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는 아이의 키를 보고 얼마나 성장했는지를 안다. 이른바 키는 성장의 척도인 셈이다. 그런데 부모의 눈으로는 아이가 어느 정도 성장하면 ‘컸다’고 표현하고, 다른 아이들에 비해 키가 많이 크지 않더라도 ‘크다’라고 말할 수 있다. 이러한 표현은 정확하지 않다. 키가 크거나 작다고 말할 수 있으려면 누구나 인정하는 객관적인 척도가 필요하다. 그래서 우리는 키자 등으로 키를 측정해 160cm, 170cm 등의 수치로 표현한다.
국가의 성장도 키자의 측정치처럼 객관적 수치가 존재한다. 바로 GDP(Gross Domestic Product, 국내총생산)이다. GDP는 무엇일까? 일정 기간(보통 1년) 동안 한 나라에서 새로이 생산된 최종 재화와 서비스의 시장가격의 합이다. 키와 GDP는 성장의 척도이며, 그 측정 결과는 보편 타당하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 한국경제의 규모는 세계 14위, OECD 가입국 중 8위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얼마만큼 성장한 것일까? 우리의 GDP 규모와 세계 순위를 살펴보자. 한국은행에 따르면, 2013년 우리의 실질 GDP(시장가격)는 약 1,382조 원이다. 같은 시기 세계은행(World Bank)에서 집계한 국가별 GDP 순위를 보면, 우리는 전 세계 253개국 중 14위에 해당한다.
혹자는 우리보다 늦게 경제개발을 시작했거나 절대빈곤에 시달리는 나라들과 우리나라를 동일선상에 놓고 비교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OECD 국가들 중 우리의 경제규모는 어느 정도일까? 2013년 OECD 가입국(총 34개국) 중 우리나라의 실질 GDP는 여덟 번째로 크다(우리보다 GDP 규모가 큰 나라는 미국 · 일본 · 독일 · 프랑스 · 영국 · 이탈리아 · 멕시코에 불과하다).
일반적으로 경제발전 초기의 경제성장률은 매우 높게 나타난다. 그러다 일정 수준의 궤도에 오르면 성장률이 둔화된다. 투입되는 자원이 한계에 도달했거나 양적 요인이 아닌 질적 요인의 변화가 중요해지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우리의 경제는 어느 단계에 있는지 알아보자.
| 1990 · 2000년대의 성장은 1970년대보다 늦어
그러면 경제성장이 본격화된 1970년 이래, 우리나라는 어떻게 성장해 왔을까? 국가경제는 성장할수록 그 속도가 둔화된다고 했는데, 우리나라도 그럴까?

경제발전이 본격화된 1970년부터 1990년대 초까지 약 20여 년 간, GDP로 계산한 우리나라의 경제성장률은 평균 10%에 육박했다. 1980년대 말엔 3저 호황(저달러 · 저유가 · 저금리)과 '88 서울올림픽이란 호재도 있었다. 그러나 1991년 이후 10년 동안은 IMF 구제금융의 충격 여파로 약 6.6%, 2000년 이후 10년 동안은 2002년 한 · 일 월드컵 때를 제외하고는 5% 수준을 크게 넘지 못했고, 미국발(發) 금융위기까지 겹쳐 약 4.2%에 그쳤다. 매해 하락세를 보였던 건 아니지만, 최근 10년 동안의 성장 속도는 경제발전을 시작한 시기보다 둔화되었다.
| 국가경제의 상태 측정 도구로서 GDP의 한계와 대안
키를 재는 것은 건강을 측정하는데 필요하지만, 그 자체로 건강을 말할 수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혈압도 측정하고, 체온도 재는 등 추가적인 검사를 받는다. 이와 유사하게 GDP도 한 나라 경제의 상태를 알아보는 데는 부족하다. 그렇다면 경제 상태를 측정하는 데 있어서 GDP의 한계는 무엇일까?
먼저 자급자족과 가사노동은 여타의 재화 생산과 같이 시간을 투입하는 노동이 수반됨에도 GDP의 범주로 넣지는 않는데, 이는 시장을 통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암시장 거래 혹은 밀수는 재화의 판매로 이윤이 발생하고, 그로 인해 개인의 부(富)가 증대되는 측면이 있지만 역시 국가의 부로는 연결되지 않는다(오히려 해악을 끼치는 측면도 있다). 그러나 규모를 파악하기 어렵기 때문에 이 또한 GDP에는 포함되지 않는다.
환경문제도 있다. 가령 봄철의 황사나 겨울철의 스모그 등은 대기오염으로 국민들의 건강을 위협하는 등 사회적인 비용이 발생할 수 있지만, 그 자체로 GDP를 감소시키지는 않는다.
복지 또한 반영되지 않는다. 정부의 이전지출(transfer payment)은 사회적 약자를 위해 지원되지만, 이러한 비용이 증가 혹은 감소한다고 해서 GDP가 변동하지는 않는다. 결국 GDP는 그 나라 시장경제의 규모를 파악하는 좋은 도구지만, 최종 재화를 생산하지 못하는 노동의 가치가 과소평가되며, 국가의 부에 해가 될 수도 있는 음성적 거래, 환경파괴로 인한 잠재적 경제손실, 전반적인 국민들의 삶의 질은 파악하지 못한다고 할 수 있다.
이를 반영하기 위해 그간 다양한 지표들이 등장했다. 환경문제에는 UN이 GDP의 보조 지표로 개발한 녹색 GDP, 복지문제에는 스톡홀름 환경연구소와 뉴이코노믹스 재단 등이 개발한 지속가능한 경제복지 지수(ISEW: Index of Sustainable Economic Welfare), 미국의 경제학자 토빈(J. Tobin)과 노르트하우스(W. Nordhaus)가 개발한 순경제후생(Net Economic Welfare) 등이 있다.
그러나 이들 지표조차도 GDP를 대체하지는 못하고 있다. 그렇다면 국가의 경제상태를 파악하기 위해서 무엇을 더 살펴봐야 할까? 국가경제도 규모뿐만 아니라 고용 혹은 실업 측면도 살펴보고, 물가의 오르내림도 확인하면서 다각적으로 보는 것이 상태를 더 정확히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한동익 KDI 경제정보센터 연구원
tihan12@kdi.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