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이 즐거워야 학교가 즐겁고, 학교가 즐거워야 학생과 교사가 행복하다. 교사는 정확하고 바르게 학생들에게 꼭 필요한 내용을 열심히 가르쳤다고 말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배운 학생이 얼마나 있는가?”이다. “지난주에 배운 것의 주요 내용이 무엇이었는가?”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50명 중 겨우 두 명의 학생만이 알고 있다고 대답한다고 한다.
가르침과 배움은 동의어가 아니다. 얼마 전 EBS에서도 소개했던 미국의 교육연구소 NTL(National Training Laboratories)에서 발표한 학습 피라미드(Learning Pyramid)는 다양한 공부 방법에 대하여 24시간 후에 기억하는 학습량의 비율을 나타낸 것으로 우리나라의 교육에 대한 강한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다.
학교나 학원에서 교사가 강의로 설명하는 교육의 효과는 5%에 불과하고, 학생들이 열심히 읽으면서 공부하는 것이 10%이며, 그렇게 강조한 시청각 교육은 20%에 불과하다. 그런데 토론학습은 50%, 직접 해 보기나 체험은 75%,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것은 90%의 효율을 갖는다. 강의를 듣기만 하는 것보다 효율성이 더 높다는 뜻이다.
| 중 · 고등학교에서는 여전히 전통적인 교수법에 의존
우리 교육계는 그동안 나름대로 열심히 교수-학습 방법 개선을 위해 노력해 왔다. 1980년대 후반부터 전개된 열린교육 운동은 교실 수업 개선의 계기를 마련해주었다. 교실을 개방하여 교사들의 수업 노하우를 공개하고 전파하는 데 일조하였다. 인터넷의 발전으로 인한 ICT 활용 수업의 도입 또한 수업방법의 개선에 큰 영향을 끼쳤다. 지루하고 인내를 요했던 종전의 강의식 수업에 효율적인 설명과 동영상을 제공하는 시청각 교육이 가능해졌으며 개별학습과 반복학습 등을 가능하게 했고 이제는 스마트기기 활용 교육으로 연계되고 있다. 교사들의 수업력도 세계 어느 나라와 견주어도 손색없는 명품에 가깝다.
그러나 아쉬운 것은 이러한 활동도 초등학교에서만 의미 있는 효과를 거두었을 뿐, 중 · 고등학교에서는 아직 변화의 의미와 효과를 논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최근 들어 교과교실제 운영이 확산되면서 변화를 보이고 있지만 이러한 교육환경의 변화가 상급학교로 향하면서 모든 것이 입시에 맞추어져 변질되고 있다. 교사들의 수업방법도 입시에 초점이 맞추어진 강의식 수업에 치우쳐 있다. 효율적인 설명과 강의를 위해 파워포인트 등과 같은 첨단 설명 도구와 시청각 자료를 이용하여 더 많은 것을 가르치려고만 하고 있다. 여전히 전통적인 교수법에 의존하고 있는 것이다. 왜 그럴까?
입시제도의 문제점도 있겠으나 아마도 ‘전통적’이라는 단어가 설명해 주고 있듯이 학습에 대한 재구성이나 검토 없이 계속 가르치는 이유는 우리가 바로 그렇게 교육받았기 때문이다. 선생님들은 그저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과 교과서의 내용을 열심히 가르쳐 주려 하고, 학생들은 받으려는 데 주력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시대가 요구하는 진정한 교육이라고 할 수 없다. 미래사회를 준비하기 위해 교사는 지식을 나눠주는 전통적인 역할에서 학생들이 성장하도록 도와주는 멘토와 경험의 편성자 역할로 전환해야 한다.
| 우리의 교육은 개성 · 창의성 · 독창성이 부족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의 15세 학생들을 대상으로 시행하는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 2009 결과에서 우리나라는 OECD 회원국(34개국) 중에서 읽기 1위, 수학 1위, 과학 3위로 우수한 성적을 거두었고, 우리나라의 교육이 국제사회에 모범사례로 소개되었다.
필자가 해외 연수 중에 경험했던 외국 교사들과의 워크숍에서도 한국의 교육에 대한 관심과 호기심은 대단했다. 그들은 한국 교사들의 처우와 교원들의 사기, 주당 수업시수, 교원제도 등에 관하여 높은 기대와 호기심으로 질문을 던졌다. ‘한국에서는 어떻게 가르치기에 자기네 나라의 학생보다 월등히 높은 점수를 얻는가?’ 자국 학생들의 낮은 학업성취 수준을 높이기 위하여 좋은 결과를 얻은 한국 교사들과의 만남에서 좋은 정보를 얻으려는 진지하고 솔직한 태도를 그들에게서 엿볼 수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우리나라 교육 현실에 대한 설명을 듣고는 실망감과 의아함을 표출했다. 우리의 교육은 아직까지 많은 학생을 대상으로 ‘교사 중심 일방향식 수업방식’, ‘입시 중심 단시간 내 성적향상’이라는 기대치에 맞추어져 있고, 학생들의 개성 · 창의성 · 독창성을 기를 수 있는 흥미 있는 학습법과 자기주도 학습 능력 신장에 중심을 둔 배움 중심의 수업이 부족했다.
| 학생들의 배움이 충실하게 일어나고 활성화돼야
미래의 지식 기반 정보화사회는 숙련된 단순 기능인보다 자기주도적으로 지적 가치를 창조할 수 있는 자율적이고 창의적인 인간을 요구한다. 우리의 교육도 이제는 결과보다 학습 과정과 학습 방법에서 철저하게 학생 중심의 배움이 일어나는 교육으로 변화해야 한다. 또한 즐기면서 공부할 수 있는 교육환경과 제도로 학생들의 행복을 고려한 교육으로 바뀌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모든 학생들이 함께 공부할 수 있는 수업, 서로를 배려하면서 개인적인 특성과 개성을 중시하는 수업, 첨단 정보 통신과 다양한 학습 콘텐츠를 활용하여 학생의 흥미를 이끌어내되 인간이 중심이 되어 토론하고 체험하고 협력하는 수업, 서로가 가르쳐 주면서 배우는 교수-학습 방법의 혁신이 우선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가 자연스러울 수 있도록 교육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제도적 보완이 절실히 필요한 때이다.
이따금씩 ‘가르침 시대의 종말이 다가온다.’라는 말이 들린다. OECD 국가에서는 이미 가르침에서 배움으로 중심 이동이 이루어졌다, 우리나라도 변화할 토양이 다져지고 있는 상태이다. 배움공동체학습, 협동학습, 하브루타학습(유대인의 전통 교육방식), 거꾸로교실, 활동중심학습, 프로젝트학습, 토론학습, 탐구학습, 체험학습뿐만 아니라 자유학기제, 성취평가제 등은 배움이 중심이 되는 교수-학습의 혁신이라는 맥락에서 이해하고 실천하자는 것이다. 따라서 교사들이 연구하고 준비해야 하며, 국가에서도 교육과정이나 제도의 잦은 변화보다 일선 학교 현장에서 학생들의 배움이 충실하게 일어나고 활성화될 수 있도록 뒷받침해야 할 것이다.
이문한 양진중학교 수석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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