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우리 인간과 침팬지의 DNA 차이는 단지 2% 수준이라고 한다. 이처럼 미묘한 DNA 차이가 두 집단의 커다란 차이를 유발했다는 사실은 놀라움과 함께 도대체 어떠한 미묘한 차이가 이처럼 커다란 격차를 유발했을까 하는 궁금증도 함께 갖게 한다.
많은 인류학자들은 우리 인류와 다른 영장류 간의 결정적인 격차가 유발되기 시작한 가장 큰 요인을 ‘직립보행’에서 찾고 있다. 약 600만 년 전 아프리카 숲에서 거주하던 원시인류 중 일부가 초원으로 이주했다. 이로 인해 숲이라는 보호막이 아닌 탁 트인 초원에서 생존하기 위해 그들은 도구를 사용하기 시작했고, 그 과정에서 뇌가 커지면서 직립보행으로 이어졌다.
| 농경사회에서 팔과 다리는 생산성의 가장 중요한 요소
인류가 두 발로 걷기 시작한 뒤부터 많은 것들이 연이어 변화하기 시작했다. 더 이상 나무를 탈 필요가 없는 인류의 발가락은 보행에 적합한 나란한 형태로 변화하기 시작했으며, 발뒤꿈치 또한 장기간 보행에 적합하도록 길고 두꺼워졌다. 다리에서부터 시작된 변화는 다시 위로 이어져 직립보행으로 자유로워진 두 팔은 정교하고 섬세한 작업에 적합한 형태로 급속히 진화해 왔다. 이로 인해 인간은 가히 경이로운 생산성을 보이기 시작했다. 즉, 인간은 직립보행으로 자유로워진 두 팔 덕분에 다양한 활동을 전개할 수 있는 ‘인적자본(human capital)’으로 거듭났으며, 한동안 두 팔과 두 다리는(이하 팔다리) 인간의 생산성을 좌우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되어 주었다.
경제사학자 로버트 포겔(Robert Fogel)은 과테말라 지역에서 1969~1977년 기간 동안 실시한 실험을 통해 인간의 육체가 가져오는 생산성 향상을 명확히 확인시켜 준 바 있다. 그는 과테말라 지역의 일부 부족에게는 아톨리(atole)라는 고단백의 무상 보조 음식을 제공하여 건실한 체격과 근력을 갖출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 반면, 다른 부족에게 단백질이 포함되어 있지 않은 음식을 제공하였다. 이러한 대조실험을 통해 그는 건실한 육체가 개인소득과 경제성장에 미친 효과를 확인할 수 있었다. 이처럼 농경사회에서 인간의 노동력 가치를 판단하는 첫 번째 기준은 원활히 일을 할 수 있는 팔다리였다.
| 정보화사회엔 팔다리보다 지식과 경험이 중시돼
하지만 지식사회 내지 정보화사회가 도래하면서 인간이 ‘일’을 수행하는 방식이 ‘손’과 ‘발’을 쓰는 형태에서 ‘지식’과 ‘경험’을 사용하는 형태로 급변하기 시작하였다. 즉, 근로를 수행하는 것이 유형의 부분에서 무형의 부분으로 점차 변화하고 있으며, 일을 수행하는 데 있어 손발에 의존하는 비중이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추세는 고용통계 분류기준에도 그대로 투영되었다.
현재 국내에서 수행하는 고용통계 방식은 국제노동기구(ILO: International Labor Organization)의 권고방식에 따라 일정 연령 이상의 인구를 바탕으로 노동가능인구, 경제활동인구인 취업자와 실업자 그리고 비경제활동인구 등으로 구분하고 있다.
먼저 노동가능인구란 노동 투입이 가능한 ‘15세 이상 인구’로 정의하는데 이는 단순히 노동가능성 여부를 나타내는 기준이다. 이러한 노동가능인구는 고용통계에서 가장 광의의 분류기준으로 우리나라 전체 인구를 크게 노동가능인구와 노동가능제외인구로 구분한다.
노동가능인구는 경제활동 참가 의사를 기준으로 다시 두 그룹으로 분류한다. 이들 중 적극적으로 경제활동 참가의사를 표현한 사람을 경제활동인구, 그렇지 않은 사람을 비경제활동인구로 분류한다. 이 중 경제활동인구는 다시 경제활동에 참가의사를 밝히고 실제 취업이 된 상태에 놓인 취업자와 그렇지 못한 실업자로 구분된다. 이러한 고용통계 분류체계를 보면, 특정 개인의 고용 내지 실업 상태를 확인하는 가장 중요한 판단 기준은 취업할 의사가 있는지 여부에 달려 있음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고용통계 분류체계의 세부 내용에서도 개인의 경제 상태를 판단하는 기준이 신체적인(physical) 측면보다는 정신적인(mental) 측면에 더욱 의존하고 있음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먼저 노동력을 제공할 수 있는 가장 기초적인 요건을 갖춘 상태로 평가받는 노동가능인구 역시 15세 이상이라는 나이를 가장 중요한 판단 기준으로 활용하고 있다. 수감자와 군인의 경우와 같이 신체가 특정 지역에 구속되어 있어 노동력을 제공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인 사람들만 노동가능인구에서 제외하고 있다. 이는 신체의 장애로 팔다리를 원활히 사용하지 못하는지 여부는 노동이 가능한지 여부를 판단하는 데 있어 더 이상 중요한 요소가 아니라는 점을 확인시켜 준다.
비경제활동인구 역시 마찬가지이다. 비경제활동인구로 분류되는 대표적인 사례를 보면, 전업주부, 학교에 재학 중인 학생 등과 같이 완전히 자신의 노동력을 투여할 여건이 되지 못하는 사람들이 포함되어 있다. 그리고 고령자와 심신장애자 역시 비경제활동인구에 포함된다. 국립국어원에 따르면 심신장애자란 ‘정신 기능에 장애가 있는 사람’을 지칭한다. 다시 말해 정신적 능력이 문제가 있어 육체노동을 원활하게 수행하지 못하는 사람은 비경제활동인구로 분류될 수 있지만, 장애 등으로 다소 육체노동에는 문제가 있어도, 정신적인 측면에서 정상적인 근로 행태가 가능한 사람의 경우에는 비경제활동인구로 분류되지 않는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실제로 장애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비경제활동인구로 분류하는 국가는 OECD 국가 중 단 한 곳도 없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우리의 생산활동의 내용이 변해감에 따라 팔다리에 대한 의존 정도가 달라져 왔다. 물론 우리의 신체 중 팔다리는 경제활동을 원만히 수행하는 데 있어 여전히 중요한 요소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과학기술이 발달함에 따라 신체의 장애가 있더라도 원만히 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 환경은 더욱 개선될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상황에서 과학기술이 보다 발달된 미래에는 고용통계 분류체계의 기준이 어떻게 변화할지 궁금해진다.
박정호 KDI 경제정보센터 전문연구원
aijen@kdi.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