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회 인천 아시안게임에서 보듯이 축구·야구·육상을 비롯한 모든 운동 경기에는 규칙이 있다. 이 규칙은 해당 경기의 운영방식과 운동선수들의 전략적 선택과 행동을 규율하는 일종의 규제이다. 그런데 만약 규칙이 복잡하고 혼란스러워 준수하기 어렵고 심판 판정은 매번 시비의 대상이 된다면 해당 경기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나아가 세계적 기준과 다른 우리만의 규칙을 적용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필경 관중들은 심판의 잦은 경기중단, 그리고 끊이지 않는 판정시비에 짜증을 내며 등을 돌릴 것이다. 그리고 선수들은 창의적인 역량을 발휘하지 못하고, 세계 무대에 나가도 로컬 룰과 다른 규칙에 적응하지 못하여 좋은 성적을 내지 못할 것이다.
스포츠 경기에 규칙이 필요한 까닭은 경기를 활기차고 재미있게 하여 관중의 더 많은 호응을 이끌어내기 위함이다. 개인과 기업의 경제활동에도 규칙은 필요하다. 경제게임에 적용되는 규칙은 이해당사자들이 계약으로 정하는 자율 규율과 국가가 공권력으로 강제하는 공적 규율의 두 가지로 이루어진다. 이 중 후자가 정부규제이다. 규제는 국회에서 목적과 방향을 정하고, 행정부에서 하위 법령(시행령·지침 등)을 통해 구체적인 내용을 정하여 집행한다는 점에서 이해당사자들이 스스로 정하는 운동경기 규칙과는 다르다. 그러나 반칙을 차단하고 게임을 활성화시키자는 본질 면에서는 차이가 없다. 경기 규칙과 마찬가지로 경제활동에 대한 규제도 민간 경제주체들의 창의적·생산적 역량이 최대한 발현될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뒷받침해야 하는 이유이다.
| 경제성장에 제동 거는 규제실태
시대변화에 맞는 규제개선 시급해
그러나 우리나라 규제실태는 이와 달라서 문제가 심각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과도한 규제, 현실에 맞지 않는 규제, 글로벌 정합성이 떨어지는 규제들이 민간의 경제활동을 제약하고 미래의 성장잠재력을 떨어뜨리고 있는 것이다. 그 이유를 몇 가지 들어보면 첫째, 정부가 경제개발을 주도하던 시기에 만들어졌던 규제법령 및 관행들이 시대가 바뀐 지금에도 그대로 적용되면서 경제현실과 불협화음을 내고 있다. 지금 우리나라는 수출과 수입을 합한 금액이 1조 달러를 넘어 세계 8대 무역국가에 오른 만큼 모든 경제활동이 대외경쟁에 그대로 노출된 상태다. 그런데도 국제 기준과 맞지 않는 로컬 룰, 즉 갈라파고스 규제 때문에 기업투자가 어렵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대표적 사례가 공정거래법 상의 경제력집중 규제이다. 다른 나라는 대기업의 시장독과점과 그로 인한 폐해를 막기 위해 경쟁법을 운용하고 있지만 우리나라만 유독 독과점 문제가 아닌 경제력 일반집중을 막겠다며 1980년대부터 규제를 해왔다. 지금도 정부는 자산총액이 5조 원을 넘는 대기업에 대해서는 대규모 기업집단으로 지정하여 여러 규제를 부과하는 한편 자산규모 1천억 원이 넘는 지주회사에 대해서도 투자 및 지분율 제한, 출자단계 제한 등 갖가지 규제를 안기고 있다. 그러다 보니 일부 대기업에서는 규제와 정부 간섭을 피하기 위해 성장을 꺼리는 경향이 나타나는가 하면, 작년에는 지주회사 규제 때문에 외국기업과의 대규모 합작투자가 좌초될 뻔한 사례도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대통령까지 나서서 다른 나라에 없는 규제 때문에 투자가 막히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하면서 이 문제는 외국인투자촉진법에 예외조항을 도입하는 것으로 절충되었다. 그러나 무역규모가 1천억 달러도 안 되고 주요 수출품목이 섬유·가죽·신발이었던 시대에 생성된 규제 마인드와 프레임은, 1조 달러 무역시대에도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았다.
