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노벨 경제학상의 공동 수상자 중 한 명인 로이드 섀플리(Lloyd Shapley) UCLA대 교수는 수상 소감을 묻자 “나는 경제학 강의를 한 번도 들은 적이 없는 수학자(I consider myself a mathematician and the award is for economics. I never, never in my life took a course in economics.)”라며 수상 소식에 대단히 놀라워했다고 한다. 이렇듯 일반적으로 노벨 경제학상은 저명한 경제학자들만의 전유물이 아닌가 생각하는 경우가 많지만, 오늘날 경제학이 타 학문과 영향을 주고받으며 발전하는 과정에서 경제학자가 아닌 인물들이 수상하는 사례도 종종 일어나고 있다.
노벨 경제학상 ≠ 노벨 경제학자상
우선 경제학 분석에 있어 수학적 모델의 중요성이 갈수록 높아짐에 따라 수학자들이 노벨 경제학상 수상에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이 중 우리에게 가장 친숙한 인물은 아마도 존 내쉬(John Nash)가 아닐까 싶다. 섀플리 교수의 친구이기도 한 그는, 경제학을 전공하지 않은 이들도 한 번쯤은 들어보았을 ‘게임이론’으로 1994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하였다. 게임이론은 경제주체들의 상호 의존적인 상황을 분석하는 데 적용되는 경제이론의 한 분야로, 내쉬는 ‘내쉬균형(Nash equilibrium)’이라는 비협조적 게임의 균형개념을 제시하여 이 분야의 눈부신 발전을 이끌었다. 그는 또한 『뷰티풀 마인드(A Beautiful Mind)』라는 소설과 동명의 영화를 통해서도 일반 대중에게 널리 알려져 있는데, 극 중에서 러셀 크로우(Russell Crowe)가 맡은 정신분열증을 앓는 천재 수학자의 이야기가 바로 내쉬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응용 수학의 한 분야로 시작하여 그에 의해 발전의 전기가 마련된 게임이론은 오늘날 경제학뿐만 아니라 정치학·경영학·심리학·군사학 등 여러 학문에 폭넓게 활용되고 있다.
정치학자가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사례도 있다. 그 주인공은 바로 엘리너 오스트롬(Elinor Ostrom)으로, 70여명의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중 유일한 여성이기도 하다. 그녀는 UCLA대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고 인디애나대 정치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공공선택이론에서 제도가 개인의 행동에 미치는 영향을 주로 연구했다. 특히 기존의 경제학자들이 ‘공유지의 비극’ 문제를 사적 소유권의 설정이나 정부의 개입으로 해결하려고 했던 것에 반하여, 그녀는 이것이 만병통치약이 아님을 주장하며 공동체의 역할을 강조하였다. 그리고 마침내 사회 공유재산에 대한 경제적 지배구조 분석의 공로로 2009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하였다. 당시 그녀가 경제학보다는 주로 정치학이나 행정학에서 유명세를 떨치던 인물이었기에 그녀의 수상에 대해 고개를 갸우뚱하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한다. 최근 심리학에 기반을 둔 행동경제학 분야가 각광을 받으면서 심리학자가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사례도 있다. 그 대표적인 인물은 2002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대니얼 카너먼(Daniel Kahneman) 프린스턴대 명예교수다. 전통적인 주류 경제학과 기대효용이론이 인간의 합리성을 바탕으로 하는 것과는 달리 그는 의사결정이 반드시 합리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하며, 인간 심리에 관한 다양한 연구를 통해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였다.
융합과 통섭의 시대
앞에서 살펴본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들의 사례에서도 엿볼 수 있듯이, 오늘날 학문 간 융합과 통섭의 시대를 맞아각 학문의 고유영역이 사라지고 그 경계를 구분 짓기 애매한 이론들이 끊임없이 등장하고 있다. 경제학도 그리 길지 않은 역사 동안 철학·정치학·수학·심리학·법학 등 다른 학문들과 끊임없이 영향을 주고받으며 발전해온 것이 사실이다. 경제학과 별개라고 생각했던 전공으로 진로를 설정한 학생들도 앞으로는 경제 문제에 좀 더 관심을 가져보는것도 좋을 것 같다.
임효상 KDI 경제정보센터 연구원/ hyosang@kdi.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