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카소 그림을 언제 처음 보았는지는 잘 기억이 안 나지만, 그의 <우는 여인>을 보았을 때 피카소는 왜 얼굴 모습을 그렇게 기괴하고 우스꽝스럽게 그렸을까 하는 의문이 한동안 풀리지 않고 남아있었다. 정작 그 해답의 실마리를 발견한 것은 피카소의 초기 ‘청색시대’ 작품인 <늙은 기타리스트>를 우연히 보게 되었을 때였다. 나는 다시 <우는 여인>을 찾아 비교해보면서 피카소가 사물의 실체를 파악하는 방식이 어떻게 변화했는지 생각해 보았다.
마치 초등학생 아이가 그린 것 같은 그림인 <우는 여인>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피카소의 머릿속으로 들어가서 그의 시선으로 재조립해 보아야만 한다. 그는 하나의 시점(視點)에서 바라본 사물의 평면적인 모습이 그 실체를 보여주는 것은 아니라고 보았다. 그는 사물의 본질을 완전한 형태로 그리고 싶어 했고, 입체적 형태의 본질을 2차원의 평면에 표현하기 위해서 형태를 면으로 해체한 후 예술적 영감으로 재구성하여 입체로 표현하려고 한 것이다.
경제학을 처음 접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수요·공급 곡선에 관한 기초이론을 배운다. 이 수요·공급 이론은 정태적이고 한 시장의 변화를 다루며 다른 시장의 변화는 일단 고려하지 않는다. 한 시장 안에서 수요곡선을 도출할 때도 수요에 영향을 주는 수많은 요인들을 전부 고려하지 않고 수요량과 가격의 움직임만을 다룬다. 마치 화가가 한 시점에서 사물을 2차원의 평면으로 바라보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다. 다른 변수들의 움직임을 분석에서 제외하기 위해서 경제학자들은 대단히 편리한 가정을 내세운다. 소위 ‘다른 조건들이 일정(ceteris paribus)’하다는 가정이다. 이에 기초한 분석방법을 ‘부분균형분석’이라고 한다. 이 같은 분석은 화가로 말하자면 다른 시점에서 본 평면적 모습들은 잠시 잊어버리고 원근법과 같이 고정된 단일시점 방식에 따라 그리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피카소는 사물의 본질을 파악하는데 한 부분만을 보는 부분적 분석을 통해서는 그 본질적 구조를 알 수 없다고 판단했던 것 같다. 그는 여러 시점에서 동시에 그 사물을 관찰하고 투시해 보려고 했으니 마치 여러 개의 시장을 동시에 보려는 ‘일반균형이론’을 다루는 경제학자의 눈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일반균형이론은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의 개념에서 비롯된다. 그 후 레옹 왈라스를 거쳐서 1960년대에 케네스 애로우와 제라르 드부루는 경쟁적 시장에서 일반균형상태가 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했다. 피카소는 마치 애로우와 드부루가 보이지 않는 시장균형상태를 보여준 것처럼, 그냥 눈에 보이는 것 이외에 그 사물의 보이지 않는 이면도 보여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는 분석적이며 논리적인 해체 방식과 그 해체된 대상을 재구성하여 그만이 그릴 수 있는 독특한 아름다움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데, 그것이 바로 피카소가 위대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