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은 정치·경제·사회·문화의 여러 분야에서 이전의 고려와는 다른 모습을 보였다. 그중에서도 특히 주목되는 변화는 관습법(慣習法)이 중시되었던 고려와 달리 조선은 성문법(成文法)을 제정하고 이를 기준으로 국정을 운영했다는 점이다. 조선에서는 건국 초부터 여러 종류의 법전이 편찬됐는데, 조선 전 시기를 통해 국정 운영의 기본 원칙이 되었던 법전이 바로 『경국대전(經國大典)』이다.
30년 만에 완성된 ‘만세성법(萬世成法)’
조선시대의 법령은 기본적으로 국왕의 명령인 수교(受敎)·수판(受判) 등의 형식으로 반포되었다. 특정한 현안에 대해 국왕과 신하들이 충분히 협의하여 최종적으로 결정한 내용을 ‘왕명’의 형식으로 반포한 것이다. 따라서 당시의 법전 편찬은 새로운 법을 창제하기보다는 기왕에 내려진 국왕의 명령들을 다시 정리하여 법조문으로 만드는 작업이었다.
1397년(태조 6) 조준(趙浚)의 주관으로 1388년(고려 우왕 14) 위화도회군(威化島回軍) 이후부터 당시까지 시행된 수교와 조례(條例) 중에서 앞으로 계속 실시할 만한 것들을 선별하여 이(吏)·호(戶)·예(禮)·병(兵)·형(刑)·공(工)의 육전(六典) 체제에 따라 정리하였다. 이것이 조선 최초의 법전인 『경제육전(經濟六典)』이다. 그리고 조선정부는 『경제육전』 편찬 이후에 내려진 수교와 조례들을 정리한 『속육전(續六典)』, 즉 『경제육전』의 속편(續編) 제작을 지속하여 태종~세종대에 모두 세 종류의 『속육전』을 만들었다.
조선 초기 법전 편찬 방식은 『속육전』의 편찬이 무한 반복되어야 하는 문제점을 갖고 있었다. 이에 세조대에 들어 법전 편찬 방식을 바꾸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었고, 그 결과 기존 법전들의 내용을 종합한 조직적이고 통일된 ‘만세성법(萬世成法)’, 즉 영원토록 준행할 만한 기본 법전의 편찬이 추진되었다. 이를 위해 세조는 1455년(세조 1) 육전상정소(六典詳定所)를 설치하고 기존 법조문들을 정리·검토하도록 했다. 이어 1459년에 최항(崔恒) 등에게 명하여 육전상정소의 검토 결과를 토대로 본격적인 법전 편찬에 착수하도록 했다. 이 때 세조는 사람들의 실생활에 직접 관계되는 부문을 먼저 편찬하도록 지시했다. 그 결과 1460년에 경제에 관한 법률인 『호전(戶典)』, 1461년에 형법·소송에 관한 법률인 『형전(刑典)』이 차례로 완성되었다. 그리고 『호전』이 완성되었을 때 새 법전의 이름을 『경국대전』으로 확정하였다.
『경국대전』의 나머지 부분들도 1467년 12월까지 모두 편찬됐지만, 1468년 9월 세조가 서거하면서 공식적인 반포·시행은 뒤로 미뤄졌다. 이후 예종~성종 초에 『경국대전』 법조문에 대한 개정·보완 작업이 추진된 결과 1470년(성종 1) 11월에 『경국대전』이 1차로 완성되었다. 그러나 누락된 법조문들이 많다는 지적에 따라 1471~1473년에 한 차례 증보·개정하여 1474년 1월 두 번째 『경국대전』을 반포했고, 다시 이에 대한 수정·보완 작업을 시행하여 1485년(성종 16)에 최종 확정된 『경국대전』을 반포했다. 1455년 편찬을 시작한 지 30년 만에 최종 완성된 것으로, 당시 사람들이 완전한 법전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고심하고 노력했는지를 엿볼 수 있다.
