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량’의 열기가 식을 줄 모른다. 사상 처음으로 관객 수 1,700만 명(2014년 9월 6일)을 돌파하며 한국영화 흥행기록을 경신하고 있는 ‘명량’은 여전히 관객들이 몰려들며 최종 관객 수를 궁금하게 만들고 있다. 이처럼 우리나라 영화사를 고쳐 쓰고 있는 ‘명량’의 힘은 극장가뿐 아니라 은행권에서도 여실히 발휘되고 있다.
A은행은 8월 말, 1천억 원 한도의 ‘우리나라사랑 명량 정기예금’을 내놓은 지 하루 만에 모두 판매했으며, 9월 11일에도 같은 정기예금 상품을 역시 하루 만에 전부 팔아치웠다고 한다. 재미있는 것은 해당은행이 1597년 명량해전 후 417년이 경과한 것을 기려서 상품 가입자 중 417명을 추첨해 영화 관람권 2매씩을 제공했고, 13척으로 330척의 왜적을 쳐부순 것을 기념하기 위해서 관객 13명에게는 VIP 관람권을 4매씩 선물했다고 한다.
| 금융업계에 부는 문화마케팅 바람
전시회장에서 투자설명회를 여는 증권사
고궁에서 음악회를 개최하는 은행
이처럼 잘 나가는 문화상품을 이용한 금융권의 문화마케팅은 ‘명량’이 처음은 아니다. 고객들에게 공연과 전시회 관람 기회를 제공하는 일은 말할 것도 없고 숲속이나 고궁에서 음악회를 개최하는 은행이 있는가 하면, 전시회장에서 투자설명회를 여는 증권사도 적지 않다. 심지어 직접 미술품을 구입하는 펀드를 만들어서 고객들에게 문화상품을 이용해 수익을 올리게 해주는 사례도 심심찮게 일어나고 있다.
몇 년 전부터 ‘컬쳐노믹스’라는 신조어가 자주 사용되고 있다. 컬쳐노믹스(culturenomics)란 문화(culture)와 경제(economics)의 합성어로, 주로 ‘문화를 경제적으로 활용하는 현상’을 뜻한다. 덴마크 코펜하겐대학 피터 듀런드(Peter Duelund) 교수에 의해 처음 사용됐다고 한다. 문화를 소재로 경제적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현상으로 기업뿐 아니라 정부나 지자체 등 공공기관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는 개념이다.
금융권의 문화마케팅을 분석하면 몇 가지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첫째는 고객관리로서의 활용이다. 특히 VIP 고객관리를 위한 핵심 서비스로 문화가 적극 활용되고 있다. 둘째는 기업이미지 제고의 목적이다. 은행들이 유명한 팝 아티스트와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운동선수를 기업광고에 등장시켜 차별화된 이미지 구축을 시도하기도 한다. 마지막은 문화투자의 관점이다. 특히 미술품 경매시장이 크게 성장하면서 새로운 투자처로 미술품 시장이 주목을 받고 있다. 이러한 사실은 문화가 단지 소비의 대상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도구로 전환 중인 환경의 변화를 뜻한다.

| 문화마케팅의 시초는 메세나
글로벌 시대의 문화경영전략을 아우르는
종합적인 기업전략으로 발전
사실 문화마케팅의 시초는 기업가의 문화예술에 대한 관심이나 사회공헌활동의 일환이었다. 특히 기업의 문화예술 지원활동을 ‘메세나(Mecenat)’라고 일컫는다. 용어가 유명한데, 이는 고대 로마제국의 정치가인 가이우스 마에케나스(Gaius Maecenas)가 예술가들의 창작활동을 적극 후원한 데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그럼, 최근 들어 문화마케팅이 각광을 받게 된 원인은 뭘까? 문화마케팅이 새롭게 부상한 원인은 달라진 경영환경과 소비자들의 변화에서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크게는 국가에서부터 기업·개인의 경쟁력 원천이 물질적·기술적 파워에서 점차 감성적·문화적 파워로 옮겨 오고 있다. 기술과 지식이 우위를 점하는 정보화 시대에 뒤이어 문화와 예술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이러한 경제·사회환경의 변화와 더불어 이전의 소비자와는 확연하게 다른 새로운 소비자가 등장했다. 새로운 소비자는 물질적 안정과 양적인 소비생활만을 중시하던 과거와 달리 웰빙, 개성적인 라이프스타일, 정신적·문화적 만족 등에 초점을 맞춘 새로운 소비패턴을 보이고 있다.
새로운 소비자는 기업들의 문화마케팅에 대해서 호의적이다. 한국메세나협의회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응답자의 87.5%가 기업이 문화마케팅을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대답했고 필요하지 않다고 답한 비율은 2.4%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문화마케팅은 결국 달라진 소비자들을 위한 새로운 마케팅 방식이다. 즉, 기업이 문화를 매개로 하여 호모 루덴스(homo ludens: 놀이하는 인간)를 위해서 전개하는 다양한 마케팅 활동이다. 문화마케팅은 기업 이윤의 사회환원이라는 기존 개념과 더불어 문화예술의 감성코드를 활용한 마케팅전략, 문화가 녹아 있는 상품개발, 글로벌 시대의 문화경영전략을 아우르는 종합적인 기업전략으로 발전했다.
| 슈퍼스타 K 덕을 톡톡히 본 카드사
슈스케를 통한 브랜드 이미지 상승효과 등으로
한 해 200억 원 이상의 광고 효과 거둬
기업들은 문화마케팅을 제품의 차별화에 유용한 수단으로 평가하고 있다. 구체적인 실례를 살펴보자. 금융권에서는 카드사들의 문화마케팅이 가장 활발하다. B카드는 대표적인 오디션 프로그램인 ‘슈퍼스타K’의 메인 스폰서로 참여하면서 쏠쏠한 홍보효과를 거둔 것으로 알려졌다. 슈스케를 통한 브랜드 이미지 상승효과 등으로 B카드는 2011년에만 200억 원 이상의 광고 효과를 올린 것으로 추정됐다. 감동적인 성공스토리를 만들도록 도와주는 슈스케의 콘셉트가 카드사의 브랜드 이미지와 겹치면서 B카드는 자연스럽게 친근한 브랜드 이미지로 자리잡는 데 성공한 셈이다.
농촌에 뿌리를 둔 C은행 역시 C카드 채움콘서트를 개최하는 등 개성 있는 문화마케팅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최근에는 C은행의 부산지역 고객 1천여 명을 대상으로 ‘한국근현대회화 100선’전 무료 관람기회를 제공하기도 했다.

이처럼 문화마케팅은 기업의 새로운 핵심 전략으로 성장했다. 선도 기업들은 이미 고유의 문화브랜드를 구축했을 뿐 아니라 브랜드 이미지 상승을 위해 문화마케팅에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다. 기업들이 이미지 제고와 브랜드 정체성을 형성하는 중요한 마케팅 도구로 문화예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는 셈이다. 특히 합리성이 중요한 금융권에서는 딱딱하게 느껴지기 쉬운 금융상품에 문화의 감성을 접목하는 것이 문화마케팅이 성공하는 핵심 열쇠다.
김재현 농협경제연구소 거시금융연구실 책임연구원
zorba0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