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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릭경제교육(종간)
초 · 중등 공교육은 어떻게 보편화되었나?
고 선 중앙대학교 경제학부 교수 2014.10.31

오늘날 우리나라의 아동과 청소년들은 초 · 중등 공교육과 함께 자라나고 있다. 최근에는 고등학교를 의무교육에 포함하려는 계획이 본격적으로 논의되고 있다. 거의 대부분의 선진국에서는 초 · 중등 공교육이 잘 갖추어져 있고, 대부분의 학령기 아동과 청소년들이 공교육의 혜택을 받고 있다.

역사 속에서 공교육의 발전과 확산은 인적자본의 축적과 향상에 크게 기여하였다. 초 · 중등 교육이 보편화되며 기본적인 문해(文解) 및 수리 능력은 물론 기초과학 지식을 취득하고 사고력이 향상된 사람들이 빠르게 늘어났다. 인구 전체의 교육수준 향상은 새로운 지식과 기술의 확산을 가속화하였고, 급속한 경제성장으로 이어졌다. 즉, 초 · 중등 교육의 보편적 확산은 근대적 경제성장의 기반이 되었고, 이는 오직 공교육을 통해서만 이루어졌다.


| 교육에 대한 수요는 교육의 투자수익률에 따라 결정돼

물론 교육이 항상 공교육의 형태로 이루어졌던 것은 아니다. 교육의 역사는 오래되었지만, 대부분 사립학교를 통해 이루어졌다. 사립학교의 운영경비는 보통 수업료를 징수하여 마련되었다. 사립학교들은 대개 비싼 수업료를 징수하는 대신 우수한 교원과 잘 갖추어진 시설에서 양질의 교육을 제공하는 형태로 발전해 나갔다. 때때로 정부에서 공립학교를 설립한 경우도 있었지만, 전체 학령기 아동보다는 소수의 엘리트 학생들을 교육시키기 위해서였다. 이렇듯 과거의 교육체제가 엘리트 중심 교육으로 이루어진 데는 교육에 대한 수요를 결정하는 다양한 경제적 요인이 영향을 미쳤다.

교육에 대한 수요는 다른 제도적 · 문화적 제약이 없다면 교육의 투자수익률에 따라 결정된다. 교육의 투자수익률은 교육을 받기 위해 투입되는 비용과 교육을 받고 난 이후 얻게 되는 미래 편익 전체를 현재가치로 평가한 값을 비교하여 계산한다.

교육의 편익은 노동시장에서 교육수준이 높은 노동의 수요와 공급에 따라 결정된다. 수요가 많거나 공급이 적은 경우 교육에 대한 노동시장의 보상수준이 높아지며 교육의 편익과 투자수익률은 커진다. 교육의 비용에는 수업료 등 직접비용과 학교에 진학하기 위해 포기하게 되는 근로소득 등의 기회비용이 있다. 학비가 비싸거나, 아동과 청소년이 손쉽게 취업하여 적지 않은 소득을 올릴 수 있는 경우에는 교육의 비용이 상승하며 투자수익률이 하락한다.

자료를 이용하여 정확하게 계산하기는 어렵지만, 보통 근대적 경제성장이 이루어지기 이전에도 교육에 대한 노동시장의 보상수준은 상당하였다고 판단된다. 교육받은 노동에 대한 수요는 기술이 빠르게 진보하고 산업구조가 고도화된 오늘날만큼 높지는 않았겠지만, 상업과 행정의 발달 속에 꾸준히 일정수준 이상을 유지했으리라 생각된다. 하지만 값비싼 소수의 사립학교를 통해서만 교육이 이루어졌기에 교육기회는 제한되었고, 교육수준이 높은 노동력의 공급은 매우 적었다.

수요에 대한 공급의 상대적 부족은 노동시장에서 교육에 대해 상당한 보상이 이루어질 수 있는 환경을 제공했다. 상업과 공업뿐만 아니라 농업에서도 읽기 · 쓰기 · 셈하기와 기초적인 과학지식의 습득은 의미가 있었다. 서신 교환, 기술서적의 유통, 신문과 협회지의 회람을 통해 교육받은 농부들은 그렇지 않은 이들보다 새로운 농기구의 도입, 농작법의 개선, 종자의 개량에 대한 소식을 빨리 접하고 생산성을 더욱 높일 수 있었다.

노동시장에서 교육에 대해 충분한 보상이 이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왜 교육의 보편적 확산이 19세기 이전에는 이루어지지 않았을까? 신분이나 법제도에 따른 차별은 충분한 설명이 되지 않는다. 일반 서민의 자녀를 위한 교육시장이 왜 역사적으로 형성되지 않았는지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제도보다는 경제적인 요인들을 살펴보아야 한다.

