꿈과 현실과 팩트와 환상과 아무튼, 현실과 비현실의 요소가 주고받는 탁구와 같다. 다만 탁구대가 등고선의 형태로 들쑥날쑥이라 양쪽에서 탁구채로 핑, 퐁 매끈하게 랠리를 이어가는 게 아니라 불규칙한 형태로 이리 튀고 저리 튀다 보니 예측을 할 수 없어 불완전하다. 영화처럼 기승전결을 가지고 딱 떨어지는 완벽한 형태가 아니다. 욕망도 기억과 같아서 원하는 모든 게 다 이뤄졌으면 좋겠지만, 대개는 불행의 형태로 다가오는가 하면 예상도 못 했는데 행운이 불시에 찾아오기도 한다. 그래서 욕망의 결과물도 기억의 형태처럼 뒤죽박죽이다.
기억 속의 욕망과 영화의 욕망이 ‘분리’되는 건 바로 이런 이유다. 극 중 뤄홍우의 내레이션을 빌리자면, ‘영화는 가짜다’. 그럼 뭐가 진짜냐? 기억은 불명확하니까 진짜라고 하기 뭐 하고, 영화는 현실에서와 다르게 완벽하게 통제 가능해도 인위적이기 때문에 가짜라고 한다면 우리 삶에서 진짜라고 할 만한 건 무엇일까.
빙고! 뭔 말인지 알아먹기 힘든 이야기와 이미지와 형식으로 엉망진창인 것 같은 〈지구 최후의 밤〉의 메시지가 잡히는 것 같다. 삶은 유한하다는 것. 그래서 기쁨은 길지 않다는 것. 우리 삶은 화려하게 피어올랐다 금세 사그라드는 ‘폭죽’과 같다. 삶의 유한에 맞닥뜨린 그 날은 제목처럼 ‘지구 최후의 밤’이라 할 만하다. 유한한 삶을 무한의 ‘시계’로 이끄는 건 타인의 불완전한 기억과 뒤죽박죽인 꿈과 엉망진창인 환상과 같은 요소.
그렇게 이해가 어려웠던 영화 〈지구 최후의 밤〉의 처음과 끝을 이으면 맥락이 없어 보이던 이야기와 이미지의 형태가 선명하게 잡힌다. ‘쉽지’ 않은 영화를 이해하기 ‘쉽게’ 써보겠다고 보무도 당당히 ‘쉽사리’ 자판을 두드렸다가 헤매기를 반복했던 내게는 이 글을 쓰는 동안이 바로 ‘지구 최후의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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