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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릭경제교육(종간)
스웨덴 교육에서 배운다: 독립적 · 비판적 · 창의적 인간을 위한 교육
황선준 경기도교육연구원 초빙연구위원 2014.12.01

교육의 궁극적 목표는 독립적이고 비판적 시각을 가진, 그리고 이것을 토대로 한 창의적 인간을 길러내는 일일 것이다. 그러나 한국 교육은 이 부분에서 아직 부족한 점이 많다. 초등학교를 넘어서면 정답이 있는 사실 위주의 지식교육이 주를 이루고 있다. 교수 · 학습 방법 또한 학생을 교육의 객체로 삼아 지식을 전달하는 전근대적 교수방법에서 탈피하지 못하고 있다. 학생들의 학력평가 방식도 마찬가지다. 공정성과 변별력에 초점을 둔 표준화된 선택형 시험이 주요한 시험의 주를 이루고 있으며 이러한 시험 방식은 아이들의 사고력보다는 암기력을 훨씬 중요시한다.

한국 교육은 시장경제 논리에 의한 경쟁을 통한 걸러내기식 교육이며 주입식 · 암기식 교육의 전형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교육방식은 빨리 극복해야 되고 학생들의 사고력 신장과 창의력에 초점을 두는 교육이 되어야 한다. 교육 혁신의 관점에서, 특히 교수 · 학습방법과 평가 방식에서 스웨덴 교육은 한국교육에 주는 시사점이 크다. 스웨덴 고등학교의 수업과 시험을 예로 들며 논하겠다.


| 주제 중심의 국어 · 사회 · 역사 공통 수업

2010년 10월 말 고등학교 2학년인 딸이 받아온 논문 숙제는 상당히 충격적이었다. ‘역사적 사실을 들어서 내셔널리즘이 어떻게 표출되는가를 연구하라’라는 주제에 대해 A4용지로 10∼15페이지를 작성하라는 것이었다. 주제도 쉽지 않았거니와 양도 결코 작지 않았다. 또 국어 · 사회 · 역사 교사가 공통으로 숙제를 낸 것도 흥미로웠다. 무엇보다도 고등학교 2학년 학생이 이렇게 어려운 주제를 소화하는지가 가장 궁금했다.

딸을 통해 그 학기에 역사와 사회 시간에 공통 수업도 하고 프로젝트 형태로 분야별로 연구해 발표도 했다는 걸 알아냈다. 두 과목이 다룬 주제는 주로 1 · 2차 세계대전을 위시한 전쟁이었다. ‘내셔널리즘(nationalism, 민족주의)’이 이러한 전쟁의 가장 큰 원인 중의 하나로 간주된 것을 짐작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주제 중심의 수업형태였고 수업 마지막에는 학생들이 제출한 논문 발표가 3과목의 성적을 좌우하는 평가방식이었다.

사회와 역사 교사가 공통수업도 하고 논문 숙제를 낸 것은 이해가 가지만 국어 교사가 포함된 것은 쉽사리 이해가 되지 않아 국어 교사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물어봤다. 국어 교사는 A4용지 10∼15페이지의 논문을 보면 학생들의 어휘력, 문장 구사력, 문장 완성도, 문체 그리고 문법 실력까지 볼 수 있고 특히 간결체와 만연체, 과학적 표현과 시적 표현을 섞어 멋진 스웨덴어를 구사하는 능력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일리가 있다 싶었다.

학기가 끝날 무렵 읽어본 학생 논문 중 기억나는 두 개 편을 언급하겠다. ‘미국의 9 · 11 테러 사건이 어떻게 미국의 내셔널리즘을 증폭시켰는가’라는 주제의 논문은 미국의 주요 공항에서의 검문검색 형태와 양의 변화를 미국의 내셔널리즘과 연계시켰다. 이 논문을 작성한 학생은 주요 공항의 검문검색의 형태와 양의 변화를 알아내기 위해서 주요 공항이 있는 주(州)의 신문을 인터넷을 통해 검색해서 논문을 썼다.

또 다른 하나는 일본말로 센카쿠, 중국말로 댜오위다오라는 군도에서 중국 어선과 일본 순찰함이 충돌한 사건을 소재로 한 논문이다. 일본은 자기 영해라며 중국 어선을 나포하고 선원들을 억류했다. 그러자 북경대에서부터 반(反)일본 시위가 일어났고 세계 여론도 좋지 않았다. 일본은 배를 중국으로 돌려주고 선원들을 풀어주었으나 선장만 계속 억류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일본 우파가 자기 영해를 침범한 배를 왜 그렇게 쉽게 돌려주느냐며 동경 거리에서 시위를 했다.

