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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릭경제교육(종간)
경제체온계 ‘물가’가 보내는 신호
조선영 KDI 경제정보센터 연구원 2014.12.01

사람의 정상체온은 36.5℃이다. 바깥 기온이 변해도 사람의 체온은 일정수준을 유지한다. 기온이 올라가면 혈관을 확장시키고 땀을 배출해 체온을 떨어뜨리고, 기온이 낮아지면 체온을 유지하기 위해 혈관을 수축시켜 체온이 떨어지는 것을 방지한다.

체온조절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저체온이나 고열 상태가 지속되면 우리 신체는 제 기능을 못하게 된다. 심부(心府) 체온이 38℃를 넘으면 미열, 40℃를 넘으면 고열이라고 하는데 체온이 높더라도 평상시와 같다면 별다른 처치 없이 발열현상의 원인을 찾아 해결하면 된다. 그렇지만 열이 나면서 의식이 없거나 먹기를 거부하고 경련을 일으키는 등 증상이 있으면 병원을 찾아야 한다. 특히, 42℃ 이상 초고열은 생명을 위협할 정도로 위험하다.

반면 심부 체온이 35℃ 이하인 저체온 상태에서는 피부 혈관이 수축되어 피부가 창백해지고 외부 자극에 무감각해진다. 32℃ 이하로 떨어지면 심장박동과 호흡이 느려지고 혼수상태에 빠지게 된다.


| 물가도 체온처럼 측정 시기 · 방법에 따라 차이가 발생해

그런데 같은 사람이라도 체온을 측정할 때 측정 부위와 시간에 따라 체온은 조금씩 다르게 나타난다. 외부에 노출될수록 체온이 낮고 신체 중심부로 갈수록 체온은 일정하게 유지된다. 또한 체온은 하루 중 언제 측정하느냐에 따라서도 다르게 나타나는데, 일반적으로 아침에 자고 일어날 때 체온이 다소 낮고 해가 저무는 오후 시간에 높게 나타나, 측정시간에 따라 체온이 1℃ 가량 차이날 수 있다.

체온과 같이 물가 역시 어떻게, 언제 측정하느냐에 따라 한 국가의 물가수준은 각기 다르게 나타날 수 있다. 추운 겨울에 손끝 온도와 신체 중심부 온도가 차이나는 것과 같이 다양한 상품 조합 중 어느 것을 대상으로 하는지에 따라 한 국가의 물가수준이 다르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가계에서 일상적으로 구입하는 상품과 서비스 가격으로 구성된 소비자물가와 기업이 생산하는 상품과 서비스의 가격변동을 측정한 생산자물가, 수출입 상품의 가격변동을 측정한 수출입물가지수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물가지표이다. 이처럼 다양한 물가지수 중에 ‘경제체온계’로 삼을 만한 물가지수는 무엇일까? 여기에 답을 하기 전에 물가가 우리 몸의 특정 기관이 아닌 체온에 비유되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체온은 소화기관이나 호흡기관과 같이 인체에 음식물을 필요한 영양소로 만들어 흡수하거나 공기 중의 산소를 흡수하는 역할을 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측정된 체온을 통해 몸에 이상이 있는지, 대사활동이 정상적으로 일어나고 있는지를 판단할 수 있다.

물가는 시장에서 거래되는 개별 상품의 가격을 중요도에 따라 가중치를 달리하여 평균적인 물가수준을 측정한 것이다. 물가가 높다고 경제가 호황이고, 낮다고 불황임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체온계로 건강의 이상여부를 확인하듯 물가가 지속적으로 또는 급격하게 상승하거나 하락하는 경우 경제활동에 이상 신호가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개별 상품의 가격이 수요와 공급을 반영한다면, 개별 가격을 종합한 물가는 국민경제의 총수요와 총공급을 반영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물가는 생산과 소비 등 한 국가의 경제동향을 파악하는 데 중요한 지표로 활용된다.


| 물가안정목표 지표로 소비자물가를 많이 사용

다시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물가는 목적에 따라 소비자물가 · 생산자물가 · 수출입물가 등 여러 가지 형태로 작성된다. 물가지수마다 장단점이 있으나 그 중 우리가 가장 흔히 사용하는 물가는 단연 소비자물가라 할 수 있다.

체온계가 36.7℃~37℃를 가리키면 정상체온이라고 판단하듯 물가 역시 ‘물가안정목표제’라는 물가의 정상체온 범위를 설정한다. 우리나라 중앙은행인 한국은행에서 정부와 협의하여 공식적으로 채택하는 물가는 소비자물가이다. 2013~2015년 중 우리나라 물가의 정상체온은 소비자물가 상승률(전년동기대비) 기준 2.5~3.5%로, 한국은행은 이 범위를 벗어나지 않도록 관리하고 있다. 소비자물가를 대상지표로 사용하는 이유는 넓은 포괄범위 · 속보성(速報性) · 인지도 등에서 우수한 특성을 보유하고, 국가 정책결정의 준거로도 활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물가안정목표제를 도입한 국가 중 태국을 제외한 26개국 중앙은행 역시 소비자물가지수를 목표 대상지표로 사용하고 있다.

<그림>의 우리나라 소비자물가 상승률과 물가안정목표 추이를 보면, 우리 경제가 저체온 상태에 있음을 알 수 있다. 2010~2012년 중 물가안정목표는 비교적 잘 달성되었지만, 2013년 이후 우리나라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1%대에 머물러 있다. 물가안정목표 하한치인 2.5%와 1%p 이상 차이가 난다. 체온은 정상체온에서 1℃만 떨어져도 면역력이 30% 떨어지고, 혈액순환이 원활하지 못해 신체균형이 깨지고 질병에 쉽게 노출된다.


| 저물가 상태의 지속은 경제활력을 떨어뜨릴 수 있어

물가도 목표범위에 하회하는 저물가 상태에 빠지면 경제활동에도 이상신호를 감지할 수 있다. 현재 우리나라의 저물가 상태는 국제 유가 및 원자재 가격 하락에 내수부진 등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저물가 상태가 지속될 경우 실질금리 상승으로 가계는 소비를 줄이고, 기업은 투자를 기피하게 된다. 또한 실질임금 상승으로 기업은 인건비 부담으로 고용을 줄이고, 화폐가치 상승으로 채무부담은 증가한다. 이는 다시 내수부진을 심화시켜 경제활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

불과 2~3년 전만 해도 물가안정은 고물가 · 인플레이션과 함께 언급되어 왔다. 당시 이슈는 ‘어떻게 치솟는 물가를 잡아 국민들의 생활을 안정시킬 것인가’였다면, 지금은 ‘물가를 적정 수준으로 높여 사람들의 지갑을 열고 투자를 이끌어내 생산과 소비를 촉진할 것인가’로 화두가 옮겨졌다. 빨갛게 달아오른 경제체온계를 보고 발열 원인을 찾는 데만 급급하여 어느 순간 파랗게 식어버린 체온계의 신호를 이제야 인식했다. 경제체온이 더 떨어져 혼수상태에 빠지지 않도록 경제활동에 다시 불을 지필 때이다.


조선영 KDI 경제정보센터 연구원
sycho@kdi.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