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재정 수요 증가에 따른 세원 부족의 문제가 크게 대두됐다. 이에 따라 특히 다국적 기업들이 역외에 조성하고 있는 이른바 역외 세원에 대한 분석과 역내 환수 조치를 본격적으로 모색하게 된다. 소득의 역외 이전과 과세표준 잠식의 면모가 드러난 것도 이에 따른 것이다. 특히 2012년과 2013년에 열린 미(美) 상원 청문회의 역외 탈·절세 문제에 대한 논의 결과, 은밀하게 가려져 왔던 애플·마이크로소프트(MS) 등의 공격적 절세 내막이 공개됐다.
| 다국적 기업의 공격적 탈·절세
애플 법인은 다수가 아일랜드에 소재한다. 아일랜드는 12.5%의 최고 법인세율을 갖추고 있으나, 다국적 기업의 유럽법인을 유치할 노력의 일환으로 해당 기업과 협상을 통해 세율을 낮춰주고 있다. 미 상원 조사에 따르면 애플은 2% 정도의 세율 특례를 제공받고 있다. 캘리포니아 쿠퍼티노 소재 애플 본사는 애플의 비즈니스 모델의 강점인 R&D 및 마케팅 전략 수립에 있어 핵심적 역할을 한다. 하지만 애플은 R&D 및 마케팅 전략에 관련된 사용권의 상당 부분을 아일랜드 법인에 이전하고 미국 외에서 발생한 소득의 거의 대부분을 초저세율 국가인 아일랜드 설립 법인에 귀속시키고 있다. 즉 세계 각지에서 발생한 매출 대부분에 대한 납세를 현지 국가에서 하지 않고 지적재산권 사용료 명목 등으로 아일랜드에 보내고 있는 것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정작 아일랜드에서조차도 2%대의 세금을 납부하고 있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아일랜드는 경영 및 지배가 이루어지는 국가가 조세권을 행사하도록 조세제도가 마련되어 있는데, 아일랜드 애플 법인은 경영 및 지배가 아일랜드에서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는 이유로 현지에서 납세를 회피하고 있었다. 이를 통해 2009년부터 2011년까지 3개 조세년도 동안 발생한 총 380억 달러의 세전 소득에 대해 이루어진 납세 실적은 2천 1백만 달러에 불과했다. 세율로치면 0.06%에 지나지 않는다. 상원 청문회에 출석한 애플 조세 담당 임원은 애플 아일랜드 법인은 미국에서도 아일랜드에서도 납세자 신분을 유지하고 있지 않다고 했다. 이는 애플 아일랜드 법인은 국가의 징세권이 미치지않는 영역에 존재하고 있음을 공언한 것과 다르지 않다.
MS의 사례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미 상원 보고서에 따르면 MS는 R&D 활동의 85%가 미국 현지에서 이루어지고 있지만 그 산물인 지적재산권 사용권 상당부분은 조세피난처인 푸에르토 리코, 아일랜드, 싱가포르 등지로 이전시켜 놓았다. 이를 통해 최근 3년간 210억 달러를 역외로 이전시킨 후 45억 달러에 달하는 조세 회피를 이루어 낼 수 있었다. 미 예산처 및 상원에 따르면 현재 미국 S&P500 지수에 편입되어 있는 대기업의 현금성 자산 중 60%가 미국 정부의 손이 미치지 않는 역외 조세도피처 등지에 머물고 있으며, 그 총규모는 약 1조 7천억 달러에 이른다고 한다. 이런 공격적 역외 탈·절세 행각은 일반 납세자인 시민들에게 현격한 조세부담을 주게 된다. 미 예산처가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1950년대 전체 연방 세수 중 근로자가 부담하던 비중은 10%, 기업의 몫은 30%대에 달했다. 그러나 1970년대 이래 기여도는 역전됐다. 2010년에 이르러 근로자의 고용세 비중은 40%대로 치솟았으나 기업의 몫은 8% 수준으로 격감했다. 게다가 시대와 무관하게 개인소득세는 40%대를 유지하고 있다. 즉 시민 납세자의 총 부담은 80%대에 육박하는 반면 기업의 몫은 10%에 미치지도 못하고 있는 것이다.
