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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릭경제교육(종간)
은밀하게 거대하게, 조세피난처
송홍선/ 자본시장연구원 펀드연금실장 2013.06.28

조세피난처(tax haven)란 문자 그대로 세금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는 안식처이다.  인류 역사상 국가가 있고 소득이 있는 곳에 세금이 있는 것은 불문율의 이치임에도, 역설적으로 가장 진화된 국가형태를 가진 현대자본주의에서 조세피난처는 오랫동안 번영을 누려왔다. 국가 간 무역과 자본이동이 없었다면 조세피난처도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조세피난처는 무역과 자본거래의 당사자들에게 세제상 이익을 제공하는 공간이기 때문에 내국인이 아닌 비거주자(외국인)에게 유익한 제도이며 자국민의 탈세와 관련된 지하경제와는 구별된다. 1990년대부터 조세피난처가 급성장한 것은 무역과 금융의 글로벌화가 이때부터 급진전된 것과 무관하지 않다. 세계화에 따른 국가 간 자본 유치경쟁에 조세정책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것도 중요한 이유 중 하나이다.

 

 


그런데 조세피난처는 단순히 세율이 낮은 곳이 아니다. 이들이 제공하는 조세 혜택은 낮은 세율 때문이기도 하지만 소득원천(세원)에 대한 관대함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도 조세피난처를 지정하면서 낮은 세율외에 조세정보교환(비밀주의), 조세행정의 투명성, 실질경제활동 수행 여부 등 네 가지 기준을 제시했다. 실제 조세피난처를 지정할 때 투명성과 비밀주의 정도가 중요한 기준이 되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무역이나 자본거래는 속성상 자금흐름이 복잡하여 세원을 확정하기 어려운데, 조세당국의 비밀주의가 강할 경우 탈법 가능성은 그만큼 커지게 된다. 조세피난처로 지정된 40여개 지역은 단순히 세율이 낮기 때문은 아닌 것이다.

 


그렇다 보니, 조세피난처는 단순히 역외탈세를 목적으로 한 자금뿐만 아니라 자금세탁·테러자금·금융범죄 등에 악용되고 있고, 조세피난처 시장규모가 커짐에 따라 전 세계 금융시스템을 위협하는 위험요인으로 부각되고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글로벌 의제로서 조세피난처의 중요성이 점점 커지고 있는 것이다.

 

 

| 전 세계에 포진한 조세피난처들


조세피난처는 19세기 미국에서 생겼다. 뉴저지주·델라웨어주 등 지금도 기업하기 좋은 몇몇 주에서 규제를 대폭 완화하고 세율을 낮추면서 이후 스위스 등으로 확산되기 시작했다.

 

조세피난처 성장의 직접 계기는 유러시장(eurocurrency market)의 성장이다. 미국의 경상적자·오일머니 등으로 인해 늘어난 역외달러를 거래하는 유러시장이 급성장하면서 그 자금을 관리하기 위해서 조세피난처의 수요가 크게 증가한 것이다. 케이만·채널 제도 등이 영국 등 국제금융센터에서 운용되는 유러달러의 계좌를 관리하는 지역의 역할을 했던 것이다.

 


전후 유러시장이 급성장하면서 1990년대까지 조세피난처는 일종의 황금기를 누렸다. 유러시장의 중심에 있던 영국이 가장 적극적인 조세피난처의 공급원이 되었다. 카리브해에 역외금융센터들이 생겨났고, 유럽지역에도 런던을 중심으로 한 동심원 모양의 역외금융센터들이 완성됐다. 아시아지역에도 싱가포르 등이 아시아판 유러시장을 염두에 두고 형성됐다.

 

OECD는 40여개 조세피난처를 세율에 따라 무세국, 저세율국, 국외소득 면세국(tax shelter), 특정 사업 혹은 기업 조세우대국으로 나눈다. 버뮤다·케이만제도·바하마 등은 무세국에 해당하며, 최근 한국인 계좌가 발견된 영국령 버진아일랜드, 싱가포르, 네덜란드 앤틀레스 등은 저세율국,홍콩·말레이시아 등은 국외소득 면세국, 마지막으로 최근애플사의 조세회피처로 활용된 아일랜드·룩셈부르크 등은 특정 법인 혹은 사업소득 조세우대국으로 분류되고 있다.

