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내용으로 건더뛰기

KDI 경제정보센터

ENG
  • 경제배움
  • Economic

    Information

    and Education

    Center

클릭경제교육(종간)
‘메이드 인 저팬’ vs ‘메이드 인 차이나’
오형규/한국경제신문 생활경제부장 2009.10.29

일본이 머리카락을 세로로 2등분해서 스위스로 보냈다. 세계 최고의 정밀기술을 가졌다는 스위스에 일본의 기술 수준을 한껏 뽐내고 싶어서였다. 그러자 스위스에선 아무 대꾸 없이 머리카락을 4등분해 반송했다. 이에 질세라 일본은 그것을 다시 8등분해 보냈다. 그러자 스위스는 머리카락의 8개 가닥마다 일일이 구멍을 내서 일본으로 되돌려줬다. 그 뒤 일본에선 더 이상 아무 소식이 없었다.

 기술에 관한 한 둘째가라면 서러워 할 일본도 스위스에는 한 수 접는다는 일화다. 물론 실제 이야기는 아니지만 스위스의 정밀기술은 그만큼 알아준다는 뜻이다. 세계에서 가장 정교한 시계를 만드는 나라가 스위스다. 지금도 손목시계 하나가 최고급 승용차보다 비싼 브랜드가 수두룩하다. 올림픽 육상·수영 등의 기록 측정도 스위스 시계업체인 ‘오메가’ 가 독점한다.

 

 신뢰, 경제발전의 중요한 생산요소

 일본도 소형 전자기술에 관한 한 세계 최고다. 1980년대 소니 ‘워크맨’을 비롯해 디지털 카메라, 닌텐도 ‘위(Wii)’에 이르기까지 근 30년간 최고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러니 머리카락 가르기 조크도 나왔을 것이다. 전 세계 소비자들은 ‘메이드 인 스위스’나 ‘메이드 인 저팬’이라면 안심하고 산다. 제조기업의 이름은 못 들어봤더라도 스위스나 일본이란 브랜드가 신뢰의 상징으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중국은 어떤가. 싸다는 점은 인정받지만 품질, 성능, 기술 등에선 미덥지 못한 게 사실이다. 술부터 계란까지 못 만드는 가짜가 없고 멜라민 등 각종 먹을거리 파동이 끊이지 않는다. 이로 인해 ‘메이드 인 차이나’는 ‘싼 게 비지떡’의 대명사쯤으로 인식된다. 아무리 괜찮은 제품이라도 중국에서 만들었다면 소비자들은 의심부터 하고 본다. 한번 쓰고 버릴 것이라면 싼 맛에 사든지, 아니면 거들떠보지도 않든지.

  왜 이렇게 다른 대접을 받을까. 이는 ‘신뢰’라는 사회적 자본에 결정적인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한 나라를 믿을 수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그 나라에서 제품 가격이 현격히 차이난다. 신뢰가 높은 나라 제품은 비싸고 그렇지 못한 나라 제품은 싸다.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케네스 애로우는 “우리가 세계에서 보는 경제적 후진성의 대부분은 결국 상호신뢰의 결핍으로 설명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신뢰도 돈이나 기술과 못지않게 경제발전의 중요한 생산요소라는 얘기다.

 범위를 좁혀 개인 간 거래를 생각해 보자. 친구끼리 단돈 몇 천원을 빌리면서 차용증서를 쓰는 경우는 없을 것이다. 한번 보고 다신 안 볼 사이가 아닌 이상 친구를 믿기 때문이다. 서로 간에 돈 몇 푼에 배신할 가능성은 없다는 믿음이 깔려 있다. 하지만 집을 사고팔 때는 다르다. 제3자(중개인, 법무사 등)가 관여하고 매수자와 매도자는 철저히 따져가며 계약서를 쓴다. 도장도 여러 번 찍어야 한다. 상대방이 중도에 계약을 깨지 못하도록 큰 금액의 계약금도 주고받는다. 매수자와 매도자는 신뢰관계 이전에 계약관계이기 때문이다. 신뢰가 전제된 거래와 그렇지 않은 거래는 비용에도 큰 차이가 생긴다. 친구끼리 돈을 빌릴 때는 다른 비용이 들 게 없다. 말로 거래가 가능하다. 하지만 집을 매매할 때는 중개 수수료, 법무사 수수료 등을 부담하고 모든 것을 법에 근거해 처리해야 한다.

 

 신뢰는 하루아침에 이뤄지지 않는다!

 다시 ‘메이드 인 저팬’과 ‘메이드 인 차이나’로 돌아가 보자. 예컨대, 다이어리를 살 때 가격이 터무니없이 비싸지 않는 한 일본제를 사고 싶어진다. 종이 질이 좋아 보이고 디자인도 예쁜 것 같으니까. 요즘엔 ‘메이드 인 코리아’도 일본산 못지않은 대접을 받는다. 삼성, LG의 LCD TV는 일본제 TV보다 더 높은 신뢰를 얻고 있다. 삼성, LG라는 브랜드가 믿을 수 있는 성능, 만족스런 애프터서비스 등을 담보해주기 때문이다. 야채, 과일, 김치, 쇠고기 등 먹을거리도 ‘국내산’이 ‘수입산’보다 비싸도 믿고 산다.

 이 같은 신뢰는 하루아침에 이뤄지지 않는다. 기업이 자본을 축적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것처럼 브랜드가 소비자들의 신뢰라는 자본을 축적하는 데도 엄청난 시간이 소요된다. 광고만 많이 한다고 얻어지는 게 아니다. 품질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그래서 국가나 기업이나 이미지를 중시한다. 늘 기아, 전염병, 가난, 쿠데타 등이 연상되는 아프리카의 어떤 나라가 최고급 제품을 만들 것으로 믿을 사람은 없다. 한국 제품이 해외시장에서 일본 제품만큼 가격을 받지 못하는 데는 긍정적인 뉴스보다 시위, 다툼, 사고, 파업 같은 뉴스들이 해외 소비자들에게 노출되기 때문이란 점도 무시할 수 없는 사실이다.

 ‘신뢰’는 경제·사회·역사 발전의 동인(動因)이 된다.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그의 저서 「트러스트」에서 “사회에서 불신이 팽배하게 되면 신뢰가 높은 사회에서는 부담할 필요가 없는 일종의 세금을 모든 경제활동에 대한 대가로 지불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차선이 2차로에서 1차로로 좁아질 때 교대로 진입할 때와 서로 먼저 가려고 차를 들이밀 때를 떠올려 비교해보면 쉽게 이해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