맬서스(1766-1834)는 영국의 경제학자다. 지저스 칼리지에서 공부했고, 동인도회사가 관료들을 훈련시키기 위해 설립한 헤일리버리 대학에서 정치경제학과 교수로 일했다. 1798년에 인구론 초판을 익명으로 출판했고. 정치경제학 원리를 1820년에 펴냈다.
맬서스가 살았던 시대에는 인구가 크게 증가했고, 곡물가격이 치솟아 수입해야 했다. 이에 따라 노동자 생계비가 올라가 자본가들의 임금비용 부담이 늘어났다. 반면, 경제발전에 따른 곡가 상승으로 지주계급은 더 많은 지대수입을 올렸다. 자본가계급과 지주계급 간의 이해관계가 아주 상반되게 된 것이다. 이에 대해 리카도는 곡물법 폐지 등 자유무역을 주장하며 자본가계급 편에 선 반면, 맬서스는 지주계급의 편에 섰다.
맬서스는 지대가 비생산적이기는 하지만 지주들이 이를 소비에 지출하여 상품의 판매를 도와준다는 이유로 곡물법 폐지를 반대했다. 자본가들은 소득에 비해 소비지출이 적기 때문에 소비부족, 즉 과잉생산의 문제가 생길 수 있는데 지주와 법률가 등 비생산적 소비계층의 존재가 이를 막아준다는 것이다. 100여년 뒤 케인스는 맬서스가 수요 부족과 과잉생산의 문제를 최초로 지적한 것을 높이 평가했다.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인구와 산술급수적으로 증가하는 식량
당시에 여러 학자들은 인구증가를 예찬하고 인류의 행복에 대해 낙관론을 폈다. 당시 수상 피트는 인구감소를 우려하여 정부의 빈민구제수당을 늘리기도 했다. 맬서스는 이러한 낙관론에 찬물을 끼얹었다. 인구론 초판에서 맬서스는 벤자민 프랭클린이 제공한 미국의 통계자료에 근거하여 인구는 25년마다 두 배로 증가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인류는 1, 2, 4, 8, 16, 32, 64, 128, 256, 512이라는 식으로 증가할 것이고, 식량은 1, 2, 3, 4, 5, 6, 7, 8, 9, 10이라는 식으로 늘어날 것이다. 따라서 225년 후에는 인구와 식량의 비는 512대 10이 될 것이고….”
그냥 두면 어떻게 될까? 인류의 다수는 불행해질 수밖에 없다. 유아 살해, 유행병, 전쟁, 기아 등으로 수많은 인류가 쓰러져갈 것이다. 이것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 그러면 이러한 비참을 피할 방법은? 결혼 늦추기, 성생활 자제 등 출산억제를 통해 인구 증가를 억제시켜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도덕적 억제는 인간의 본능을 억제하는 것이기 때문에 빈민들로서는 실천하기 어렵다. 그러므로 비참, 기아 등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이다.
맬서스의 불길한 예언에 나라 전체가 떠들썩했다. 그는 영아 살해와 비참을 권유하고 빈민구호에 반대하는 비정한 사람이라는 비난을 받았다. 맬서스의 글을 읽고 나서 토마스 카알라일은 경제학을 ‘우울한 학문’이라 했다. 그러나 맬서스의 경고가 먹혀들었는지 수상 피트는 아동 출생을 부추긴다는 이유로 빈민구호를 축소했다.
식량위기와 환경파괴는 여전히 중요한 문제
1970년대 초반까지 세계 인구증가 전망은 맬서스의 선견지명과 들어맞는 듯했다. 적어도 저개발국들에서는 분명 그랬다. 당시 인구학자들은 그냥 내버려두면 50년 후 세계인구는 다섯 배로 늘어난다고 예측했다.
그러나 맬서스의 우울한 예언은 다행히 빗나갔다. 인구폭발이라는 함정에서 유럽사회를 구해준 것은 무엇일까? 녹색혁명, 즉 화학비료 투입에 따른 농업생산 증가와 함께 산아제한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많은 사람들이 도시로 옮겨 살게 되면서 자녀 양육이 부담이 되자 자녀를 여럿 두지 않고 한두 명만 키우게 된 것이다. 그 후 개도국에서도 경제발전에 따라 인 증가율이 낮아졌고, 1970-75년 사이에 인구증가율은 사상 최초로 둔화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맬서스 이론의 교훈은 지금도 중요한 의의를 가진다. 인구가 25년마다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는 것은 분명 과장이었다. 그러나 인구 증가가 농업생산의 증가를 압도하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는 맬서스의 주장은 옳았다. 식량뿐만 아니라 석유, 물 등 자연자원 사용 증가의 한계도 점차 드러나고 있다. 최근 식량부족에 따라 식량가격이 폭등하고, 화석에너지 과다 사용에 따른 지구 온난화는 더 이상 방치할 수 없게 되었다. 맬서스의 경고는 우리에게 인구증가 억제와 소비억제, 환경보전의 필요성을 일깨워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