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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스튜어트 밀-사회개혁을 옹호하다
장상환/경상대 교수2009.11.04

 존 스튜어트 밀(1806-1873)은 영국의 철학자이자 경제학자이다. 『정치경제학원리』(1848)는 베스트셀러로 생전에 무려 일곱 판이나 찍었고, 1919년 마샬의 『경제학원론』(1890)으로 대체될 때까지 옥스퍼드대학의 교과서로 쓰였다. 세 살 때부터 그리스어를 배우기 시작했고, 13세 때 정치경제학 공부를 시작하여, 고전파 경제학자들의 저서를 독파했다. 엄격한 공리주의자였던 아버지와 둔한 감성의 어머니 밑에서 자란 탓에 한 때 신경쇠약에 걸리기도 했다.
 밀은 헤리어트 테일러라는 남편 있는 여성을 20여년간 순수한 친구로서 교제하다가 그녀의 남편이 사망한 후 1851년에 결혼해서 7년간 같이 살았다. 그녀의 영향을 받아 『여성의 예속』 등으로 여성의 권리를 옹호하는 주장을 했다. 1858년까지 35년 동안 영국 동인도회사에 근무했고, 현실 정치에도 참여해서 1865-68년간 하원의원을 지내기도 했다. 
밀이 활동했던 시대에 산업혁명 등으로 자본주의는 성숙했지만 자본가-노동자 간의 계급갈등과 노동자 대중의 빈곤과 무지 등 자본주의의 문제점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1825년을 계기로 주기적 공황도 발생했다. 이를 배경으로 오웬, 생시몽, 푸리에 등의 사회주의 사상이 대중들 사이에 퍼져나가 사유재산에 기반한 자본주의체제를 위협하고 있었다. 

 

 자유주의 옹호와 점진적 사회개혁
 밀은 고전파 경제학을 계승하여 자유주의를 견지하면서도 사회주의의 주장을 일부 수용하여 분배의 개선과 사회의 점진적 개혁을 주장하는 이론을 폈다. 밀은 생산을 증가시키는 데 중요한 것은 자본축적이므로 사유재산을 보장해주고 적절한 보상을 해주어야 투자위험이 따르는 자본축적이 촉진된다고 했다.
 밀은 가치의 크기에 따라 가격이 결정된다는 고전학파의 노동가치론을 떠나 획득의 난이도뿐만 아니라 소비의 효용도 가격에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했다. 일반적인 공산품처럼 비용상승 없이 공급량을 늘릴 수 있을 경우에는 평균적인 생산비용에 의해 가격이 결정되지만 고급 포도주처럼 공급량이 완전히 제한된 경우에는 가격이 수요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이다.
 밀은 생산은 물리법칙에 의해 지배되는 분야로서 인위적으로 할 수 없지만 분배는 법이나 제도 등으로 인간이 변경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초기에는 임금으로 지급되는 기금이 일정하며, 노동자 개인의 임금액은 이 기금총액을 노동자총수로 나눈 것이라는 임금기금설을 주장했지만 뒤에 가서 이를 포기하고 이윤을 저하시켜 임금을 인상할 것을 옹호했다.
 밀은 비례세를 옹호했다. 평등한 조세는 희생의 평등을 의미하는데 누진세는 열심히 일하고 더 많이 저축하는 사람을 제재하는 것으로 ‘온건한 형태의 도둑질’이라는 것이다. 대신 상속재산은 기회의 평등을 저해한다는 이유로 상속세를 무겁게 매길 것을 주장했다. 그리고 보통 노동자들이 무지의 늪에서 빠져 나올 수 있도록 보편적 의무 교육을 강조했다.
 밀은 현실의 자본주의에 대해서는 비판적이었고 말년에 가서 사회주의에 가까워져 갔다. 부분적 실험을 통해서 진전시키려 하고 기여에 따른 분배를 주장하는 오웬 등의 점진적 사회주의는 수용했다. 그러나 절대적 평등을 주장하고 중앙 기구가 생산을 결정하는 공산주의는 경제활동 동기를 저해하고 표현의 자유를 억압할 것이므로 실행될 수 없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절충적 경제사상의 한계
 자유주의자 밀은 표현의 자유를 강력하게 옹호했다. 표현의 자유가 완전하게 허용되어야 권력자의 횡포, 다수대중의 횡포로부터 개인을 보호하고 사회는 진보할 수 있으며, 틀리거나 해롭다는 이유로 의견 표현을 가로막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다만, 의견을 표현하는 방식은 대중연설이나 저술이어야지 다른 사람에게 직접 피해를 주면 안 된다고 했다.
 밀은 절충적인 경제학자로 불린다. 그의 경제사상은 고전파, 신고전파, 개량적 사회주의 등이 뒤섞여 있다. 자유주의를 옹호하면서도 자본주의의 모순을 시정하기 위해 자유방임을 배격하고 제한적인 정부 개입에 찬성했다. 당시 시대적 여건에 따른 모색이자 한계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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