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들은 탑을 쌓기 시작했다. 자기도취에 빠진 인간들이 하늘의 권위에 도전하고자 함이었다. 신은 노했고, 인간들의 언어를 쪼개 버렸다. 오만함과 어리석음에 대한 신의 저주인 것이었다. 서로의 말을 이해할 수 없게 되자 같은 언어를 쓰는 사람들끼리 모여 뿔뿔이 흩어졌고 탑을 쌓는 일은 실패하고 말았다. 구약성서 창세기편에 등장하는 ‘바벨탑의 저주’ 이야기이다.
도이치방크의 애널리스트 앤드루 로런스(Andrew Lawrence)는 1999년 ‘마천루의 저주(Skyscraper Curse)’라는 가설을 발표했다. 지난 100년 동안의 자료를 바탕으로, 초고층 빌딩이 등장하면 반드시 경제위기가 뒤따른다는 내용이다. 1907년 미국 뉴욕 맨해튼의 싱어 빌딩(47층, 187m)이 20세기 첫 금융위기를 불러왔고, 1929년에는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102층, 381m)이 세계 대공황을 그리고 1973년 세계무역센터(110층, 417m)는 제1차 오일쇼크를 불러왔다는 것이다. 이는 아시아도 예외가 아니다. 1998년 말레이시아 페트로나스 트윈타워(88층, 452m) 완공 이후 아시아 금융위기가, 두바이의 부르즈할리파(163층, 828m) 빌딩 착공 이후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졌으니 마천루의 저주를 그저 웃어넘길 만한 재미있는 주장으로 치부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실제 이를 바탕으로 ‘마천루 지수(Skyscraper Index)’가 만들어져 경기를 예측하는 지수의 하나로 활용하고 있다. 미래 경기를 예측함에 있어 마천루 지수가 높으면 머지않아 경기불황이 시작된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 상승과 하강을 반복하는 한 나라의 경제
이처럼 경제학자들은 전통적인 지표 외에도 다양한 근거를 바탕으로 경기를 예측하고자 한다. 자본주의 체제의 발전과정을 살펴보면 경제활동이 활발하다가 침체를 겪는 모습이 반복됨을 확인할 수 있다. 경제학에서는 이를 ‘경기변동’ 혹은 ‘경기순환’이라고 한다. 제2차 세계대전 이전까지는 경기순환이 상당히 규칙적으로 일어났다. 하지만 케인즈의 총수요관리정책 시행 이후 1960년대 중반까지 전 세계가 전례 없는 안정적인 고도성장을 유지하면서 그 규칙성이 약해져, 현재는 경기변동이 경기순환을 포괄하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경기변동이 발생하는 이유는 수요 변화에 대해 가격이 경직적이기 때문이다. 경제 전체의 수요가 변화했을 때 가격이 유연하게 반응해 그 충격을 흡수해야 하는데, 가격의 경직성으로 인해 충격의 여파가 생산량과 고용으로 번지는 것이다. 예를 들어 자동차 회사가 수요예측을 기반으로 매달 1,000대의 자동차를 대당 2,550만 원의 비용으로 만드는 경우를 생각해보자. 이때 시장판매 가격이 2,600만 원이라면 대당 50만 원의 이익을 남길 수 있게 된다. 처음에는 예상대로 매달 1,000대의 수요가 발생해 생산한 모든 자동차가 팔렸다. 그런데 어떠한 이유에서인지 자동차에 대한 수요가 매달 200대씩 감소하기 시작했다.
팔리지 않고 남는 재고가 한두 달 쌓이는 것은 오히려 괜찮을 수도 있다. 가까운 미래에 수요가 1,200대 혹은 1,400대로 증가했을 때 재고를 활용해 대응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이 1년 이상 계속된다면 상황이 달라진다. 재고로 남는 자동차를 주차해 놓을 곳이 점점 부족해질 뿐만 아니라 기업의 이윤에 부담을 주게 되기 때문이다.
