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폐는 물물교환경제에서 발생하는 여러 가지 거래비용을 절감하는 수단으로 등장하였다. 물물교환경제에서 거래가 이루어지려면, 먼저 판매자(seller)가 내놓은 물건을 구매자(buyer)가 원하는 동시에 구매자도 판매자가 원하는 물건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즉, 물물교환은 욕망의 이중적 일치(double coincidence of wants)를 보장하는 거래상대를 찾아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 거래가 어려운 상황에서 교환이 가능해지는 매개체, 화폐
하지만 화폐경제에서는 그저 자신이 생산한 물품을 화폐와 교환하고, 여기서 받은 화폐로 원하는 물품을 구매할 수 있다. 즉, 욕망의 이중적 일치가 충족되는 상대방을 찾는데 드는 막대한 거래비용을 줄이거나 없앨 수 있으며, 단지 두 단계의 거래를 통해 원하는 교환을 할 수 있다.
한편 물물교환에서 판매자와 구매자 사이에 욕망의 이중적 일치가 있어도 판매자가 내놓은 재화의 질(quality)에 대해서 구매자가 잘 모르고 있다면 거래가 쉽게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판매자는 정보의 비대칭성을 이용하여 가능한 한 적은 비용을 들여 생산한 가짜 또는 짝퉁(bad quality)을 구매자에게 속여 판매하려 할 것이고, 이러한 판매자의 경제적 유인을 인지하고 있는 구매자는 판매자로부터 짝퉁 구매 가능성을 우려하여 거래를 꺼릴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만약 모든 사람들이 그 질을 확인할 수 있는 물건을 화폐로 사용한다면 판매자는 자신이 생산한 양질의 물품을 구매자의 화폐와 교환하고, 여기서 받은 화폐로 자신이 원하는 다른 양질의 물품을 구매하면 된다. 즉, 판매자와 구매자 간 정보의 비대칭성에서 오는 거래비용을 줄이면서 화폐를 이용하여 원하는 교환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물물교환 시 판매자와 구매자 사이에 욕망의 이중적 불일치나 정보의 비대칭성 문제로 인해 거래가 이루어지기 어려운 상황에서 교환을 가능하게 할 수 있다는 점에서 화폐는 교환의 매개수단(medium of exchange)이 된다. 역사적으로 볼 때 화폐, 즉 교환의 매개물로 사용된 재화에는 돌, 조개껍질, 곡물, 금속 등이 있었다.
| 화폐를 교환수단으로 사용하기 위해 필요한 조건
그러나 어떤 실물이든지 모두 화폐로 사용되기에 알맞은 것은 아니다. 화폐로 사용되기 위해서는 상당한 정도의 내구성이 있고, 액수에 비해 크기가 작아서 운반에 편리해야 한다. 동시에 소액으로 세분될 수 있어 소액거래에도 편리해야 하고, 누구나 그것의 진위를 알아차릴 수 있어서 위조할 가능성이 적어야 한다. 이런 측면에서 금이나 은과 같은 금속은 조개껍질이나 곡물보다 화폐가 되기에 훨씬 더 알맞은 재화라 볼 수 있다.
그런데 교환의 매개수단 기능을 제대로 발휘하려면 공급량이 너무 적어도 곤란하며, 또 그 공급량이 한꺼번에 과도하게 증가해도 문제가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한 때 금이 화폐로 많이 사용되었지만 그 공급이 충분하지 못하여 금의 사용을 줄여야 할 상황에 직면하게 되었다.
이러한 상품화폐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지폐와 주화가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지폐 · 주화는 금화 · 은화와 달리 상품으로서 내재적 가치(intrinsic value)는 없지만 상품화폐가 가지고 있는 장점뿐만 아니라 공급량이 필요에 따라서 얼마든지 증가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또 상품화폐는 생산비가 상당히 높은 반면, 지폐와 주화의 생산비는 매우 낮다. 공급에 대한 적당한 통제가 없다면 공급량이 과다해져서 화폐가치가 하락할 우려가 있다. 이에 따라 지폐 · 주화의 생산은 점차 정부가 중앙은행을 통하여 독점적으로 관리하는 법정화폐(legal tender)가 되었다. 그러나 실제로 정부가 지폐발행을 관장하는 경우 지폐가 남발되어 심각한 물가 상승의 해악이 나타나기도 했다.
한편 경제가 발전하면서 거래량이 증가하고 거래 단위가 커짐에 따라 지폐 사용에도 여러 가지 불편함이 나타났다. 이에 은행의 요구불예금(demand deposits)에 기반을 둔 수표와 체크카드 같은 교환의 매개수단이 지폐 · 주화 사용의 불편을 완화해 주었다. 수표를 이용한 거래는 거액거래에 편리하고 도난의 우려가 적을 뿐만 아니라 거래 후 기록이 남는 이점이 있다. 이 밖에 어음 및 신용거래도 판매자와 구매자 간의 교환을 성립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교환의 매개수단이라고 할 수 있다.
| 타 교환수단과 달리 채권 · 채무관계가 완전히 소멸되는 화폐
그러나 화폐 이외에 교환 매개수단의 경우 그것이 지불됨으로써 일반적으로 거래당사자 사이의 채권 · 채무관계가 완전히 소멸되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요구불예금은 은행의 부채이므로 은행이 충분한 지불능력을 갖고 있을 때에만 수표에 의한 지불체계가 안정적으로 유지되기 때문이다.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까지 주기적으로 경제공황이 발생했을 때 은행이 대규모로 파산하고 화폐경제가 위협받았던 사실은 자본주의 경제에서 은행의 공신력이 가지는 중요성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어음도 비록 그것을 매개로 교환은 이루어졌다 하더라도 어음에서 약정한 금액을 약속된 날에 지급하기 전까지는 채권 · 채무관계가 완전히 소멸되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은행예금과 어음은 일반적으로 교환의 매개수단은 될 수 있어도 완전한 지불수단(means of payment)은 아니다. 반면에 화폐(지폐 및 주화)는 그것이 거래에 사용될 때 채권 · 채무관계 자체도 소멸되므로 교환의 매개수단인 동시에 지불수단이 된다. 화폐 이외의 교환 매개수단은 일반적으로 불완전 계약이행(limited commitment)의 문제를 갖고 있기 때문에 지불수단은 되기 어려운 것이다.
오늘날 정보기술 등의 발달로 인해 물물교환에서 나타나는 판매자와 구매자 간 욕망의 이중적 불일치와 정보의 비대칭성 문제가 상당히 해소되었다고 해도 불완전 계약이행의 문제가 존재하는 한, 화폐는 교환의 매개수단 및 지불수단으로서 거래를 성사시키는데 필수적인 역할을 할 것이다.
김영식 서울대학교 경제학부 교수
kimy@sn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