둘째, 법령에서 명시적으로 정한 경우에 한하여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 또는 신제품의 생산과 판매를 허용하는 ‘원칙 금지-예외 허용’의 규제방식(포지티브 규제방식)이 창의적인 기업가정신의 발현을 가로막고 있다. 예를 들어, 폐동맥 삽입용 혈압센서나 패치형 혈당측정 센서 등은 미국에서 개발되어 판매가 되고 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법적 근거와 기준이 없다는 이유로 생산도 판매도 할 수 없다. 이와 같은 불합리한 문제점 때문에 법에서 명시적으로 금지한 경우가 아니면 허용된 것으로 간주하는 방식(네거티브 규제방식)으로 규제체계를 바꿔야 한다는 논리가 힘을 얻고 있다.

셋째, 현행의 산업규제는 ‘단일 기술-단일 산업’ 패러다임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에 산업·기술간 융·복합이 일상적으로 발생하는 창조경제 시대에 맞지 않다. 시험인증규제가 여기에 해당한다. 제품을 수출, 판매하려면 시험인증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우리나라의 경우 부처별로 기준 설정과 인증권한이 분산되어 있기 때문에 기업들은 여러 부처의 인증절차를 거치느라 출시하기도 전에 힘 빠지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게다가 새로운 기술, 제품이 등장할 때마다 각 부처가 서로 관할권을 주장하는 부처 이기주의와 중복규제도 문제이다. 최근에 자동차 연비를 둘러싸고 산업부와 국토부에서 서로 다른 시험결과를 발표하면서, 자동차 업계는 물론 소비자에게 혼란을 초래했던 것도 규제사무 분장체계의 문제에서 비롯된 것이다.
| 규제혁신, 미래세대 위한 필수 해결 과제
등록규제 증가율, 경제성장률 2배 넘는 수준
역대 정부에서는 우리나라가 안고 있는 규제의 문제점을 인지하고 규제개혁을 주창해왔다. 국민의 정부 시절에는 국무조정실 산하에 민관합동의 규제개혁기획단을 만들었고, 이명박 정부 때에는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를 신설하여 여러 부처에 걸쳐있는 규제를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규제총량은 규제개혁위원회에 등록된 것만 따져도 지난 5년 동안 연평균 6% 넘게 증가하였다. 같은 기간 중 경제성장률은 연평균 3% 이하로 부진하였다. 결과적으로 등록규제의 증가율이 경제성장률의 2배를 넘은 것인데, 이는 그만큼 규제개혁이 녹록치 않은 과제임을 시사한다.
국제비교를 해봐도 우리나라 규제환경은 대단히 열악한 수준이다. 금년도 세계경제포럼(WEF)에서 조사한 바에 의하면 우리나라 정부규제 체감도는 전체 144개국 중 95위이다. 고만고만한 나라를 빼면 사실상 꼴찌라는 의미이다. 기존의 성장 엔진이 식어가는 추세 속에서 저출산·고령화의 문제까지 겹쳐 이대로 가면 우리나라 경제의 미래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금년에 국제통화기금(IMF)의 한 보고서에서 1990년대 초반 7%에 달했던 한국의 잠재성장률이 지금은 3.3%로 떨어졌으며, 개혁정책을 제대로 펴지 않을 경우 2025년에는 2%로 추락할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꺼져가는 경제성장의 엔진을 되살리고 미래세대에게 필요한 일자리를 만들려면 규제개혁·규제품질의 향상은 반드시 성사시켜야 하는 과제이다.
황인학 한국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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