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케팅에서 감성이 핵심적 개념으로 떠오르면서 소비자의 감성을 자극할 수 있는 다양한 마케팅 기법이 부각되고 있다. 그 중에서 최근 주목받고 있는 것이 바로 ‘스토리텔링’ 기법이다. 제품의 기본적 사양에 관한 정보를 소비자에게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제품에 얽힌 이야기를 전달하는 것으로, 소비자가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느끼는 감정을 제품에서도 느낄 수 있도록 하는 마케팅 전략이다. 스토리텔링 기법은 특히 소비자가 브랜드와 제품에 감정적으로 동요할 때 소비를 결정한다는 점에서 소비자의 감정을 잘 활용하고 있다.
| 디즈니랜드에 왜 가는 걸까?
소비자가 감정적 동요를 일으킬 만한 스토리는
일회적인 소비가 아닌 반복적·충성적 구매를 유발해
스토리의 중요성은 문화가 중요한 산업으로 부상되면서 더욱 강조되고 있다. 미래학자 롤프 옌센(Rolf Jensen)은 “사람들은 쓸모 있는 상품보다 자신의 꿈과 감성을 만족시키는 상품을 구매하는 경향이 있다. 사람들을 매혹시키는 것은 상품의 사용가치나 교환가치가 아니라 그 상품에 깃들여 있는 이야기이다.”라고 말함으로써 스토리텔링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스토리, 즉 이야기란 유아기에 엄마가 읽어주는 동화에 잠이 들고, 청소년기에 만화를 보고, 어른이 되어 드라마를 보고, 소설을 읽는 등 평생을 살아가면서 우리를 항상 흥미진진한 긴장과 감동의 세계로 이끄는 마술과도 같은 존재이다. 그렇기 때문에 제품과 브랜드에 소비자가 감정적 동요를 일으킬만한 스토리가 부여된다면 소비자의 일회적인 소비가 아닌 반복적이고 충성적인 구매가 일어나는 것이다.
월트 디즈니(Walt Disney, 이하 디즈니)는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기업’으로서 스토리텔링의 효과를 가장 잘 활용하고 있다. <라이온 킹>, <미녀와 야수>, <인어공주> 등은 전 세계의 어린이들이 공감하는 너무나 유명한 애니메이션들이다. 이를 본 아이들은 디즈니 캐릭터가 사용된 제품을 고집한다. 아이들뿐만 아니다. 애니메이션을 보고 성장한 어른들 역시 아이리버에서 나온 미키마우스 모양의 mp3를 사용하고, 푸우 캐릭터 무늬 티셔츠를 입는다. 왜 우리는 미키마우스 제품을 사용하고, 디즈니랜드에 가는 것일까? 그것은 바로 제품을 사용하고, 디즈니랜드에 가면서 애니메이션을 볼 때와 똑같은 감정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다른 예로 아모레퍼시픽의 녹차 브랜드 ‘설록’이 있다. 설록이 소비자에게 건강한 녹차 브랜드로서 인식된 것은 아모레퍼시픽 창업주가 이 분야의 사업을 시작하게 된 이야기가 알려지면서부터였다. 아모레퍼시픽 창업자 서성환 회장은 우리나라에 차 문화를 만들고자 제주도 불모지를 개간하였다. 개간된 땅 ‘설록 다원’은 황무지 같았던 척박한 땅에서 초록빛 건강한 녹차 밭으로 바뀌었다. 다원에서 자란 녹차는 좋은 품질로 재배되었고, 대량생산 시스템이 갖추어지면서 설록이라는 브랜드로 제품 생산이 되어 판매되었다.
설록의 인기로 국내 최초 차 박물관 ‘오설록 뮤지엄’이 2001년에 설립되면서 제주도의 유명 관광지가 되었고, 커피를 판매하는 카페가 만연한 도시에서 건강한 녹차를 전문적으로 판매하는 ‘오설록 티하우스’가 여성 소비자에게 큰 인기를 끌고 있다. 브랜드가 탄생된 이야기가 소비자에게 전해지면서 우리나라에 차 문화를 만들고자 했던 창업자의 마음이 함께 전달된 것이 성공의 비결이었다. 또한 이 이야기는 미국 소비자에게까지 전달되어 미국시장에 진출한 아모레퍼시픽의 브랜드 신뢰도를 높이는 데도 큰 역할을 하였다. 소비자에게 좋은 품질의 녹차를 만들었다고 광고하는 것은 전달력과 진정성에 한계가 있다. 하지만 처음 사업을 시작할 때의 창업자의 마음이 그대로 전달됨으로써, 소비자들은 스토리 없는 커피보다는 스토리 있는 설록을 선택할 수 있었다.
| 우리는 대~한민국!인데, 브라질은?
