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겨울의 어느 날, 오랜만에 친구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중국의 천진(天津, 톈진)한국국제학교를 가게 되었다는 설레는 목소리를 듣게 되었다. 그 친구의 도전 정신에 감동했고, 무엇보다 부러웠다. 통화 이후 교직에 대한 정체성 고민을 거짓말처럼 끝낼 수 있었다. 모든 신경을 해외 학교생활에 맞추고, 평생의 교직 여행 중에 가장 의미 있는 경험을 하고 싶었다.
그렇게 스스로를 추스르고, 해외 학교 공문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10월 공문 확인, 11월 1차 합격, 면접 합격, 11월 23일 대련(大連, 다롄)한국국제학교 교감선생님의 합격 통보를 통해 도전을 성사시킬 수 있었다. 대련에 가던 날, 남이 할 수 없는 경험을 쌓을 수 있다는 점에 매우 감사했고, 내 인생에서 가장 보람 있는 일을 할 수 있다는 점에 고무되었다. 그래서 주변인들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웃으면서 대련으로 출발할 수 있었다.
| 다른 나라, 같은 학생
대련은 1900년대 중국의 대표적인 항구도시로서 러시아와 일본의 식민 지배를 받았던 아픈 기억을 지니고 있는 도시이다. 대련 시내에는 러시아 거리 유적지와 일본 양식의 건물들을 쉽게 볼 수 있다. 또한 일본의 영향력을 오랫동안 받은 지역이기에 중국 내에서 반일 감정이 상대적으로 적은 도시이기도 하다.
대련에는 중국 및 외국 계열의 조선소가 많이 입지하고 있다. 많은 외국인들, 특히 일본인과 한국인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다.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경제 활동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물가가 중국 다른 도시들에 비하여 비싼 편이다.
그러나 수많은 외국문화가 있어도 대련은 중국의 도시일 뿐이다. 빨래비누 맛의 시향차이, 애벌레 크기의 번데기꼬치를 맛있게 먹는다든지, 저녁마다 광장에서 옹기종기 모여 춤을 춘다든지, 시장에서 모든 물목을 저울에 달아서 팔며 한 근을 500g으로 규정한 부분이라든지, 전세가 없고 월세를 1년 단위로 내야 되는 점 등은 대한민국과는 분명히 다르다. 그래서 이곳 대련이 중국의 도시라는 점을 매일 깨달으며 생활하고 있다.
우리 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은 분명 중국에 살고, 중국의 법을 지키며 살아가지만 매일 대한민국을 가슴에 품고 살아간다. 한국 프로야구 경기를 보고 자신이 좋아하는 팀을 응원하거나, 한국 아이돌 가수를 보고 열광하고, 졸업 이후에는 한국에 있는 대학을 꿈꾸고, 세월호 참사를 보며 함께 마음 아파하기도 한다.
학생들에게 학교는 한국 문화가 여전히 유지되는 소중한 공간이다. 여기에 있는 학생들은 매일 한국 문화를 지키고자 노력하며, 한국인으로서의 자부심을 지니고 있다. 머나먼 타국에서 정체성을 지키며 살아가는 그들에게 아낌없는 관심과 사랑을 주어야 한다는 점이 교사로서 큰 과제이지만, 대한민국 교사로서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지키고 있는 학생들이 매우 자랑스럽다.
| 한국 입시제도가 학생들을 제약해
현재 7학년(중학교 1학년) 담임교사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우리 반 아이들은 비싼 수업료를 지불하고 학교에 다니고 있다. 아침 8시까지 등교하여 저녁 4시 35분에서야 하루 일과를 마치는데, 무려 1교시부터 8교시까지 수업이 진행된다.
그러나 아이들은 지치지 않는다. 그들은 이미 초등학교 때부터 국제학교 체계에 적응이 되어 있다. 학교는 하루 일과의 중간 과정이며, 그들은 또 사교육 시장에서 영어와 입시 교육을 받기 때문이다. 이것은 비단 7학년뿐만 아니라 10학년까지 학생들의 하루 일과이다. 또한 11·12학년은 대입 체제에 편입되어 야간자율학습 등이 하루의 일과에 포함된다. 학교에서 열심히 공부하고 가정이나 학원으로 가서 더 나은 스펙을 위해 또다시 공부한다.

이 글을 읽는 한국 독자들에게는 너무 당연한 이야기일지 모르지만 여기가 대한민국이 아닌 중국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중요한 시사점을 안겨준다. 한국의 입시제도가 재외한국학교의 교육시스템을 결정한다는 것이다. 아이들은 가족 모두가 중국 내에서 살며, 희망하는 대학에 입학하고자 특례입학을 선택하고, 좁아진 특례입학 전형 그리고 다른 나라에 있는 특례입학 대상 학생들과 경쟁하고 있다. 전 세계 한국 국적의 특례 대상자들은 모두 경쟁 상대일 뿐이다.
아이들은 특례 입학에 필수적인 HSK, TOEFL 등의 스펙을 쌓고자 정말 열정적으로 공부하고 있다. 또한 아이들의 대학 입학을 위해 학부모들은 한국의 학부모들만큼 뒷바라지하며, 학교는 학생들을 더 좋은 상급학교로 진학시키고자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 한국에서와 마찬가지로, 아이들에게 더 좋은 대학, 더 나은 취업을 시시각각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나 스스로도 경쟁을 부추기고 있으며, 아이들은 현재 시간에도 한국처럼 머리를 싸매고 공부를 하고 있다. 대한민국 아이들은 외국에서 공부하는 또래 학생들을 부러워하고 있지만 실상은 국내 사정과 다를 바 없다.
사실 이 글을 쓰는 필자는 대련에 입국한 지 석 달도 안 되는 새내기일 뿐이다. 그런 주제에 중국에 대하여 왈가왈부하는 미안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본교를 포함하여 총 32개의 재외한국학교에서 오늘도 재외한국학생들을 위하여 최선을 다하는 대한민국 교사가 있다는 점을 알리기 위해 글을 써보겠다고 마음먹었다. 오늘도 한국보다 열악한 근무 환경이나 처우에서 한국보다 많은 업무량을 소화하며 교직 생활을 이어가고 있는 우리들의 목적은 하나이다. 학생들이 조금 더 나은 미래를 준비할 수 있도록 아낌없는 관심과 사랑을 먼 이국땅의 대한민국 학생들에게 뿌려 나감으로써, 교사들은 학생들의 정체성과 자부심 향상에 기여하는 것이다.
사실 필자는 교사로서의 나태함을 자책하며 값진 경험을 쌓고자 대련에 왔고 분명 새로운 도전에 성공했다고 자부했다. 그러나 석 달이 지난 현재에는 먼 이국땅에서 살고 있는 학생들을 알게 되었다는 점, 그리고 그들과 소통할 수 있다는 점, 그들에게 좋은 스승으로 자리매김해야 한다는 점에 큰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 대련에서의 교직 생활은 새로운 도전에 대한 성취가 아니라 새로운 도전의 시작일 뿐이다. 두려움도 있지만 교사로서 더욱 발전하기를 기대한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오늘도 학생들과 함께 대련한국국제학교에서 즐겁게 근무하고 있다.
권흥재 중국 대련한국국제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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