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이 진보하면 인간의 노동에 종말이 찾아올까? 기술진보에 대한 장밋빛 전망을 가진 사람들은 언젠가 미래에는 고된 노동을 기계가 대신하고 인류는 여가를 즐기며 행복하게 살아가리라 꿈꾸기도 한다. 반면 기술진보에 대해서는 낙관적일지 몰라도 기계가 사람들의 일자리를 빼앗아가며 오히려 많은 이들의 인생이 더 불행해질 수 있다는 비관적인 시각도 존재한다. 인류의 등장 이후 오늘날까지 기술수준은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따라서 역사적 경험을 살펴본다면 기술진보가 인류의 노동에 대해 미치는 영향이 앞으로 어떻게 발현될지 짐작해 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 수직포공의 비극: 기계도입 아닌 노동공급 증가 때문
우선 영국 산업혁명기(期)를 살펴보면 새로운 기계가 도입되며 기존의 전통적인 숙련공들의 일자리가 사라졌을 것이라고 많이 생각한다. 역사가들도 이러한 점들에 많이 주목해왔는데, 대표적으로 널리 알려진 사례가 수직포공의 비극이다. 19세기 초반이 되면서 영국의 방직산업에서 동력을 이용한 방직기의 사용이 확산되었다. 같은 기간 동안 수직포공의 급료 수준은 급락했고, 많은 수직포공과 가족들이 빈곤의 나락으로 떨어지게 되었다. 그러나 수직포공의 급료 수준 하락은 일자리가 새로운 기계로 대체되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동력 방직기의 도입에도 불구하고 복잡하거나 섬세한 직물은 여전히 숙련공들이 손으로 직접 짜내야 했고, 따라서 수직포공들의 고용도 유지되었다. 하지만 경기가 둔화되던 상황에서 수직포공의 수가 늘어나면서 급료 수준이 크게 하락하였던 것이다.
기술진보에 대한 당대인들의 인식은 어떠했을까? 기술진보에 대한 저항의 상징처럼 알려진 대표적인 사건은 영국 산업혁명기에 일어난 기계파괴 운동이다. 특히 1811년부터 1817년까지 영국 직조공들이 벌인 기계파괴 사건들은 러다이트 운동으로 불리기도 한다. 기계파괴 운동의 배경 속에 기계와 기술진보에 대한 적대감이 없었다고 보기는 힘들다. 또한 실제로 기계파괴 운동은 종종 새로운 기술 도입을 성공적으로 지연시키기도 했다. 하지만 기계를 파괴하는 행위 자체는 숙련공들이 높은 급료라든지 더 나은 노동조건을 얻기 위해 자신들을 고용한 업자에게 항의하는 전통적인 시위 방식이었다. 업자들이 소유한 기계의 파괴는 일종의 상징적인 행동이었고, 기술진보에 대한 직접적인 저항이었다고 해석하기는 힘들다.
| 여성 · 아동의 노동수요 ≠ 성인 남성의 노동수요
기계와 기술진보가 일자리를 빼앗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산업혁명기에도 기술진보는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기도 했는데, 대표적으로 여성과 아동의 노동수요 증가를 들 수 있다. 초창기 공장의 노동은 때때로 육체적인 힘을 덜 필요로 하였다. 동시에 여성이나 아동의 작은 체구, 유연한 몸, 섬세한 손 등은 복잡한 기계를 다루는 공장 노동에 매우 유용했다. 따라서 산업혁명 초기에는 많은 여성과 아동이 공장에 취업하여 일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기술진보가 노동수요에 미치는 효과가 한 방향으로 늘 지속되었던 것은 아니다. 다수의 공장에서 이후 기계가 보다 대형화되고, 품질이 개선되어 잔고장이 줄어들고 섬세한 유지관리 업무가 불필요해지면서 나중에는 여성과 아동노동이 다시 성인 남성노동으로 대체되었다.
또한 수많은 새로운 직종이 기술진보와 혁신의 결과로 탄생하였다. 공장관리자, 엔지니어, 기술자, 전문경영인 등은 모두 기술진보에 따라 생산과정이 변화하고 기업조직이 새롭게 형성되며 탄생한 일자리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일자리들의 다수는 주로 고(高)숙련 전문직에 해당한다. 기술진보의 결과로 고숙련 전문직에 대한 수요가 늘며, 이들을 양성하기 위한 교육에 대한 수요도 함께 증가하게 되었다. 교육에 대한 투자수익률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기술진보의 여파로 19세기부터 20세기 초까지 미국과 영국에서는 각종 고등학교가 설립되며 중등교육이 확산되었고, 20세기 중반 이후에는 대학교육의 팽창으로 연결되기도 하였다.
이처럼 기술의 진보는 저(低)숙련과 고숙련 노동에 대한 수요를 늘리는 동시에 전통 사회의 숙련공이었던 계층의 일자리는 줄이는 경향이 있었다. 산업혁명기 이후에도 이러한 경향은 꾸준히 관찰되었다. 예를 들면 20세기 초반에 미국에서는 공장의 동력을 수력이나 화력에서 전력으로 전환하기 시작했는데, 이러한 산업의 전력화는 고숙련직에 대한 노동수요를 크게 늘렸다. 한편 기존의 숙련공이었던 중(中)숙련 직무에 대한 수요는 상대적으로 크게 감소한 데 반해, 저숙련 단순 노무직의 노동수요에는 별다른 피해를 입히지 않았다. 유사한 효과는 최근 기술진보가 노동시장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에서도 관찰되고 있다.
| 기술진보는 농업분야 일자리에도 영향 끼쳐
공업뿐만 아니라 농업에서도 기술진보가 사람들의 일자리에 영향을 미쳐 왔다. 인클로저라든지 녹비작물의 도입 등 노동생산성을 높였던 혁신활동은 전통사회의 가난한 농민들의 땅을 빼앗고 도시로 축출하기보다는 농업의 규모를 키우고 상품작물의 경작을 가져오며 오히려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어 제공한 경우도 있었다. 한편 낙농가에서 전통적으로 우유를 손으로 휘저어 버터를 만드는 일은 여성들이 담당해왔다. 하지만 19세기에 버터를 만드는 교유기(攪乳器)가 개량되기 시작했고, 사람의 손 대신 말 등 외부 동력을 이용할 수 있게 되었다. 따라서 교유기는 점점 대형화되었고, 육체노동의 강도가 강해지며 버터를 만드는 일은 성인 남성의 직무로 바뀌게 되었다. 이후 지속적인 기술진보는 결국 버터 생산을 농가가 아닌 공장에서 이루어지도록 바꾸고, 공장근로자들의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해내기에 이른다.
이처럼 기술진보가 역사 속에서 노동시장에 미친 영향은 복합적이었다. 새로운 기술의 도입은 전통적인 숙련직에 대한 수요를 줄이기도 했지만, 고숙련직이나 저숙련직 노동에 대한 수요는 오히려 증가시키는 효과를 가져오기도 했다. 오늘날 정부는 기술진보가 노동시장에 미치는 다면적인 효과에 주목하고, 상대적으로 불이익을 보고 피해를 입을 수 있는 사람들에게 대책을 제공하고 있다. 다양한 사회보장 제도로 기초적인 삶의 질을 보장하고, 직업교육 프로그램 등 새로운 일자리로 이직을 도우려는 활동들이 이에 해당한다.
고 선 중앙대학교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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