우선 비용의 측면에서 문제가 있었다. 사립학교의 수업료 수준은 상당히 높았고, 근대적 경제성장기 이전에 대부분의 서민들이 최소한의 생계를 꾸려가는 수준의 환경에서 자녀의 교육을 위해 수업료를 부담할 만한 여력은 별로 없었다. 기회비용도 컸다. 농경사회에서부터 아동의 노동(이하 아동노동)은 유용하게 활용되었다. 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잔심부름을 한다든지 가벼운 작업을 보조하는 방식으로 가계의 경제활동에 참여하였다. 상업과 공업이 발달하면서 몸집이 작고 손놀림이 재빠르며 유연한 아동노동에 대한 새로운 수요가 나타나기도 했다. 가구 소득수준이 별로 높지 않은 경우에 아동노동의 가계경제에 대한 기여도는 더 컸다.


| 지불 여력은 자녀교육 투자의 효율성과 직결

하지만 더 심각한 문제는 다른 데에 있었다. 교육의 편익은 교육을 받고 난 이후 미래에 나타나지만 교육의 비용은 교육을 받는 시점에 미리 지불되어야 한다. 따라서 미래에 받게 될 전체 편익의 현재가치가 비용보다 훨씬 더 크다고 하더라도, 지금 당장 비용을 지불할 여력이 안 되는 경우에는 자녀의 교육에 대한 투자가 효율적인 수준으로 이루어질 수 없었다.

더구나 예전에는 자본시장이 충분히 성숙하지 못하여, 미래의 편익을 담보로 자금을 융통하여 현재 시점의 교육비를 지불할 수도 없었다. 따라서 교육의 보편적 확산은 시장을 통해서가 아니라 정부의 개입 또는 사회 전체적인 노력을 통해 이루어졌다. 19세기 이래로 국가 또는 지역사회 차원에서 공립학교를 세우고, 초 · 중등 공교육이 아동과 청소년에게 보편화된 데는 이러한 배경이 있었다. 초 · 중등 교육은 교육받은 개인에 대한 편익 이외에도 사회 전체적으로 인적자본을 축적하고 기술의 전파를 촉진하는 등 상당한 양의 외부효과를 가져온다. 하지만 자본시장이 불완전하고 시장을 통해 도입할 때 비용이 크게 소요되어, 정부나 지역사회가 개입하여 직접 학교를 설립하고 세금으로 운영하게 된 것이다.


| 초 · 중등 공교육은 교육 재정투자 확대로 이어져

공교육의 확산 과정에는 지역별로 편차가 컸는데, 특히 19세기 미국이 한 발 앞섰다. 미국의 초 · 중등 교육 발전이 다른 국가들보다 앞선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민주주의가 다른 국가들보다 더 일찍 성숙하여 세금에 기반을 둔 공교육의 도입이 보다 수월하였다. 특히 투표권에 대한 경제적 제한을 철폐하고 백인 성인남성 모두의 참정권을 보장하며 공교육에 대한 투자가 가속화되었다. 지방정부에게 학교 설립과 교육세 징수권한이 부여된 점도 중요했다. 국가 차원의 의사결정을 위해 시간과 비용을 투입할 필요 없이, 각 지역별로 의견이 수렴될 때마다 세금을 거두어 공립 초등학교를 손쉽게 세우고 운영할 수 있었다. 한편, 영국 등과 달리 미국에서는 남녀 모두 동등하게 초등교육을 받았다. 여성에 대한 차별이 없어서 다수의 여성들이 교육을 받았고, 이들이 교직으로 진출하며 교원의 구인과 채용이 용이했다.

물론 모든 게 시작부터 완벽하지는 않았다. 19세기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미국의 많은 공립학교에서 재정부족으로 인해 학부모로부터 수업료를 징수했다. 교사들은 교원이 되기 위한 충분한 교육과 훈련을 받지 못했다. 학교 시설은 열악했고, 보통 한 교실에서 서로 다른 연령과 수준의 학생들이 학년과 교과 구분 없이 뒤섞여 한 명의 교사로부터 교육을 받았다. 연중 교육일수도 한두 달 정도로 짧았고, 교육과정도 체계적으로 구성돼 있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교육에 대한 재정투자가 늘어나고, 교육행정이 체계화되면서 오늘날과 같은 형태의 학교교육으로 발전하였다. 초등교육부터 시작된 보편적 공교육은 이후 중학교와 고등학교로 확산되었다. 시기는 달랐지만 초 · 중등 교육의 보편화 과정은 재정투자의 증가에 따라 대부분의 국가들에서 유사하게 나타났다. 초 · 중등 교육의 보편적 확산은 국가 전체의 인적자본 수준을 향상시키며 근대적 경제성장의 결실을 가져왔다.


고 선 중앙대학교 경제학부 교수

sungo@ca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