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부터인가 집에 오는 전기요금 고지서가 지역마다 다른 형식을 띠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떤 지역은 해당 고지서가 최근 13개월 동안의 요금 추이를 막대그래프와 꺾은선그래프로 시각화해서 보여준다. 또 다른 지역의 고지서는 우리 집의 사용금액과 동일 면적의 다른 집들이 사용한 평균금액을 대비해서 보여준다. 그리고 어떤 곳은 우리집 에너지 소비현황을 다른 집에 비해 몇 % 정도 더 또는 덜 사용하였는가를 색깔로 구분하여 표시해준다.
| 고지서로 남들이 얼마만큼 전기를 사용했는지 알 수 있는 추가적인 정보 제공으로 에너지절약 효과도
첫 번째 형식의 고지서는 자신의 집이 얼마만큼 전기를 사용하였는가에 대해 절대적 기준의 정보만 제공한다. 그렇지만 다른 두 개의 고지서는 상대적인 기준을 통해 비교가 가능한 정보를 추가적으로 제공한다. 분명 첫 번째보다는 두 번째, 세 번째가 한층 개선 ? 진보된 고지서일 것이다. 내가 쓴 것보다는 남이 얼마만큼 사용하였는가에 대한 추가적인 정보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특히나 마지막 고지서는 상대적으로 얼마만큼 사용하였는가에 대해 전기를 절약하는 가구는 초록색 영역에, 낭비하는 가구는 붉은색 영역에 표시하고 평균과 비교했다는 점에서 디자인 측면에서도 이채롭기까지 하다.
그렇다면 이와 같은 고지서의 형식 변화는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인가? 고지서를 받아 본 고객의 입장에서 어떤 형식의 고지서가 에너지절약에 더 큰 효과를 발휘할 것인가는 관심의 대상이 아닐 수 없다.

| 스스로의 행동을 촉구하는 내용보다 남과 비교하는 내용의 전단이 에너지절약 효과가 커
이와 같은 고지서의 변화는 하나의 작은 실험에서 시작되었다. 2004년 미 캘리포니아 산마르코 지역에서 다음과 같은 실험이 행해졌다고 한다. 실험을 진행한 대학에서는 집집마다 에어컨을 끄고 선풍기를 틀어 에너지를 절약하자는 캠페인 전단을 걸어놓았다. 이때 모두 같은 캠페인 전단을 달아 놓은 것이 아니라 네 가지로 형식을 달리한 정보가 담긴 전단을 걸어놓은 것이다. 과연 어떤 전단을 달아 놓은 집이 에너지절약 효과가 큰지 실험해보자는 심산이었다.
네 가지 형식의 전단지에는 다음과 같은 글을 적어놓았다. 그 전단지의 글귀는 ‘돈을 아끼자(Save the Money)’, ‘지구를 구하자(Save the Planet)’, ‘좋은 시민이 되자(Be a Good Citizen)’, 그리고 ‘당신의 이웃이 더 잘하고 있다(Your Neighbors are Doing Better)’이었다.
이 실험의 결과에 대해 여러분은 어떻게 예상했는가? 아마 모든 그룹에서 에너지 효과가 있었을 것이라고 예상했을지도 모른다. 돈을 아끼자고 하거나, 지구 환경보호라는 큰 뜻에 동참해 달라거나 혹은 좋은 시민이 되자고 강조한 메시지는 사람들의 에너지절약 행동에 자발적 동참을 유인할 것으로 예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과는 의외였다. 마지막 글귀를 달아 놓은 집들의 에너지절약 효과가 다른 글귀를 달아 놓은 그룹에 비해 더 큰 효과를 거두었다. 즉, ‘이웃들이 자신보다 더 에너지를 절약하고 있다’는 글귀에 행동을 취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전기요금 고지서가 왜 이렇게 바뀌게 되었으며, 이와 같은 고지서의 변화만으로도 에너지절약 효과가 발생할 수 있을 것임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경제는 사람들의 행동을 변화시키기 위해 유인(incentive)을 강조한다. 유인의 변화는 결국 개인들에게 비용과 편익(cost and benefit)의 상태를 바꾸어 행동의 변화를 가져온다는 것이다. 물론 사람들의 행동을 바꾸기 위해 돈으로 해결되지 않는 것도 많다. 오히려 돈을 결부해 효과를 제대로 보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중요한 사실은, 사람들의 행동에 실질적인 변화를 주기 위해서는 인간 행동에 대한 다양한 연구와 실험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사람을 이해할 수 있는 흥미로운 실험을 통해 중요한 모티브를 얻는 것이다. 또한 이러한 실험을 통해 나온 아이디어가 실현될 수 있는 데이터의 존재도 무시할 수 없다. 빅데이터(Big Data)의 존재가 우리의 삶과 전(全)지구적 생활에 도움 되는 방편으로 이용되길 기대한다.
참고자료
1. 『Switch: How to Change Things When Change Is Hard』, Chip Heath & Dan Heath, Broadway Business, 2010
2. 『Nudge: Improving Decisions about Health, Wealth, and Happiness』, Richard H. Thaler, Penguin Books, 2009
김진영 KDI 경제정보센터 자료개발실장
jykim@kdi.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