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미국으로 여행을 가서 라스베이거스에 거처를 정하고 그랜드캐니언(Grand Canyon)을 보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자동차를 몰고 왕복 8시간을 다녀오는 길이라 상당히 피곤했기 때문에 가족들은 중간에 들르기로 계획하였던 후버댐 관광을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가자는 의견이 대세였다. 그럼에도 피곤하다는 가족들을 설득하여 그곳을 가보고야 말았다. 다른 이유는 아니고 웅장한 후버댐을 보면서 미국 대공황기에 탄생한 재정정책의 살아있는 역사를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경제를 가르치는 사회 교사로서 직업의식이 발동했다고나 할까!
후버댐은 20세기 미국 공학과 건축학이 만들어낸 걸작으로 꼽힌다. 규모도 웅장해서 높이가 무려 221m나 된다. 그러나 경제사적으로 댐의 규모나 기술의 측면보다는 이렇게 대규모의 댐을 건설하기 위하여 투입된 재정에 주목해야 한다. 엄청난 양의 콘크리트 구매와 토목건설 장비 동원, 인부에서 고급 건축 인력 고용까지 미국 정부는 엄청난 규모의 돈을 후버댐 건설에 쏟아 부었다. 완공 시점은 1936년으로 공사기간이 미국이 한참 경제대공황(이하 대공황)에 시달렸을 시기다. 이런 막대한 토목공사가 실시된 배경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 경제대공황 이후 중요해진 재정정책
오늘날에 와서는 경제가 불황일 때 정부가 확장정책을 실시하여 재정을 투입하여 경제를 살리는 것이 상식적으로 통용되지만, 자본주의 발달 초기부터 재정정책이 존재했던 것은 아니다. 초기 자본주의 시절에는 애덤 스미스(Adam Smith)가 제창한 ‘보이지 않는 손’이라는 개념 아래 자유방임적 경제정책이 기본적인 경제정책이었다. 정부의 역할이란 국방과 치안 등 최소한에 머물러 있었다. 불황이 와도 그것은 정부가 아닌 시장이 해결할 몫이었다.
1929년 미국 월가의 주가 대폭락으로 시작된 대공황은 이런 소극적인 정부의 역할을 경제활성화로 전환하는 계기가 되었다. 경제학자 케인즈(John Maynard Keynes)가 경제이론으로 재정정책을 뒷받침하고 루즈벨트(Franklin D. Roosevelt) 대통령이 뉴딜정책으로 대규모 재정 투입을 통한 대공황 극복에 나선 이후, 자본주의 체제의 나라에서 경기를 안정화시키는 재정정책은 중요한 정책 항목이 되었다.
재정정책의 개념은 크게 어려운 것은 아니다. 경제의 3주체, 즉 가계 · 기업 · 정부 중에서 가계와 기업은 시장원리에 따라 경제적 이익에 따라 행동한다. 경제가 불황기에 접어들면 가계는 소비를 줄인다. 가계가 소비를 줄이면 기업은 투자를 줄이고, 기업이 투자를 줄이면 실업이 늘어 가계소득이 줄고, 소득이 줄어든 가계는 다시 소비를 줄이는 악순환을 불러온다. 이러한 이기적인 경제주체들의 행위의 고리를 끊어줄 이는 정부 밖에 없기 때문에, 가계와 기업이 소비와 투자를 줄일 때 정부가 나서서 지출을 늘려 경제활성화를 도모한다는 개념이다. 정부에서 지출된 돈이 가계와 기업으로 들어가 소비와 투자를 늘리게 만드는 것이다.
| 확장적인 재정정책을 쓰는 우리나라
우리나라도 현재 경제성장률이 둔화되는 등 경기 후퇴의 조짐이 보이자 확장정책을 쓰겠다는 정부 당국의 의지가 확고해 보인다. 우리 정부에서 경제정책을 총괄하는 부처는 기획재정부로서 정부 직제상 이 부서의 장관은 경제부총리를 겸임하게 된다. 기획재정부는 경기후퇴를 막기 위해 정부의 재정을 많이 쓰는 확장정책을 쓰고 있다. 이 정책을 경제부총리의 성을 영문으로 표기했을 때의 발음을 따서 ‘초이노믹스’라고 언론에서 명명하고 있다. 여기서 ‘초이(Choi)’는 ‘최’의 영문 표기이고, ‘노믹스’는 경제학(Economics)의 약자이다.

이 기사의 몇 문장만 살펴보아도 우리나라가 어떤 경제상황에 처해 있고 정부는 어떤 정책을 쓰고 있으며 이 정책의 문제점은 무엇인지를 모두 추론해 낼 수가 있다. ‘확장적인 재정 · 통화 · 금융정책으로 요약되는 초이노믹스’라는 문장에서 현재 정부가 우리나라 경제상황을 불황기로 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확장적인 재정정책을 쓴다는 것 자체가, 현재 민간부문인 가계와 기업이 소비와 투자를 줄이고 있다는 것을 알게 해준다. 한마디로 민간이 돈을 쓰지 않으니 정부라도 나서서 돈을 쓰겠다는 정책인 것이다.
| 정부의 개입은 필요하지만 비용에 대한 부담도 필연
‘부채를 늘리면서 재정을 확대’한다는 비판은 재정정책이 가질 수밖에 없는 문제점을 잘 알려주고 있다. 불황이니 세금이 많이 걷힐 리가 없다. 기업이 돈을 많이 벌어 투자를 늘려야 일자리가 생겨 가계의 소득이 증가하고 이래야 가계와 기업으로부터 들어오는 세입이 늘어날 터인데, 불경기이니 세수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 확장정책으로 인하여 정부가 돈은 많이 써야 하고, 세수는 없는 상황에서 재정을 많이 쓰는 방법은 정부가 빚을 내는 수밖에 없다. 이렇게 늘어나는 정부부채가 재정에 부담이 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원론적으로 정부재정은 세입과 세출이 일치하는 균형재정을 지향해야 한다. 그러나 경제가 지금처럼 불황일 때는 일시적으로 적자재정을 감수하고서도 확장정책을 통해서 정부재정을 경제활성화의 도구로 활용하는 것이 재정정책의 핵심개념이다. 만일 경기가 과열되었다면 정부는 긴축재정을 통해 과열된 시장을 식히는 역할을 한다. 이것도 경기안정화를 추구하는 재정정책의 일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권에서 재정정책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는 것은 단기적인 효과가 있을 뿐 장기적으로 경제를 활성화시키는 효과가 미미하다는 경제학자들의 의견이 있기 때문이다. 정부 정책담당자의 결정 자체가 시장원리보다 나은 판단을 할 것이라는 신뢰가 없고, 늘어나는 재정적자가 오히려 경제의 발목을 잡을 수도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많은 경제학자들이 재정정책이 최소한 단기적으로라도 경제활성화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 이것이 시장경제를 채택하고 있는 여러 나라들이 재정정책을 도입하고 있는 이유이다. 다만 과유불급(過猶不及)이란 말이 있듯 기본적인 바탕은 시장원리에 두고 적절하고 알맞은 때에 재정정책을 쓰는 것이 최대한의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재정정책을 둘러싼 정치권의 논란도 바로 재정투입의 적절한 규모와 시기를 두고 벌어지는 논란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서로 반대의견을 가진 사람들이라도 그들이 가진 견해에 차이가 있을 뿐 동일한 재정정책에 대한 이론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경제교과서에 나오는 재정정책의 핵심적인 부분만 제대로 이해해도 정부의 경제정책을 둘러싼 논란의 많은 부분을 심도 있게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전대원 진건고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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