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7월, 미국 세인트루이스 연방은행은 흥미로운 제목의 보고서를 발표했다. 보고서의 제목은 「지옥에 대한 두려움, 경제를 발전시킨다(Fear of Hell Might Fire Up the Economy)」였다. 미국·아일랜드·영국 등의 자료를 분석해 지옥을 믿는 국민이 많을수록 국민소득이 높다는 결론을 도출한 것이다. 하버드 경제학과의 로버트 배로(Robert Barro) 교수도 2003년 「종교와 경제성장(Religion and Economic Growth)」이라는 논문을 통해 유사한 주장을 한 바 있다. 신앙심이 높은 국가일수록 경제성장률이 높다는 것이다.
이들 경제학자의 주장인 지옥이나 종교가 경제성장과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다는 결론의 핵심은 이들 요인이 사람들 간의 ‘신뢰’를 높인다는 점이다. 즉, 신뢰가 높을수록 사회가 투명해지고, 이는 국가 전체의 경제적 발전에 기여한다는 것이다. 다소 경제학스럽지 않은 설명으로 비춰질 수 있는 이러한 분석은, 그러나 정보경제학에서 설명하는 ‘역선택’의 개념으로 설명이 가능하다.
| 역선택과 ‘레몬’의 유래
판매자는 상품에 대해 상대적으로 정확한 정보를 갖고 있는 반면 구매자가 알고 있는 제품정보는 매우 적기 때문에 좋지 않은 물건을 비싼 값에 구매하는 잘못된 선택을 하게 되는 경우가 발생하는데, 이를 ‘역선택(adverse selection)’이라 한다. 여담이지만 이 같은 경제현상에 초점을 맞춘 분야가 정보경제학이다. 정보경제학의 창시자로 인정받는 조지 애컬로프(George Akerlof, 이하 애컬로프) UC버클리대 교수는 1970년에 발표한 논문 「레몬시장(Market for Lemons)」으로 2001년 조지프 스티글리츠, 마이클 스펜서 교수와 함께 노벨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현실에서는 대부분의 경우 정보의 비대칭으로 인해 크고 작은 역선택이 발생한다. 언제나 정보가 완전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른 어떤 시장보다도 역선택이 두드러지는 시장이 바로 ‘중고차시장’이다. 중고차시장을 레몬(필자 주 - 결함 있는 상품을 지칭하는 미국식 속어: 우리에게 익숙한 풍뎅이 모양의 자동차인 폴크스바겐(Volkswagen)의 비틀(Beetle) 차량 가운데 유독 1965년에 생산된 레몬 색깔 차량에서 잦은 고장이 발생해 중고차시장으로 많이 유입되었는데, 이때부터 미국인들에게 레몬은 결함 있는 중고차를 지칭하는 은어로 사용되기 시작)에 빗대어 표현한 애컬로프 교수의 논문 제목도 이를 반증한다.
| 중고차시장에서 역선택은 왜 발생할까?
중고차시장에서는 차량에 대한 정보가 중고차 딜러(판매자)들에게 편중되어 있어 문제가 발생한다. 이는 딜러들이 중고차를 상품화하는 과정에서 확인할 수 있다. 딜러들이 중고차량을 확보한 다음 가장 신경을 많이 쓰는 과정은 차량의 수리 및 정비가 아닌 도색과 광택이다. 중고차 매매를 위해서는 의무적으로 성능검사를 받아야 하기 때문에 내부수리는 형식적으로 진행된다. 차량을 최고 상태로 만들기 위한 것이 아니라 당장에 문제가 될 만한 부분을 감추기 위한 과정인 것이다.
반면 도색과 광택은 적지 않은 비용이 들더라도 딜러들은 주저하지 않는다. 고객들이 차량의 상태를 판단하는 가장 큰 기준이 외관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해서 시장에 나온 중고차는 소비자의 입장에서 그 상태를 정확히 판단하기가 어렵다. 깨끗한 외관에 당장 문제 될 리 없는 상태로 내부까지 정비해놓았으니, 차의 실제 가치보다 비싼 값을 불러도 소비자 입장에서는 딱히 반박할 요인들이 없는 것이다.
이처럼 중고차시장에는 다양한 상태의 차량들이 섞여 있다. 홍수로 인해 침수된 차량, 과거의 큰 사고이력으로 안전성이 취약한 차량 등은 외관과 달리 실제로는 높은 값을 받을 수 없는 차량들이다. 소비자들도 이러한 사실을 알고 있어 매우 신중한 태도를 취하게 된다.
