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내용으로 건더뛰기

KDI 경제교육·정보센터

ENG
  • 경제배움
  • Economic

    Information

    and Education

    Center

클릭경제교육(종간)
국가자산과 경제: 의궤(儀軌), 화려한 그림으로 국정을 기록하다
강문식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학예연구사 2015.04.06

국립고궁박물관 관계자들이 1897년 고종이 대한제국 황제로 즉위할 당시를 그린 대례의례를 점검하고 있다.

 

19939, 한국을 방문한 프랑수아 미테랑 프랑스 대통령은 파리 국립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던 조선의 고서(古書) 한 권을 가져와 우리나라에 전달했다. 수빈휘경원원소도감의궤(綏嬪徽慶園園所都監儀軌)라는 제목의 이 책은 1868(고종 3) 병인양요(丙寅洋擾) 당시 프랑스 군이 약탈해 갔던 것으로, 조선의 23대 국왕 순조(純祖)의 생모인 수빈(綏嬪) 박씨의 묘소를 옮긴 과정이 수록되어 있다.

 

비단으로 만든 화려한 표지, 정성들여 쓴 해정(楷正)한 글씨, 수백 년이 지났어도 선명하고 아름다운 채색 그림 등 의궤가 보여준 모습은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이를 계기로 의궤는 해외로 불법 반출된 우리의 문화재를 대표하는 기록물의 하나로 전국 민적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국정운영시스템 파악에 유용

 

의궤는 조선시대에 국가·왕실의 중요 의식이나 행사를 시행할 때 준비 과정과 진행 과정, 의식의 절차, 소요 경비, 참가 인원, 종료 후의 논상(論賞) 및 사후 처리 내용 등을 빠짐없이 정리한 보고서 형식의 책을 말한다. 왕실의 혼례식과 장례식, 왕세자의 책봉, 궁중 연회, 국가 제사, 실록(實錄) 편찬, 궁궐·성곽의 건축 등 국가·왕실에서 추진하는 모든 의식과 사업에는 반드시 의궤가 만들어졌다.

 

의궤를 제작한 가장 중요한 목적은 과거의 선례(先例)를 빠짐없이 기록하여 하나의 전범(典範)을 만들어 놓음으로써 후대에 동일한 의식·행사를 시행할 때 발생할 수 있는 시행착오를 미연에 방지하는 것이었다. 책의 이름을 의식의 궤범이라는 뜻의 의궤라고 한 것은 이러한 편찬 목적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 전근대 시대에 제작된 대부분의 문헌들이 글로만 기록된 것과는 달리 의궤에는 행사·의식에서 사용된 기물(器物)들을 그린 도설(圖說)과 행사 과정을 그린 반차도(班次圖) 등의 기록화가 수록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기록화는 지금의 사진이나 동영상에 해당하는 시각 자료로서, 이를 통해 당시 행사의 실상을 더욱 생생하고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다.

 

의궤는 일반적으로 5~9부 정도를 제작했는데, 이 중 1부는 국왕이 보는 어람용(御覽用)’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나머지 의궤들 중 일부는 예조·의정부 등의 관청에서 참고용으로 사용하였고, 일부는 춘추관 및 지방 사고(史庫)에서 보관하였다. 의궤는 제작 건수가 적었기 때문에 대부분 필사본으로 만들었지만, 대량으로 제작하여 배포할 필요가 있는 경우에는 활자로 간행하기도 하였다.

 

의궤는 근대 이후 해외로 불법 반출되는 수난을 겪기도 하였다. 먼저 1868년 병인양요 당시 강화도를 함락한 프랑스 군에 의해 외규장각에 소장되어 있던 의궤 297책이 프랑스로 약탈·반출되었다. 파리국립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던 이 의궤들은 1975년에 고() 박병선 박사에 의해 그 존재가 처음 확인되었다. 이후 1990년대부터 한국과 프랑스 간의 본격적인 반환 협상이 추진되었고, 그 결과 약탈된 지 145년만인 2011년에 국내로 다시 돌아와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한편, 일제 강점기인 1922년에는 조선총독부에서 규장각 도서 중 의궤류 자료 166책을 일본 궁내성(宮內省)으로 불법 반출하였다. 이 의궤들 역시 학계와 민간 단체의 꾸준한 노력이 결실을 맺어 2011년에 국내로 환수되었으며, 현재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소장·관리하고 있다.

 

사업에 소요된 재정 내역도 꼼꼼히 기록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의궤에는 조선시대 주요 의식과 행사의 모든 내용들, 즉 의식·행사와 관련된 국왕의 명령, 행사를 총괄·주관하는 도감(都監)에서 국왕에게 올린 보고서, 도감과 여러 행정 관서들이 주고받은 공문서, 인력과 각종 물품, 경비의 조달 과정, 행사를 주관한 관원과 행사에 참여한 여러 관련자들의 명단 등이 빠짐없이 정리되어 있다. 특히, 도감과 행정 관서들이 주고받은 공문서에는 특정 행사를 추진할 때 정부 각 기관들의 업무 추진체계와 역할분담 및 협조관계 등이 구체적으로 나타나 있어서, 당시의 국정 운영 시스템을 파악하는 데 매우 유용한 자료가 된다.

 

의궤에는 행사 및 사업 진행에 소요된 재정(財政)에 관한 내용도 매우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1794~1796년에 추진된 수원 화성(華城) 건설의 전과정을 기록한 화성성역의궤(華城城役儀軌)의 예를 살펴보자.

 

장안문(長安門)

대선단석(大扇單石) 8덩이, 중선단석 4덩이, 대홍예석(大虹?石) 26덩이, 은주석(隱柱石) 271덩이, 대전석(大?

) 603덩이 …… 이상 석재 비용 6,5813

21,20112, 비용 2,96825

1,06015, 비용 67315(중략)

석수(石手) 공임 6,39976, 대장장이 공임 90513, 목수(木手) 공임 3,34328, 미장이 공임

40698(이하 생략)

 

위 글은 화성성역의궤재용편(財用篇)실입(實入)항목에 수록된 내용으로, 실입은 공역에 실제로 투입된 물자와 비용의 내역을 기록한 것이다. 위 글에는 화성의 북문인 장안문을 건설하는 데 소요된 석재··숯 등 각종 물자의 수효와 비용, 그리고 장안문 건설에 동원된 기술자들에게 지급된 임금의 총액이 상세히 정리되어 있다. 화성성역의궤에는 장안문만이 아니라 화성의 모든 시설마다 각각을 축조하는 데 투입된 물자와 비용, 임금의 내역이 위와 같은 방식으로 정리되어 있다. 이와 같은 내용들을 통해 우리는 정조대 당시 화성 건설에 투입된 재정의 규모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다. 또 각종 물자의 가격, 기술자들에게 지급된 임금 내역 등이 구체적으로 제시되어 있어서 당시 국가경제의 실상을 파악하는 데에도 큰 도움을 주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소요 재정의 내역을 꼼꼼하게 정리하고 공식적인 보고서로 공개한 것을 통해서 국가 행정을 투명하고 공정하게 운영하겠다는 우리 선조들의 정신을 확인할 수 있다.

 

이상과 같이 의궤는 조선시대 국가 의식·행사의 구체적인 내용을 상세히 정리함으로써 당시의 행정 및 재정 운영의 실상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조선의 국가 기록물의 대표하는 자료의 하나이다. 이와 같은 자료적 가치를 인정받아 의궤는 2007년 유네스코에서 지정하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