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가 지나치게 빠르게 상승하는 현상을 인플레이션이라고 부른다. 여기서 ‘지나치게’의 기준은 나라나 시기에 따라 다르지만 지금은 선진국에서 연간 물가상승률이 3%를 초과하면 대체로 인플레이션 문제가 있다고 판단한다(경제의 안정성이 선진국에 비해 떨어지는 개발도상국의 경우 기준이 이보다 다소 높다). 물가상승률이 정말 극단적으로 높은 악성 인플레이션이 있는데 이를 초인플레이션(hyper-inflation)이라고 부른다. 연간 물가상승률이 대체로 200%를 넘으면 초인플레이션이라고 판단한다. 이런 상황에서는 화폐가치에 대한 신뢰가 상실되기 때문에 경제가 가히 파멸적인 상황에 이른다.
| 1920년대 독일, 막대한 배상금으로 초인플레이션 발생
역사상 가장 심각한 초인플레이션은 1920년대 초 독일에서 발생하였다. 1921년 6월부터 1924년 1월 사이에 독일은 급격한 물가상승을 겪었다. 이 초인플레이션의 마지막 1년 동안은 연간이 아닌 월간 물가상승률이 300%를 웃돌았다. 2년 남짓한 기간 동안 독일의 물가는 무려 10억 배 가량 상승하였다. 1923년 11월 1일 빵 1파운드의 가격은 30억 마르크였으며, 소고기 1파운드의 가격은 360억 마르크였다. 빠른 물가상승률 때문에 상점의 물건 가격표는 시간 단위로 변경되었다. 엄청나게 높은 가격을 지불하기 위해 역사상 최고액권이 발행되었는데, 무려 1조 마르크짜리 지폐가 발행되기도 하였다.
그러면 이러한 초인플레이션이 발생한 원인은 무엇일까? 몇 가지 가설이 있지만 가장 설득력 있는 설명은 제1차 세계대전(이하 1차 대전)의 배상금이 근본 원인이었다는 것이다. 1차 대전에서 독일과 오스트리아는 영국과 프랑스 등 서유럽 국가들과 전쟁을 벌여 1919년 패배하였다. 승전국들은 패전국인 독일에게 전쟁 피해에 대한 보상을 위해 엄청난 규모의 배상금을 부과했다. 1차 대전 강화조약인 베르사이유 조약에서 승전국은 2,250억 마르크의 배상금을 요구했지만, 타협이 이루어지지 않아 배상금 협상은 2년 가까이 계속되었다. 협상결과 1921년 5월 배상금 총액은 1,320억 마르크로 최종 결정되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배상금이 마르크가 아니라 금이나 외환으로 지불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따라서 환율절하로 마르크의 가치가 하락하면 배상금의 명목규모도 증가할 수밖에 없다.
1921년부터 독일이 당장 지불해야 할 연간 배상금 규모는 독일 국민소득의 10%에 이르렀다. 독일이 배상금을 안정적으로 지불하기 위해서는 경상수지 흑자를 통해 이 정도의 외환을 확보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배상금 지불 주체인 정부는 이에 상응하는 규모의 재정흑자를 내야만 재정파탄 없이 배상금을 지불할 수 있었다. 하지만 배상금 규모는 결코 독일 경제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유명한 영국의 경제학자 케인즈는 당시에 이미 이런 과도한 배상금이 독일 경제는 물론이고 유럽경제에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 물가상승, 투자위축과 기업부도로 이어져
배상금 마련을 위해 독일 정부가 선택한 것은 정부가 채권을 발행하여 중앙은행, 즉 독일제국은행이 인수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중앙은행은 이를 인수하기 위해 마르크를 찍어냈다. 이것은 결국 통화발행량 증가(통화증발)를 통해 재정적자를 조달했음을 의미한다. 이를 재정적자의 화폐화(monetarization)라고 부른다. 통화증발의 결과는 물가앙등이었다. 물가의 상승이 지속될 것이라고 예상되면 악순환이 시작된다. 사람들은 물가가 상승하기 전에 미리 물건을 구입하려고 하기 때문에 물가상승은 더욱 가속화된다. 물가상승으로 실질임금이 하락한 노동자들은 임금인상을 요구하고 이것은 다시 물가상승의 원인이 된다. 시간이 지날수록 화폐의 실질가치가 하락하기 때문에 저축의 유인이 줄어든다. 또한 채무자들은 채무의 상환을 계속 미루게 되는데, 그 이유는 물가상승 상황에서는 시간이 지날수록 채무의 실질가치가 떨어져 상환을 미룰수록 이익이 되기 때문이다. 이런 것은 결국 투자의 위축과 기업의 부도로 이어진다.