그 와중에 아세안(ASEAN, 동남아시아국가연합) 회의가 열렸고 두 나라 외교부 장관은 회의에서 조우했지만 악수도 하지 않고 지나치는 것을 외신기자들이 놓치지 않고 사진으로 기사화했다. 스웨덴 신문에도 이 사건이 몇 차례 실렸다. 한 학생이 이 사건을 놓치지 않고 ‘중국 어선과 일본 순찰함이 충돌하는 작은 사건이 왜 두 나라 사이에는 외교적으로 크게 비화되는가?’라고 논문 주제를 정했다. 학생은 두 나라 사이에서 내셔널리즘이 작용했다고 짐작한 것이다. 논문은 1937년 일본이 30만 명 이상의 중국 포로와 양민을 학살한 난징대학살부터 그 원인을 찾았다. 이것이 바로 세계의 중심이라고 생각한 중국이 일본에게 패한 제2차 세계대전의 아시아 전쟁이었고, 일본은 그렇게도 잔인한 전쟁을 치르고도 전후 한 번도 진솔하게 사과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으로 두 나라 사이에는 배가 충돌하는 작은 사건도 외교적으로 크게 비화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나아가 내셔널리즘을 공격적 및 방어적 내셔널리즘으로 분류하고 공격적 내셔널리즘이 위험하고 전쟁의 원인이 되며, 독일 나치와 일본 군국주의가 그 전형적인 예라고 했다. 그리고 중국과 일본에서 나온 자료는 객관성을 잃었다며 논문에서 제외하고 미국 · 러시아 · 스웨덴에서 나온 자료를 사용한다고 했다.


| 주입식 · 암기식 교육이 창의력을 키울 수는 없어

이 세 과목의 수업은 논문을 쓰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모든 학생은 자신의 논문을 발표하고 다른 학생의 논문을 비판하도록 했다. 이 모든 과정을 종합하여 그 학기의 사회 · 역사 · 국어 과목의 성적이 결정됐다.

위의 예는 교육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두 가지 사실을 보여준다. 첫째, 문제 설정 능력, 즉 ‘창의력이 무엇인가?’라는 문제에 강한 시사점을 준다. 내셔널리즘에 대해 한 학생은 미국에서의 테러사건을, 다른 학생은 중국과 일본 사이의 사건을 연결시켰다. 이것이 바로 문제 설정 능력이고 창의력이다.

한국에서는 이러한 능력을 창체활동이나 텃밭 가꾸기를 통해 키울 수 있다고 믿는 모양인데 절대 그렇지 않다. 창의력은 국어 · 영어 · 수학 · 사회 · 과학 · 예체능 등 모든 과목 수업에서 학생들이 비판적으로 책을 읽고, 비판적으로 사물과 현상을 대하며, 자신의 생각을 다른 학생들과 토론하고 그리고 끊임없이 사고함으로써 키울 수 있는 것이다. 정답이 있는 사실 위주의 주입식 · 암기식 교육으로는 창의력을 키우는 데 문제가 많다.

둘째, 우리가 사는 사회와 유리되어 이루어지는 교육은 살아있는, 깊이 있는 교육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스웨덴 학생들은 내셔널리즘이라는 어려운 개념을 자신이 살고 있는 주위나 다른 나라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례에서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이것이 살아있는 교육이고 그런 연결 없이 습득하는 지식은 형이상학적이고, 우리의 삶과 동떨어진 지식일 가능성이 매우 크다.

OECD가 3년마다 행하는 국제 민주주의 소양 테스트(ICCS)에서 한국 학생들이 지식적 측면에서는 좋은 성적을 얻지만, 민주주의 가치나 행태 또는 민주주의적 참여에서는 OECD 국가 중 꼴찌를 면치 못하고 있다.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이론적으로는 알고 있지만 그렇게 행동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우리나라의 지식 위주의 교육이 갖는 큰 문제다.

교육의 궁극적 목표인 독립적이고 비판적 시각을 가진, 그리고 이것을 토대로 창의적 인간을 길러내기 위해서는 한국 교육이 교수 · 학습과 평가 방법에서 근본적 혁신이 일어나야 하고 스웨덴 교육은 이런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할 것이다.


황선준 경기도교육연구원 초빙연구위원
sunjoon.hwang@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