젊은 소비자들이 사용하는 용어를 공부하거나
이들에게 설문조사한 결과를 바탕으로 제품을 내놓아
제품 탄생의 숨겨진 이야기를 소비자에게 공개하면서 소비자의 감정을 움직이는 경우도 있지만, 제품에 맞는 스토리를 지어냄으로써 스토리를 마케팅 전략으로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
요즘 가장 눈에 띄는 사례는 알록달록한 '비타민워터'의 라벨에 적혀진 스토리다. 혹시 매장에 노란색, 흰색, 자주색 등 6가지 색과 맛을 내는 병들이 진열되어 있는 것을 본 적이 있는가? 글라소 비타민워터(이하 비타민워터)는 코카콜라가 2009년 여름에 출시한 건강음료다. 뉴욕에서 큰 인기몰이를 한 비타민워터는 미국, 영국, 캐나다, 프랑스, 호주를 거쳐 아시아에서는 처음으로 한국에 출시되었다. 비타민워터는 6가지 다른 맛을 단순히 레모네이드 등으로 표기한 것이 아니라 각각 다른 색의 라벨에 스토리를 적어 음료의 효과를 설명하였다. 노란색 라벨 ‘energy(tropical citrus)’에는 ‘우리는 대한민국! 을 외치며 박수로 장단을 맞추는데 브라질 친구들은 엉덩이를 씰룩이며 응원을 하더라고요. 뭘 먹고 저렇게 잘 노는 걸까… 흠. 이 음료에는 비타민 B와 브라질 사람들이 즐겨 먹는다는 과라나가 들어있어요. 그래서 프리미어리그에서 뛰시는 완전 유명한 선수들을 볼 때, 더 더욱이나 한밤 중 생중계라면 권하고픈 음료랍니다.’라는 재미난 문구가 적혀있다. 소비자는 스토리를 읽으며 맛을 떠올리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선택하면 된다.
코카콜라 측에 따르면 라벨에 쓸 스토리만 작성하는데 6개월 이상이 걸렸으며, 특히 브랜드팀 직원들은 젊은 소비자들이 사용하는 인터넷 용어들을 별도로 공부했다고 한다. 비타민워터는 한국에 출시된 지 1년이 되지 않았지만 젊은 세대에게 큰 인기를 끌고 있으며, 2009년 신세대에게 가장 많이 팔린 워터 제품에 꼽힐 정도로 소비자의 사랑을 받고 있다.
코카콜라가 최근에 내놓은 스토리텔링 패키지 ‘Share a Coke(코카콜라를 나누자)’도 매우 재미있는 프로모션이다. 상대방에게 전하고 싶은 말을 전달할 수 있도록 제품 라벨에 ‘닉네임’ 또는 ‘메시지’가 표시된 게 특징으로, 22종의 라벨메시지는 ‘우리가족’, ‘자기야’, ‘친구야’ 등의 닉네임과 ‘잘될거야’, ‘사랑해’, ‘최고야’ 등으로 구성돼 있다. 이는 지난해 코카콜라가 10~30대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너의 마음을 보여줘’를 바탕으로 선정된 단어들이다. 특히 닉네임과 메시지를 어떻게 조합하느냐에 따라 다채로운 스토리텔링이 가능하기 때문에 서로의 마음을 주고받기에는 매우 독특하고 매력적인 일종의 메신저가 될 수 있다.
사실 가까운 사람들에게 자신과 상대방에 대한 마음을 이야기하기가 가장 어렵다. 따라서 평소에 상대방에게 속마음을 말하고 싶었으나 전하기 어려울 때 코카콜라가 마음을 전하는 매개의 역할을 해줄 수 있다는 것으로 소비자들의 감성을 자극하고 있다. 소비자는 자신이 원하는 스토리를 직접 만들 수 있기 때문에 능동적 참여라는 색다른 재미도 누릴 수가 있다.
이제 기업의 마케팅 전략에서 스토리텔링은 필수적인 기법이 되고 있다. 소비자들은 그저 그런 제품을 사기보다는 그래도 뭔가 스토리가 있고 의미를 부여할 만한 제품을 찾고 있다. 따라서 진부하고 단순한 스토리보다는 소비자가 공감하고 흥미를 가질만한 그런 스토리가 필요하다. 그것도 진정성이 있고 진실한 스토리가 되어야 한다. 기업의 마케팅 전략은 점점 유형적인 제품만의 경쟁이 아니라 제품 안에 깃든 스토리와 같은 무형적인 차원의 경쟁으로 확대되고 있다. 앞으로 기업에 작가가 채용되는 시대가 멀지 않은 것 같다.
정연승 단국대학교 경영학부 교수
jys1836@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