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29일 도서정가제의 적용 범위를 확대하는 내용의 출판문화산업진흥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통과되었다(각종 할인 제도로 인하여 오프라인 서점, 특히 동네서점에 불리한 기존 도서정가제의 단점을 보완 -편집자 주). 그간 정가제 대상에서 제외했던 실용서와 초등학교 학습참고서가 정가 판매 대상이 되었고, 발행일로부터 18개월이 지난 도서(이른바 ‘구간’)의 경우 무제한 할인이 가능했던 것이 제한된다. 할인가로 구매했던 각종 도서관도 일반 소비자처럼 정가에 구입해야 한다. 다만, 완전한 정가 판매가 적용되는 것은 아니고 15%의 할인율(10% 이내의 가격 할인을 포함한 마일리지 등의 경제적 혜택)이 인정된다. 따라서 18개월 미만 도서(신간)에 적용되던 총 19%의 할인율(10% 가격 할인과 판매 가격의 10%에 상당하는 마일리지 등의 경제적 혜택 합산)이 4% 줄어들게 된다. 개정된 법은 정부가 5월 중 공포하고, 그로부터 6개월 후인 올해 11월 무렵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 도서정가제란 무엇인가
도서 생산자가 매긴 가격이 소비자가격이 되도록 하는 제도
독일 · 프랑스 · 네덜란드 · 스페인 · 일본 등에서도 도입
도서정가제란, 도서의 생산자인 출판사가 붙인 가격을 소비자 구입 가격으로 정하는 수직적인 가격 구속(정해진 가격대로 판매해야 하는 고정가격제)이다. 공정거래법에서 지칭하는 ‘재판매가격 유지 행위’에 해당한다. 현재 자유경쟁 가격이 아닌 재판매가격 유지 상품에는 신문(일간지)과 도서 등이 있는데, 신문은 할인율이 전혀 없는 반면, 도서는 상당한 할인율을 인정하고 있어서 엄밀한 의미에서는 정가제 상품이라기보다 할인 제한 상품에 가깝다. 우리나라에서 도서는 부가가치세 10%가 면제되어 이미 10% 할인 효과가 있다는 것도 참조할 만하다.
다른 나라의 상황을 보면, 미국과 영국 등의 영어권을 제외한 독일·프랑스·네덜란드·스페인·일본 등 대부분의 출판 선진국에서 도서정가제를 도입하고 있다. 5%까지의 할인율만 인정하는 프랑스에서는 최근 아마존닷컴(프랑스 법인) 같은 인터넷서점으로부터 오프라인서점을 보호하기 위해 도서정가법(일명 ‘랑법’)을 개정했다. 갈수록 영향력이 커지는 인터넷서점을 제어하고, 동네서점들과의 ‘평등한 경쟁’을 위해 인터넷서점이 무료 배송과 5% 할인 중 한 가지만 선택하도록 한 것이다. 동네서점을 지역의 문화유산이자 중요한 문화적 생태환경으로 인식하는 프랑스 정부와 국회가 내린 결단이다.
| 소비자의 선택과 지역문화 생태계
무한 할인 경쟁 속에서 동네서점은 생존하기 어려워
자구 노력과 소비자의 선택이 동네서점의 존폐를 좌우
한국에서 도서정가제가 처음 민간에 도입된 것은 1977년이었다. 같은 책이면 전국 어디서든 동일한 가격으로 판매되는 일물일가(一物一價) 제도가 정착되면서 경제성장, 고등교육 인구의 확산과 더불어 서점 수가 급증했다.
그러나 1990년대에 들어 할인마트 및 인터넷서점 등 할인판매 기반의 업종이 성황을 이루고, 2003년부터 시행된 도서정가제 법제화 이후에도 구간에 대한 무제한의 할인이 인정되는 등 큰 폭의 할인으로 인해 자본력과 할인 여력이 없는 중소서점들은 급속히 감소했다. 1994년에 5,683개로 정점을 찍은 전국의 서점 수는 2013년에 1,625개로 무려 71.4%가 사라졌다. 지역마다 명망이 높던 향토서점들은 이제 대부분 자취를 감추었다. 인터넷서점의 높은 할인율, 그리고 인터넷서점보다 공급 가격이 15% 안팎 높은 출판사의 공급률 차별을 견뎌낼 오프라인 서점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인터넷서점에서 책을 사서 파는 동네서점까지 등장했을 정도이다.
전국 읍면동(3,468개) 두 곳 중 한 곳에는 이미 서점이 없다. 완전한 도서정가제가 있어도 수요 감소로 서점 경영이 어려운 마당에, 무한 할인 경쟁을 강제하는 ‘무늬만 정가제’ 체제에서 경쟁력을 상실한 동네서점들이 살아남기를 바라는 것은 연목구어(緣木求魚)에 가깝다.
소비자의 선택은 자유이지만, 때로는 매우 ‘정치적인 선택’을 의미한다. 또 가격 할인을 싫어할 소비자도 없지만, 동네서점이 사라지는 것을 원하는 소비자도 없을 것이다. 어떻게 해야 할까. 미국 어느 지역에서는 주민들이 대형서점이나 인터넷서점이 아닌 지역서점 이용 운동을 벌이거나, 서점과 학교가 이용 협약을 맺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서도 부산의 청소년책 전문서점인 인디고서원, 경기도 일산의 어린이책 서점인 알모책방 같은 곳에서는 학습참고서 없이 100% 정가 판매를 하지만 수준 높고 재미난 독서 동아리 모임 등을 하며 매력적인 서점상을 만들었다. 물론 제도의 변화도 중요하다. 하지만 그보다도 서점들의 자구 노력과 더불어, 지역민들의 지역서점 이용 활성화로 지역의 문화적 생태계를 울창하게 만들어 나가려는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백원근 한국출판연구소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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