| 조세피난처에 대한 대응
역외 조세피난처에 대한 대응은 그 성격상 개별 국가 차원과 다자간 또는 국제적 차원으로 구분하여 살펴볼 수 있다. 각국은 우선 역외 조세피난처에 은닉된 자산을 파악하고 그에 관련된 신고 의무와 처벌 수준을 높이고 있다. 이에 선제적으로 나선 미국은 역외 자산 보유에 대한 신고를 세금 보고 시뿐만 아니라 재무부에도 따로 보고하는 제도를 마련했다. 또한 전통적으로 징세 당국 등에 부과해 오던 탈세 의심 사례에 대한 입증 책임을 납세자에게 전가하는 조치를 도입했다. 대표적인 것이 ‘포괄적 정보제출 명령제도’다. 세무 관련 쟁송에 있어 탈세 의심자의 정체가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았더라도 세무 당국 등이 법원으로부터 정보 제출 명령장을 발부 받아 관련 기관이 보유한 정보에 접근할 수 있게 하는 제도다.

한편 다자간 및 국제적 차원으로 우선 논의되고 있는 것은 역외 조세피난처에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영국 등에 대한 실제적 압력 행사다. 영국은 1900년대 들어 영국 근교의 왕실보호령 3개국인 저지·건지·맨섬을 비롯해 카리브해권역에 산재한 영국령 해외영토를 중심으로 한 역외 조세피난처의 발흥에 원인제공자란 비판을 받고 있다. 일례로 영국 금융가에선 ‘저지로 가든지 아니면 감옥을 가라(Jersey or jail)’란 표현이 유행한 적이 있다. 즉 영국 현지에서 하기에 불법성이 뚜렷한 거래를 하려면 저지로 가서 하면 된다는 말이다. 카리브해권의 보물섬들은 미국 남북전쟁 당시 영국 무기밀매상들의 거점이었던 바하마를 비롯해 미국 조직폭력배들의 자금세탁 및 도피처이기도 했던 케이만제도, 버뮤다 등을 포함한다.
이곳의 금융 비밀주의 및 조세도피 체제는 아직도 실제적 영향력을 유지하고 있는 영국의 의지에 따라 철폐 또는 개선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이 중론이다. 비밀주의 특성상 개별 국가의 정보 접근이 어려운 역외 조세도피 행각은 조세정보교환 체제의 실효성을 배가시킬 수 있는 조치 마련도 요구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양자 간 ‘조세정보 교환협정’을 맺을 때 준거가 되는 이른바 ‘모델 협약(Model Convention)’을 마련한 바 있으나, 그 효과는 실망스러웠다. 현 체제하에서는 특정 국가 간에 협정을 맺은 경우라도 정보교환을 요청하기 위해서는 까다로운 선제조건을 만족시켜야만 했던 것이 큰 이유다. 탈세혐의를 입증하고 특정 개인의 정체와 계좌 또는 관련 법인 등의 정보를 요청하는 국가가 요청 전에 파악하기 어려운 내막을 구체적으로 제시한 이후에야 정보 제공 요청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한계를 탈피하고자 하는 것이 ‘자동 조세정보 교환협정’이다. 이에 따라 기존 협정 체제에 존재했던 정보 요청시 사전 장벽이 없어지게 되어 빠르고 효과적인 정보 접근이 가능할 것이라는 기대가 크다. 또한 다국적 기업들의 공격적인 역외 절세 행위인 역외 조세피난처에 설립된 법인에 지적재산권 사용권과 소득을 이전하여 과세표준을 침식하는 것을 막는 방안도 고려되고 있다. 실제 발생 매출 기여도, 투자 및 시설 규모, 종업원 수 등을 근거로 해 징세할 몫을 산정하는 일종의 공식을 마련해 실질적 경제 기여도에 따른 과세를 하자는 것이다. 이것이 제대로 적용되면 역외 조세피난처로 소득 이전을 통한 절세 또는 탈세는 힘들어지게 되고 삼성전자나 현대자동차처럼 다국적 기업들의 핵심적 경영 중심지이자 거대 시장이기도 한 우리나라와 같은 역내 체제는 제 몫의 세원을 되찾게 되는 데 큰도움을 받게 될 것이다.
이유영 조세정의네트워크 동북아챕터 대표/ y.younglee@yaho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