 


지역적으로는 유럽지역, 아시아, 카리브해 연안 등에 밀집되어 있다. 유럽지역은 국제금융자금의 운용중심지인 런던이라는 역내(onshore) 국제금융센터를 지원하는 저지섬·맨섬·채널제도·스위스·아일랜드·네덜란드 등의 조세피난처들이 포진해 있다. 아시아는 싱가포르, 홍콩, 말레이시아 라부안 등의 조세피난처들이 유럽계 자본과 중국 등 아시아계 자본의 역외 거점 역할을 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가장 큰 조세피난처는 케이만·버뮤다·바하마·버진아일랜드 등 카리브해 연안에 있다. 미국과 지리적으로 인접한 지역으로 대부분 영국이 종주권을 가진 영국령 해외영토들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영국이 조세피난처와 관련해서 비난을 많이 받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비밀주의로 인해 조세피난처의 전체 자산규모를 알 수는 없으나, 추정 기관마다 5조 달러에서 21조 달러로 상당한 편차가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2009년 금융자산 기준으로 5조 달러를 추정하고 있는데, 이는 미국·독일·프랑스 세 나라의 국경 간 자산(cross-border asset) 8조 달러보다는 적지만 조세피난처들의 경제규모나 인구규모와 비교하면 놀라운 수준이다. 전 세계 외국인직접투자(FDI)의 30%가 조세피난처를 경유한다는 연구도 있다.

 

케이만제도와 버뮤다는 조세피난처의 빅 2이다. 요즘 언론에 자주 등장하는 영국령 버진아일랜드는 아시아 국가, 특히 중국이 가장 선호하는지역이다. 약 60개 섬으로 이루어진 인구 28,000명의 영국령의 작은 해외영토이지만, 약 45만 개의 역외기업이 설립돼 활동하고 있고, 케이만제도 다음으로 역외펀드가 많이 설립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 점점 더 정교해지는 조세회피


조세피난처는 제공하는 서비스에 따라 크게 역외금융센터 기능과 역외경영관리센터기능으로 나눌 수 있다. 조세피난처는 역외금융센터로서 다국적기업들의 금융자회사를 유치한 후 다른 지역이나 나라에 있는 자회사들의 자금조달과투자활동을 지원한다. 또한 조세피난처는 역외경영관리센터로서 다국적 기업이 경영관리를 목적으로 설립한 자회사를 유치한 후, 다른 자회사들의 광고·회계·연구개발·법률자문 등의 업무를 지원한다. 사실 이 모든 기능들은 합리적인 이전가격(transfer price)을 통해 이루어져야 하나 조세피난처는 조세행정의 투명성이 낮고 비밀주의가 강해 이전가격의 적절성을 판단하기가 쉽지 않으며, 역외탈세 수단으로 악용되기도 한다.

 


시대가 변함에 따라 조세를 회피하는 방법도 다양해지고 있다. 고전적인 개인의 조세회피 방법은 거주지를 직접 이전하는 것이다. 법인의 경우는 그 방법이 더욱 다양하다. 다국적기업은 상품과 서비스의 판매, 투자 등의 실물경제활동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조세피난처를 활용한다. 상품 제조국가에서 판매국가로 직접 수출을 하지 않고, 조세피난처에 세운 자회사를 거쳐 판매한다. 이 경우 판매이익에 대한 세금을 조세피난처 과세당국이 주로 과세하게 되므로 낮은 세율로 수출하는 효과가 발생한다. 수출기업이 아니더라도 국내에서 발생한 소득을 국외소득으로 전환함으로써 국내의 높은 과세 부담을 피한다.

 

이른바 검은머리 외국인들은 국내 기업이 조세피난처에 회사를 설립한 후 국내에 투자하여 양도차익 등을 절세하는 방법이다. 자회사가 아닌 지주회사(모회사)를 조세피난처에 설립하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다.  조세피난처에 설립한 지주회사는 각국에서 실제 경제활동을 수행하는 자회사를 경영하면서도 각국의 기업 규제나 금융규제를 회피할 수 있으며 배당소득과 특허권의 자회사판매 등으로부터 발생한 소득을 세 부담 없이 조세피난처에 축적할 수 있다.

 

 

송홍선 자본시장연구원 펀드연금실장/ dna0214@kcmi.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