자동차 가격을 낮추면 다시 수요가 늘어나겠지만, 경영자는 가격을 변화시키는 대신 생산(량)의 감소를 통해 이러한 상황에 대응하려 한다. 생산의 감소는 곧 근로자의 해고를 의미한다(이를 경제 전반으로 일반화하면 경기변동이 발생함을 확인할 수 있다. 즉, 경제 전체의 재화와 서비스에 대한 수요가 감소하면 기업들은 생산량을 줄이게 되고, 이는 GDP 하락과 실업이 증가하는 경기침체를 야기할 것이다). 왜 그런 것일까? 무엇보다 소비자들이 안정적인 가격을 원하기 때문이다. 소비자 입장에서 안정적인 가격예측은 미래 소비 계획을 세우는데 도움이 된다. 또한 이로 인해 급격한 소비 변동도 발생하지 않게 된다. 매일 재화와 서비스의 가격이 오르내린다면 소비자들은 혼란을 느낄 수밖에 없다. 또 다른 이유는 기업 간의 ‘가격전쟁’을 피하기 위해서이다. 한 기업이 제품 가격을 내리면 경쟁 기업도 덩달아 내릴 수 밖에 없다. 이렇게 되면 두 기업 모두 가격인하의 효과는 보지 못하고 이윤의 감소만 경험하게 된다. 현실에서 기업들이 안정적 · 경직적인 가격을 선호하는 이유이다.
| 경기변동의 문제 해결 방안: 경제안정화정책
한편 경기변동의 원인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문제는 경기변동의 과정에서 생산량이 감소하고 실업이 증가한다는 점에 있다. 미국의 경제학자 오쿤(Arthur M. Okun)은 경기변동에 의해 실업률이 1%p 상승하면 실질 GDP는 약 2%p 하락하게 된다는 점을 발견했다. 경기변동으로 인한 후퇴와 불황은 일시적인 현상이지만 그 과정에서 큰 경제적 고통과 비용을 초래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거시경제학의 목표가 단기적인 경기변동의 대응책을 마련해 장기적인 경제성장을 도모하는 것이라고 밝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확장과 수축이 반복되는 경기변동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발생하는 고통을 줄이기 위한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거시경제학의 중요한 과제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대책을 마련하는 두 주체는 정부와 중앙은행이다. 경제학에서는 경기변동의 진폭을 줄여 경기변동으로 인한 고통을 최소화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는데 이를 ‘경제안정화정책’이라고 한다. 경기변동은 주로 수요 측면이 원인이 되어 발생하기 때문에 ‘총수요관리정책’이라고도 부른다. 이때 정부가 수행하는 정책을 ‘재정정책’이라 하고, 중앙은행이 주축이 되는 정책을 ‘통화정책’이라고 한다.
재정정책은 정부가 조세를 부과하거나 국 · 공채 발행을 통한 재정지출을 수단으로 하는 반면 통화정책은 통화량이나 이자율의 변화를 활용한다는 점에 차이가 있다. 하지만 두 정책 모두 정부나 중앙은행이 경제에 직접 개입하여 경기변동의 진폭을 조절한다는 공통점을 갖는다.
최근 직면하고 있는 경기변동은 침체의 골이 그 어느 때보다도 깊게 느껴진다. 세수의 부족으로 재정정책은 한계에 직면하고 있으며, 통화정책은 샤워실의 바보들(Fool in the Shower)로 표현되는 중앙은행의 과도한 경제개입으로 오히려 경기회복을 방해하는 양상이다.
‘샤워실의 바보들’이란 1976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밀턴 프리드먼(Milton Friedman) 교수가 언급한 이야기이다. 온수를 틀자 화상을 입을 만큼 뜨거운 물이 나왔고, 놀란 바보는 얼른 냉수를 틀었다. 이번에는 얼음같이 차가운 물에 놀랐고, 이에 다시 뜨거운 물을 틀어서 화상을 입는 과정을 반복해 결국 물만 낭비하고 샤워는 하지 못했다는 이야기이다. 즉, 중앙은행이 침체국면을 탈피하기 위해 확장적 통화정책을 사용하자 인플레이션(뜨거운 물)이 발생했는데, 이에 놀란 중앙은행이 긴축적인 통화정책을 펼치자 이번에는 실업이 증가하고 경기가 침체(차가운 물)되었다는 내용이다. 이처럼 재정 및 통화정책은 경기변동을 해결하는 효과적인 수단 가운데 하나지만, 이를 통해 경기침체의 늪에서 빠져나오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정부의 역할을 둘러싼 다양한 의견에도 불구하고 각국은 재정정책과 통화정책을 활용해 경제를 안정화시키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헬리콥터 머니’라고 불린 양적완화 정책이나 최근 추가적으로 기준금리를 낮춰 정부와 정책방향을 같이 하는 한국은행의 모습이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정책 간 공조와 함께 국가 간 공조가 함께 이루어진다면 글로벌 경제가 처한 경기변동의 침체국면에서 빠르게 벗어나 신성장 시대를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김동영 KDI 산업 · 서비스경제연구부 전문연구원
kimdy@kdi.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