독일에서 급속한 물가상승을 야기한 더욱 중요한 이유는 마르크화의 급격한 환율절하, 즉 환율상승이었다. 물가의 상승은 곧 화폐가치의 하락을 의미하기 때문에 외환거래자들은 마르크화를 팔고 가치가 안정된 다른 통화를 매입하려고 한다. 그리고 독일에 들어와 있던 외국인의 예금이나 자산이 독일에서 빠져나가려고 하기 때문에 마르크화의 환율이 절하된다. 미국 달러대비 독일 마르크화 환율은 1921년 초 60마르크 수준이었다. 그 후 인플레이션과 더불어 환율도 급격히 상승하였는데, 1923년 11월 달러 대비 환율은 무려 4조 2천억 마르크에 이르렀다. 환율의 상승은 수입물가의 상승을 초래하고 이것은 다시 인플레이션의 원인이 되었다. 즉 인플레이션은 환율절하를 가져오고, 환율절하는 수입물가상승을 통해 다시 인플레이션을 가속화했다.
| 분데스방크, 물가안정을 최우선 정책목표로 삼아
이 엄청난 수준의 인플레이션은 1924년 독일이 렌텐마르크라는 새로운 화폐를 도입하고 그 발행을 엄격히 제한함으로써 진정되었다. 승전국들이 배상금을 삭감하기로 양보한 것도 물가안정의 한 요인이 되었다. 1920년대 초의 이 초인플레이션은 그 후 독일 경제에 여러 가지 측면에서 큰 영향을 미쳤다. 일부 학자들은 초인플레이션으로 인해 예금과 같은 금융자산이 휴지조각이 되어 중산층이 줄어든 것에 주목했다. 이들은 이런 중산층의 감소가 그 후 나치즘의 득세를 가져온 원인 중 하나라고 주장한다. 건전한 정치체제 유지를 위해 허리역할을 해야 하는 중산층이 약해져, 독일 전체가 극단적 국수주의의 정치 선동에 현혹되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초인플레이션의 경험이 가져온 긍정적인 영향도 있다. 이 파멸적인 경험을 통해 독일은 중요한 교훈을 얻었다. 인플레이션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가 하는 깨달음과 더불어 이런 인플레이션의 재발을 막기 위해서는 중앙은행의 독립이 매우 중요하다는 인식을 갖게 되었다. 앞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인플레이션의 직접적 원인은 중앙은행의 통화증발이었는데, 이것은 재정적자를 메우기 위한 정부의 압력을 그대로 수용한 데서 비롯되었다.
이런 증발을 막기 위해서 중앙은행은 물가안정을 최고의 정책목표로 설정해야 하며, 재정적자 조달이나 경기부양을 위한 행정부나 정치권의 통화증발 압력을 막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러한 교훈 덕분에 2차 대전 이후 독일의 중앙은행인 분데스방크(Bundesbank)는 세계 그 어느 나라의 중앙은행보다 물가안정을 최우선의 정책목표로 삼았다. 그리고 독일은 세계에서 물가가 가장 안정된 국가가 되었다.
현재 독일을 비롯한 유럽 국가들은 1920년대와는 정반대의 고민을 하고 있다. 인플레이션이 아니라 디플레이션, 즉 물가하락 혹은 지나치게 낮은 물가상승률을 걱정하고 있다. 지금 많은 유럽 국가의 물가상승률은 1%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유럽의 물가상승률이 이처럼 낮은 가장 큰 이유는 경기침체 때문이지만, 좀 더 긴 시각에서 보면 재정적자를 유발하는 전쟁이 오랫동안 없었다는 것과 중앙은행의 독립성이 엄격히 유지된 것도 한 요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역사적 경험은 때로는 보이지 않는 방식으로 현재에 길게 영향을 미친다.
박복영 경희대학교 국제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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