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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릭경제교육(종간)
中 소비시장 ‘조용한 혁명’
박만원 매일경제신문 베이징 특파원 2015.04.06

수입상품 직매장이 가진 가격 경쟁력은 중국 소비자들을 유인하는 원동력이다. 사진 왼쪽은 중국 선양의 한 수입상품 직매장, 오른쪽은 상하이 매장 내부

 

지난 설 연휴 동안 중국인 관광객들이 한국과 일본을 먹여 살리다시피 했다. 명품 핸드백과 전기밥솥, 화장품 등을 싹쓸이 쇼핑해 준 것. 특히 일본에서는 설 연휴 중국인 관광객 소비규모가 무려 1조 원에 달했다. 중국 정부로선 알큰할 노릇이다. 어렵사리 수출해 번 외화로 남의 나라 백화점들만 배불리고 있으니 말이다. 이런 일이반복되자 중국 정부가 결단을 내렸다. “나가서 쓰느니 똑같은 수입품이라도 안에서 사라는 것이다.

 

변화의 물결은 상하이에서 시작됐다. 수입상품 직매장이 1년 반 만에 무려 열두 군데나 생겼다. 매장규모는 우리나라의 웬만한 대형마트보다 더 넓다. 주로 한국, 일본, 미국, 유럽 등지에서 온 식품, 화장품, 일상용품을 판매한다. 매장 운영사 와이가오차오(外高?)’는 올 들어서만 매장을 8곳에 추가로 열었다. 푸동 자유무역구에 있는 1호점은 기존 3,000에서 12,000로 확장하는 공사를 곧 시작할 계획이다. 하루 방문고객이 1만 명에 달해 오는 손님들을 전부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은 상하이에만 국한된 게 아니다. 광저우, 선양, 샤먼 등 중국 대도시에서 1~2월 개장한 수입상품 직매장은 20여 곳에 달한다.

 

유통단계 확 줄여 수입상품 가격 10~20% 낮춰

 

수입상품 직매장이 최근 급증한 것은 상하이 자유무역구에서 촉발된 유통혁명의 결과다. 통관과 검역 절차가 간소화돼 상하이 직매장에 손님이 몰리자 자유무역구뿐만 아니라 종합보세구를 기반으로 한 직매장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것이다. 자유무역구처럼 통관과 세제 등에서 혜택이 주어지는 종합보세구는 지난 1년간 두 배 가까이 늘어 중국 전역에 30여 곳에 달한다.

 

직매장이 중국 소비자들을 유인하는 원동력은 가격경쟁력이다. 중국내 다른 대형마트와 비교하면 수입품 가격이 10~20% 저렴하다. 제품이 싼 이유는 유통단계를 확 줄였기 때문이다. 자유무역구 또는 종합보세구에 등록된 수입업체가 직접 수입·판매하거나 1차 대리상 한 단계만 거치기 때문에 유통마진을 줄일 수 있다.

 

제도적 지원도 시간과 비용을 줄여준다. 보세구에 등록된 수입업체가 직매장을 열면 최종 판매 전까지 약30%에 달하는 관세가 유예된다. 자유무역구에서는 온라인거래를 통한 수입에 대해 관세와 증치세를 면제하고 행우세(일종의 우편세)만 부과한다. 이렇게 하면 수입가격 기준으로 20% 정도의 세금을 덜 내기 때문에 그만큼 값을 낮출 수 있다. 자유무역구와 종합보세구는 대부분 전자통관시스템을 도입해 통관 검역에 드는 시간이 확 줄었다.

 

중국 유통업계는 수입상품 직매장 붐이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고 입을 모은다. 유통업 속성상 최대한 많은 매장을 확보해야 경쟁력을 갖출 수 있기 때문이다. 올해 대형마트급 직매장이 전국적으로 50여개 개장할 전망이다. 지금까지 자유무역구와 보세구에서 매장을 연 업체들이 인근 도시와 성()으로 사업을 넓히는 것이다.

 

중국 정부, 내수 진작 위해 수입규제 완화

 

중국은 시진핑 정부 들어 수입품에 대한 정책이 근본적으로 바뀌고 있다. 예전에는 자국산 보호를 위해 인허가와 통관 검역을 까다롭게 했다면 요즘에는 규제를 완화해 수입을 장려하고 있다. 가장 큰 목적은 내수 진작이다. 국민들의 지갑을 열게 하려면 외국산을 싸게 들여와 국산과 경쟁시키는 게 효과적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그동안 수입장벽에 의존해온 중국산 품질도 한 단계 끌어올릴 수 있다.

 

정치적 차원에서도 해석할 수 있다. 성장력 둔화 이후 중국경제에 대한 부정적 시각을 바로잡는 방법 중 하나는 외국산을 더 많이 수입하는 방법이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는 최근 서방에서 중국 쇠퇴에 관한 주장이 제기되고 편협한 사고를 조장하고 있다향후 5년간 중국은 10조 달러의 상품을 수입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중국의 위상을 확립하기 위해서 무역 흑자 규모도 줄여야 한다. 천문학적 무역흑자가 계속돼 다른 나라들에게 비난의 빌미를 제공하고, 위안화 환율에도 악영향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럴 바에는 수입을 늘려 무역수지 균형을 추구하자는 게 중국의 심산이다.

 

중국 정부의 정책의지가 확고해 수입확대 경향은 계속될 전망이다. 3월에는 상하이 외에 톈진, 푸젠성, 광둥성 등에서도 자유무역구가 출범한다. 자유무역구 주변에 있는 대도시 인구를 계산하면 약 2억 명에 달하는 거대시장이 한국에 한발 더 가까워지는 셈이다. 한국 기업들도 그동안 중간재 일변도의 중국 수출에서 벗어나 식품, 일상용품과 같은 소비재 수출을 늘려야 한다. 중국이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하는 나라가 많아지고 소득수준이 오르면서 외국산 수요가 계속 증가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시진핑 정부가 들어선 뒤 중국은 수출 주도형 고성장 정책을 폐기했다. 지금까지 중국의 고성장정책에 편승해 온 한국기업들로선 중국 수출 전략을 다시 짜야 할 처지다. 13억 소비시장을 곁에 두고 있지만 소비재 수출은 미약하기 때문이다. 중국 수출에서 소비재가 차지하는 비중은 4%, 미국(23.9%), 영국(41.4%) 등 선진국과 큰 차이를 보인다. 중국은 수출주도 경제에서 소비 주도 경제로의 전환, 이른바 뉴노멀(New Normal)’을 추구하는데 우리 기업들은 여전히 올드 노멀(Old Normal)’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