예를 들어, 소비자는 상태가 좋은 차량이라면 800만 원까지 지불할 의사가 있지만, 그렇지 않은 차량에 대해서는 400만 원까지만 낼 용의가 있다고 하자. 한편 딜러의 경우 좋은 차량에 대해서는 최소 900만 원, 나쁜 차량에 대해서는 최소 500만 원에 판매할 의향이 있다. 이 경우 좋은 차는 800만 원에서 900만 원 사이에서 거래되고, 나쁜 차는 400만 원에서 500만 원 사이에 거래되어야 한다. 하지만 하나같이 깨끗한 외관으로 실제 특성이 감추어져 있어 소비자는 좋은 차와 나쁜 차를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
이때 각각을 만나게 될 확률을 반반이라고 가정해 600만 원에 거래의사를 밝히게 되면, 딜러는 자신이 보유한 차량에 대해 정확히 알고 있기 때문에 좋은 차를 소유한 경우 거래하려 하지 않는다. 반면, 나쁜 차를 가진 딜러는 신이 나서 거래에 나서게 된다. 좋은 차를 가진 경우 최대 300만 원이나 낮게 받는 셈이지만, 나쁜 차를 가진 딜러 입장에서는 최대 100만 원이나 더 높은 값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소비자는 나쁜 차를 비싸게 구입하게 되고, 이는 시간이 지날수록 중고차 거래를 하는 사람들이 줄어드는 결과로 이어진다. 시장의 불투명성이 시장 자체를 축소시키는 것이다.
| 신뢰로 해결하는 중고차의 역선택 문제
상황이 이렇다 보니 역선택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다양한 노력들이 등장하고 있다. 구입 후 일정기간 동안 수리를 책임지는 보증(warranty) 방식에만 머무르지 않고 인터넷 중고차 시세정보 사이트와 대기업의 시장 진출 등 새로운 방식으로 정보의 불균형이 완화되고 있는 것이다. 예전에는 서울 장안평이나 가양동 등 중고차 매매 단지에 직접 가야만 거래가 가능해 적정가격이 얼마인지, 연식과 차종에 따라 고려해야 할 점은 무엇인지에 대한 정보가 턱없이 부족했다.
하지만 이제는 실시간으로 중고차 시세뿐만 아니라 딜러별 매물정보를 제공하는 온라인 사이트가 등장해 소비자도 딜러 못지않은 정보를 얻을 수 있게 되었다. 현재는 중고차를 거래하는 사람들의 90%가 온라인에서 중고차 매물의 시세와 특징을 살펴본 후 매장을 방문하는데 이를 ‘역(逆)쇼루밍(reverse showrooming)’이라고 한다.
SK와 현대, KT와 같은 대기업의 중고차시장 진출도 정보의 불균형 완화에 일조하고 있다. 믿을 수 있는 대기업이 직접 중고차를 매입하고 수리·보증·판매함으로써 소비자는 확실하게 ‘검증’된 중고차를 구입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정부 역시도 ‘자동차 이력 정보 관리제’를 통해 역선택의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러한 노력으로 정보비대칭이 점차 해소되어 시장의 투명성이 높아지자 소비자들은 다시 중고차시장을 찾기 시작했다. 그 결과 중고차시장은 2010년 이후 계속해서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며 현재는 신차 대비 2.2배의 거래량을 보이고 있다. 그 규모만도 무려 32조 원에 이른다. 하지만 중고차시장에 대한 기대를 충족시키기에는 아직 부족하다. 정보비대칭 문제를 해결해 신차 시장의 3배 이상으로 커진 유럽·미국의 사례를 보면 더 큰 성장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결국 역선택의 위험을 줄이려는 노력은 신뢰의 회복이 그 중심에 있음을 알 수 있다. 정보의 균형으로 서로를 믿게 되자 시장이 투명해졌고, 이로 인해 효율적인 자원배분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신뢰가 경제성장의 발판인 셈이다. 마치 지옥의 존재를 믿고 종교를 갖는 사람들이 서로를 속이지 않게 되자 형성된 신뢰가 경제성장에 기여했던 것처럼 말이다.
김동영 한국개발연구원(KDI) 산업·서비스경제연구부 전문연구원
kimdy@kdi.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