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단한 퀴즈 하나. 남대문로에 있는 한국은행 본관 건물 입구에 들어서면 정면에 커다랗게 한문으로 네 글자가 적힌 액자를 볼 수 있다. 액자에는 과연 어떤 글이 적혀 있을까?(정답은 본문에 있음.)
몇 년 전에 한국은행에서 중등교사를 대상으로 실시하는 경제교육 연수를 받은 적이 있었다. 시간이 좀 흐르다보니 연수 과정에서 배웠던 금과옥조 같은 수업내용들은 솔직히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늘 신문에서나 보던 금융통화위원회 회의장 등을 견학해보고 한국은행 총재를 직접 만나며 우리나라 금융의 심장부에 서 있다는 생각에 약간 흥분했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연수과정에서 가장 강렬한 인상으로 남아있는 것이 바로 그 액자에 적힌 글이었다. ‘모든 한국은행 직원들이 출근할 때마다 이곳이 무엇을 하는 기관인가를 똑똑히 인식하라는 의미이겠구나.’ 새삼 한국은행의 기능을 상기해 볼 수 있었다.
학생들에게 중앙은행이 무엇을 하는 곳인가를 물어보면 단연 많이 나오는 대답은 역시 ‘화폐의 발행과 유통’이다. 물론 일반 가계의 입장에서 가장 밀접하게 느낄 수 있는 것이 매일 지갑에서 들고나는 현금인 탓이겠지만 사실 중앙은행이 담당하는 기능 가운데 화폐의 발행과 유통보다 중요한 기능은 바로 통화정책의 수립과 집행이다.
통화정책이란 중앙은행이 통화량이나 이자율을 조절함으로써 물가안정 · 경제성장 · 고용안정 등의 경제안정을 달성하고자 하는 거시경제정책을 말하는데, 우리나라의 중앙은행인 한국은행은 특히 물가안정을 통하여 경제안정을 달성하겠다는 물가안정목표제(Inflation Targeting)를 통화정책의 기조로 삼고 있다.
| 주목해야 할 중앙은행의 기능: 통화정책의 수립과 집행
아마도 눈치가 빠른 분들이라면 지금쯤 퀴즈의 정답을 알아채셨으리라 생각되는데, 한국은행 직원들이 매일 아침 본관에 들어서며 보게 되는 글은 다름 아니라 한국은행의 목표인 ‘물가안정(物價安定)’이다.
통화정책의 방향에 대한 결정은 매월 1회 한국은행 총재를 비롯한 7인의 위원으로 구성된 금융통화 위원회 본회의에서 이루어진다. 금융통화위원회 위원들이 물가 수준을 비롯한 각종 국내외 경제여건에 대한 자료들을 종합하여 현재의 경기 상황을 진단하고 기준금리를 결정함으로써 앞으로의 통화정책 운용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다. 지난 10월 15일 금융통화위원회는 한국은행 기준금리를 2.25%에서 2.00%로 0.25%p 하향 조정하여 글로벌 금융위기 때와 같은 역대 최저 수준으로 조정하였다(그림 참조).
여러 가지 문제점이 예상됨에도 불구하고 이렇듯 낮은 금리를 제시한 것은 그만큼 경기전망이 밝지 않고 이에 따라 인위적인 부양 대책이 절실하다고 판단했다는 방증이다.

| 중앙은행의 통화량 · 이자율 조절장치: 공개시장조작, 여 · 수신제도, 지급준비제도
많은 경제교재들이 저수조(혹은 댐)에서 세 개의 수도꼭지(혹은 수문)를 통해 수위를 조절하는 그림으로 통화정책을 표현하곤 하는데, 그림을 볼 때마다 학생들을 직관적으로 이해시키기에 아주 유효적절한 그림이라고 생각한다. 중앙은행이 통화량이나 이자율을 조절하는 수도꼭지에 해당하는 대표적인 세 가지 수단에는 공개시장조작, 여 · 수신제도, 지급준비제도가 있다.
먼저 가장 대표적인 통화정책 수단으로 꼽을 수 있는 공개시장조작은 아마도 일본에서 사용하던 용어를 그대로 들여온 탓이겠지만 항상 ‘조작’이라는 명칭 때문에 학생들에게 부정적인 의미가 아님을 추가적으로 설명해야 하는 번거로움을 동반하는 통화정책이다(혹시 이 글을 보시는 영향력 있는 학자분들이 계신다면 이 ‘조작’이라는 용어를 ‘조정’ 정도로 고칠 수는 없는지 진지하게 건의 드려보고 싶다). ‘조작’이라는 부정적인 어감과는 달리 이것은 중앙은행이 금융시장에서 국공채를 사거나 팔아 시중에 유통되는 통화량이나 이자율을 조절하는 등 합법적이고 정상적인 절차에 따라 이뤄진다.
여 · 수신제도는 중앙은행이 은행을 상대로 대출을 해주거나 예금을 받는 것으로 통화량을 조절하는 정책이다. 과거에는 중앙은행이 은행에게 일시적 부족자금을 대출해주는 제도로서 흔히 ‘대출제도’ 혹은 이때 적용하는 금리가 재할인율인 관계로 ‘재할인율제도’라고 불렸다. 최근에는 한국은행을 비롯한 많은 중앙은행들이 은행에 대한 대출뿐만 아니라 일시적 여유자금을 예수할 수 있는 대기성 여수신제도(Standing Facility)를 도입하면서 확대 · 발전되고 있다.
지급준비제도는 중앙은행이 은행의 지급준비금 적립대상 채무의 일정비율(지급준비율)에 해당하는 금액을 중앙은행에 예치하도록 의무화하고 지급준비율의 조정을 통해 통화량이나 이자율을 조정하는 제도이다. 1980년대 전까지만 하더라도 많은 나라들이 통화량 관리 중심의 통화정책을 실시하여 이 제도의 활용도가 매우 높았으나 통화정책의 중심이 이자율 관리로 옮겨가면서 그 활용도가 다소 떨어지고 있다.
한국은행이 통화정책의 방향을 경기부양으로 분명하게 밝힌 만큼 당분간 세 개의 수도꼭지는 통화량을 늘리고 이자율을 낮추는 방향으로의 조정(국공채 매입, 대출 증대, 지급준비율 인하)이 예상된다. 다만 이러한 결정의 결과를 온몸으로 겪어야 할 일반 국민의 입장에선, 독립성을 유지해야 할 한국은행이 정부의 강력한 의지에 편승한 나머지 매일 아침 출근하면서 만나는 목표를 가볍게 다룬 결정이 아니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정원석 성신여자고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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