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워드 슐츠(Howard Schultz) 스타벅스 회장은 그들의 성공 요인이 “커피를 파는 게 아니라 문화를 팔기 때문”이라는 다소 엉뚱한 주장을 한 적이 있다. 스타벅스는 맛과 향이 좋은 커피만을 파는 것이 아니라 편안하고 안정적인 공간, 열정과 낭만, 편안한 음악, 진심이 담긴 친절한 바리스타의 응대까지 ‘스타벅스 경험(Starbucks Experience)’이라는 하나의 문화를 제공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진짜 스타벅스의 성공요인이었을까? 그렇다면 다른 경쟁업체도 자신만의 문화를 만들어서 스타벅스와 경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문화라는 것이 누군가 만들어서 팔 수 있는 경제적인 재화나 서비스였던가?”라는 더 본질적인 질문을 먼저 고민해 보자.
문화의 어원은 ‘토지의 경작’
문화의 어원은 ‘토지의 경작’이다. 출발점에서 본다면 우리가 먹고 사는 문제를 직접적으로 다루고 있는 경제학과 문화는 그리 멀지 않다. 16세기에 들어서면서 문화는 정신과 지성에 관한 세련됨(cultivation of soul)으로 진화했으며, 최근에는 문화를 두 가지 관점에서 정의한다. 넓은 의미에서 문화란 특정 집단이 공통적 또는 부분적으로 공유하고 있는 태도·신앙·도덕·관습·가치관 등을 묘사하는 ‘체제’를 의미한다. 한편, 문화를 ‘기능적인 측면’에서 바라본다면 인간생활의 지적·도덕적·예술적 측면과 관련되어 행해지고 있는 사람들의 활동과 그 활동에 의해 생산되는 ‘산출물’로 정의한다. 문화자본, 문화산업, 문화상품과 같이 문화가 형용사로 사용되는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두 가지 정의에서 보듯이 문화적 행동은 ‘집단주의적’ 특성을 가지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렇다면 개인주의적인 경제학이 문화와 어떻게 관련되어 있다는 말인가?
문화와 달리 경제학은 한 개인의 합리적 선택에서 출발하고, 합리적 선택이 모여서 가격과 시장을 형성한다. 한 국가가 생각할 수 있는 모든 시장을 다 모아서 국가적 차원의 경제적 선택과 의사결정을 다루면 거시경제학이 된다. 더 나아가 다른 나라와 우리나라의 의사결정을 다루면 국제경제학이 된다. 따라서 미시경제학은 한 개인을 독립된 존재로 인식하고 있으며, 거시경제학과 국제경제학은 개별 개인이 모인 한 국가를 다시 하나의 독립된 존재로 인식하고 있다. 국가적 선택의 기초가 한 개인의 선택인 미시경제학에 바탕을 두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현재 주류경제학이라고 하는 신고전파 경제학의 분석 근간에는 개인주의와 효용에 기초한 합리적 의사선택이 자리 잡고 있다. 개인주의적 선택은 신고전파 경제학이 세상을 바라보는 패러다임이며 선입관이다. 합리적 선택은 주어진 환경에서 자신의 효용을 가장 크게 만들도록 선택하는 것이다. 이때 주어진 환경이란시간·소득·생산능력·자연환경·자본 등 현재 선택 대상이 되지 않는 분석 가능한 모든 것이다.
제품은 모방해도 기업문화는 모방할 수 없는 가치
문화를 관습·신앙·태도와 같은 주어진 ‘체제’로 간주 할 경우 개별적 경제주체는 자신이 살고 있는 주어진 문화 속에서 합리적 선택을 하게 된다. 이때 문화는 개인들의 선호(기호) 형성에 영향을 미친다. 경제성장을 예로 들어 보자.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아시아의 급속한 경제성장은 세계 경제에 유래가 없던 대사건이었다. 이를 동아시아의 기적이라고 보는 경제학자가 있을 정도다. 영국보다 100년이 더 늦은 19세기 중반에 산업혁명의 불씨를 지피기 시작했는데도 불구하고, 현재 세계 10위권의 경제력을 자랑하고 있는 나라가 바로 대한민국이며 그 국민이 바로 우리들이다. 우리나라 성장의 원인으로 많은 물적자본과 노동의 투입, 그리고 교육열에 기인한 높은 인적자본을 꼽는다. 그러나 이러한 경제학적 변수만으로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아니며, 높은 교육열의 원인이 무엇인지에 관해서도 경제학이 설명해주지 못하고 있다. 일부 경제학자들은 나머지 요인을 문화에서 찾기도 한다. 유교에서 계승된 문화적 신조가 성공적인 경제를 만드는 기초가 되었다는 것이다. 복지에 대한 관심, 집단 내의 상호존중, 목표 달성을 추구하는 노동윤리, 가족을 중시하는 사고방식, 교육의 필요성에 대한 신념, 계층구조 및 권위에 대한 존중 등이 성장에서 문화가 기여한 점이라고 한다.
문화는 사용하면 그 가치가 줄어들거나 소멸하지 않고 오히려 증대되는 경향이 있다는 점에서 다른 경제재와 차이가 있다. 우리가 문화를 계속 공유하고 보존(활용)해야 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만약 건전한 직업윤리, 준법정신, 사회의 신뢰,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 상호 존중과 배려와 같은 문화가 건전하고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견인하는 중요한 문화적 요인이라면 이를 보존하고 계승해야 할 이유가 충분한 것이다.
우리가 기업가라고 생각해 보자. 소비자가 우리 제품을 더 좋아하게 만들어야 시장에서 성공하고 기업은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다. 어떻게 해야 할까? 품질이 좋은 제품을 생산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최근의 기술발전 속도를 보면 우리 제품의 품질을 다른 기업이 모방하는 것은 매우 쉬운 일처럼 보인다. 그런데 만약 우리 회사 제품만의 고유한 문화가 있다면 어떨까? 다른 기업이 모방하려고 해도 단시간에 문화가 형성될 수 있을까? 대형 할인마트 코스트코는 2009년 금융위기에 근로자를 해고하는 대신 어려운 경제 여건을 고려해 오히려 임금을 올리고 복지를 확충하여 근로자의 애사심을 고취하는 기업문화를 만들었다. 다른 기업이 감히 따라하기 쉽지 않은 문화적 환경의 조성이다. 스타벅스는 머그컵을 사용하는 고객에게 할인을 제공하는 등 환경캠페인을 벌이며 자신만의 기업문화를 만들고 있다. 성장이나 이익을 뛰어넘는 위대한 회사(great company)를 만들고자 하는 하워드 슐츠 스타벅스 회장의 “문화를 판다.”는 전략이 지금까지는 성공한 것처럼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