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매년 9월 이듬해 살림살이를 위해 집행할 예산사용계획(예산안)을 공개한다. 세금으로 거둬들인 돈을 어떻게 쓸지 국민들에게 알리는 것이다. 내년, 즉 2015년 예산안을 살펴보면 앞으로 정부가 어느 분야에 초점을 맞춰 정책을 펼칠 것인지 파악할 수 있다. 국민들에게 꼭 필요한 사업 혹은 장기적으로 중요한 분야일수록 투입하는 예산이 큰 폭으로 늘어나기 때문이다.
정부는 내년도 보건 · 복지 · 노동 분야를 포함한 복지예산에 115조 5천억 원을 배정했다고 밝혔다. 이는 내년 전체 예산 총액인 376조 원의 30.7%에 해당한다.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2015년 예산안이 그대로 국회를 통과한다면 올해 처음으로 100조 원을 돌파한 복지예산이 내년엔 사상 처음 전체 예산의 30%를 초과하게 된다.
| 정부의 복지공약 반영한 첫 번째 예산
내년은 현 정부의 복지 관련 공약들이 완전하게 시행되는 첫 해다. 현 정부는 기초연금, 무상보육, 맞춤형 급여체계 개편 등 이른바 ‘3대 복지 공약’을 내놓은 바 있다.
만 65세 이상 소득 하위 70% 노인에게 지급하는 기초연금은 최대 지급액이 올해 월 20만 원(개인기준)에서 물가상승률을 반영해 20만 3천 6백 원(연 244만 원)으로 1.8% 오른다. 보건복지부는 올해 7월부터 시행된 기초연금이 내년 한 해 동안 완전히 지급되려면 7조 6천억 원(464만 명 지원)이 필요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올해보다 2조 3천억 원 이상 늘어난 것이다.
기초생활보장제도를 기존 최저생계비 등 통합급여에서 생계급여, 주거급여, 교육급여, 의료급여 등 개별급여로 전환하는 ‘맞춤형 급여체계 개편’이 국회를 통과해 내년부터 시행된다면, 저소득층을 위한 생계급여 지원액은 월 57만 원(4인 가구 기준)에서 60만 원으로 증가한다. 주거급여도 지급대상(73만 가구→97만 가구)이 늘어나고 임대료 지원 단가(9만 원→11만 원)도 상승한다.
‘송파 세 모녀 사건’ 이후 취약계층 지원 필요성이 강조되면서 일시적으로 어려움에 빠진 가구를 대상으로 하는 긴급복지 지원도 강화된다. 정부는 내년도 긴급복지 지원자격을 월 소득 245만 원 이하에서 309만 원 이하 소득자로 낮췄으며 사업을 위한 예산도 499억 원에서 1,013억 원으로 2배 이상 확대했다. 이에 따라 올해 8만 건이었던 긴급복지제도 지원대상자는 내년도 16만 건으로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또 저소득 노인과 장애인, 아동 가구 등 전국 96만 가구에는 10만 원 수준에서 에너지바우처를 지급한다. 이를 위해 1,053억 원의 예산이 새롭게 배정됐다.
지난해부터 시행했던 무상보육을 확대하기 위해서는 3조 3천억 원의 예산이 투입된다. 정부는 일하는 여성들이 원하는 시간에 어린이집을 이용할 수 있도록 시간제 보육기관을 85곳에서 230곳으로 늘리고 171개소의 국공립 어린이집을 추가 선정할 계획이다. 저소득 한부모 가족의 아동 양육비를 연간 84만 원에서 120만 원으로 높이고 경력단절 여성의 취업지원을 위한 직업교육 훈련과정도 확대할 예정이다.

| 실업 크레딧, 반값 등록금…알면 유용한 복지예산
이르면 내년 하반기부터 구직급여를 받는 실업자는 국민연금 보험료의 25%만 내고 국민연금의 가입기간을 유지할 수 있는 실업 크레딧 제도가 도입된다. 예를 들어 실직 전 소득이 120만 원(인정소득 60만 원)인 사람이라면 연금보험료 5만 4천 원(60만 원의 9%)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1만 3천 5백 원만 내면 구직기간을 국민연금 가입기간으로 인정받는 것이다. 보험료 산정을 위한 인정소득액은 실업 직전 3개월간 평균소득 월액의 50%로 정하되 상한선은 70만 원으로 결정됐다.
교육예산으로 분류되지만 대학생들의 경제 부담을 낮춰주기 위한 ‘반값 등록금’도 내년부터 완전하게 시행된다. 정부는 내년도 관련 예산을 2천억 원 늘려 소득 하위 20% 미만 가구 대학생에게는 등록금 전액을 지원하고 소득 하위 20~40% 대학생에게는 등록금의 75%, 소득 하위 40~70% 대학생에게는 등록금의 50%를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대학생들이 월 24만 원보다 낮은 가격에 이용할 수 있는 기숙사 건립을 지원하고 대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든든학자금’ 대출 대상은 소득 하위 70%에서 80%로 늘린다.
기초연금처럼 매년 예산 투입이 수 조 원씩 증가할 수밖에 없는 사업들이 포함되면서 복지예산은 해마다 크게 뛰고 있다. ‘2014~2018년 국가재정운용계획’에 따르면 오는 2018년 복지예산은 137조 7천억 원(연 평균 6.7% 증가)까지 가파르게 늘어날 것으로 추정된다.
문제는 재원조달 방식이다. 일단은 빚을 내서 세수 부족분을 충당하겠다는 것이 정부 방침이다. 기획재정부 발표에 따르면 내년도 관리재정수지(정부가 세금으로 거둬들인 돈 가운데 예산에 사용하고 남은 돈)가 33조 6천억 원 적자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박윤수 매일경제 경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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