1485년 『경국대전』이 반포된 후에도 조선에서는 왕명을 통해 수많은 법령들이 공포·시행되었다. 이에 조선 정부는 일정 기간마다 이를 정리해서 ‘속록(續錄)’이라는 이름의 법령집을 편찬했다. 또, 『경국대전』이 편찬 된 지 300여 년이 지나면서 법조문이 현실에 맞지 않는 현상이 나타남에 따라 영조대 『속대전(續大典)』, 정조대『대전통편(大典通編)』, 고종대 『대전회통(大典會通)』 등과 같이 『경국대전』을 보완하는 법전들도 편찬되었다. 그런데 이상의 후속 법전들은 모두 『경국대전』의 법조문을 대전제로 하여 제정된 것들이며,『경국대전』의 기본 골격도 그대로 유지되었다. 즉, 보완 법전들의 편찬에도 불구하고『경국대전』이 갖는 ‘만세성법’으로서의 위상은 조선 전 시기를 통해 변함이 없었다.
조선의 제도와 규범 집약
조선의 행정관서는 이·호·예·병·형·공의 육조(六曹) 체제로 조직되었다. 따라서 『경국대전』 역시 이에 맞추어 6개의 전(典)으로 구성되었고, 각 전에는 해당 조(曹)의 담당 업무들이 항목별로 기술되었다.
『이전(吏典)』에는 내명부(內命婦)·외명부(外命婦)의 조직과 품계, 중앙과 지방의 관서(官署) 조직과 관직(官職) 체계, 문신(文臣) 관료의 임용과 인사(人事) 행정에 관한 규정 등이 수록되어 있다.
『호전(戶典)』은 국가의 재정 운영과 관련된 내용을 담고 있다. 전근대 국가 경제의 근간인 호적(戶籍)과 토지 제도, 조세 제도 등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며, 이와 관련된 창고·조운(漕運, 해운)·회계 등에 관한 내용도 실려 있다. 또, 관리의 녹봉, 권농(勸農, 농사를 장려함), 어염(魚鹽, 어업과 제염)·양잠(養蠶) 등의 기타 산업, 토지·가옥의 매매 등에 관한 조항들도 수록 되어 있다.
『예전(禮典)』은 학교 제도와 과거제(科擧制), 국가·왕실의 각종 의례(儀禮), 친족(親族) 제도, 중국·일본·여진(女眞) 등과의 외교 관련 내용 등이 중심을 이루고 있다. 또, 중앙과 지방 관서에서 사용하는 각종 공문서의 서식(書式)도 실려 있다.
『병전(兵典)』에는 무반(武班) 관서들의 조직과 직무, 지방 군사 조직, 무과(武科) 관련 규정, 무신(武臣) 관료의 인사 행정, 군역(軍役) 제도 등의 군사 관련 내용이 수록되어 있다.
『형전(刑典)』에는 각종 소송 및 재판의 절차, 범죄 행위에 대한 처벌 내용 등이 수록되어 있는데, 형률(刑律)은 중국의『대명률(大明律)』을 적용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였다. 또, 노비제(奴婢制)에 관한 각종 규정과 노비소송에 관한 내용도 실려 있다.
『공전(工典)』에는 도로와 교량, 궁궐·관청·도성(都城)·역참(驛站) 등의 관리와 보수, 수레와 선박, 각종 나무의 재배·관리, 도량형(度量衡), 서울과 지방의 각종 공장(工匠)들에 관한 내용 등이 수록되어 있다.
『경국대전』은 조선왕조 500여 년간 준수되어 온 기본 법전으로, 조선의 각종 제도와 규범이 집약·수록 되어 있다는 점에서 조선의 통치 체제 및 사회·문화의 전반을 이해하는 데 있어 필수적인 자료이다. 또한 권력자의 자의적(恣意的) 지배를 배격하고 법과 원칙에 따라 공정하게 국가를 운영하고자 했던 우리 선조들의 법의식이 담겨 있다는 점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