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4월, 국회에서 근로자의 정년을 60세로 의무화하는 「정년 60세 연장법」에 합의함에 따라 2016년부터는 ‘정년 60세’가 법적으로 의무화된다. 그러나 이전에도 의무사항은 아니었지만 근로자들에게 정년을 보장해주는 제도, ‘임금피크제’가 존재했다. 지난 2001년 금융기관을 중심으로 유사 제도를 도입해 운용하고 있고, 이후 정식으로 도입한 기업도 있다. 물론 의무사항은 아니고, 도입을 놓고 아직까지 찬반양론이 존재하지만 사회 속에서 영향력을 갖는 제도 중의 하나임은 분명하다.
정년 연장되거나 보장되지만 임금은 줄어
임금피크제는 무엇인가? 일정 연령(피크 연령)에 도달한 근로자의 임금을 줄이는 대신 정년까지 일자리를 보장 혹은 정년 후 다시 고용하는 제도로 임금을 적게 받기는 해도 일을 계속할 수 있는 여지가 생긴 것이다.
그렇다면 임금피크제가 등장하게 된 까닭은 무엇일까? 가장 일반적인 이유는 고령층의 실업 문제이다. 우리나라는 IMF 구제금융을 전후해 경제 위기를 겪었다. 이때 젊은 층과 고령층 모두 실업 문제에 직면했다. 이후 경제가 점차 회복되었지만, 고령층의 실업 문제는 우리 사회의 고령화와 맞물려 계속해서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었다.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임금피크제를 실시한 기관은 신용보증기금(2003년 7월 도입)이다. 이곳에서는 근로자가 55세가 되면 기존 임금보다 적게 받고 일하며, 해가 갈수록 그 이전 해보다 적게 받고 정년까지 일을 하게 되므로 피크 연령은 54세인 셈이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임금피크제에는 정년연장형, 재고용형, 근로시간 단축형이 있다. 임금피크제를 도입하기 위해서는 위 분류를 바탕으로 노사합의를 거쳐야 한다. 근로자 대표의 동의를 얻어야 하고 실시 여부는 단체협약·취업규칙 등을 통해 서면확인이 가능해야 한다.
이 분류에 따르면, 앞서 언급한 신용보증기금의 임금피크제는 정년연장형에 속한다. 좀 더 구체적으로 신용보증기금의 임금피크제는 보직전환제 및 임금커브제로 구성되는데, 먼저 보직전환제는 55세가 되는 해에 이전까지 했던 업무를 마무리하고, 업무를 지원하는 별정직으로 근무하게 된다. 임금커브제는 55세부터 급여가 정년(58세)까지 해마다 줄어드는 제도다. 55세에는 이전 급여의 75%, 56세에는 55%, 57세에는 35%를 받게 된다.
이것은 기획재정부의 유형 분류와 조금 다른데, 임금 조정에 대한 시점을 명시하고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차이점이다. 현재의 정년을 보장하되 정년 이전 일정시점부터 임금을 조정하는 정년보장형, 현재의 정년을 연장하는 조건으로 정년 이전부터 임금을 조정하는 정년연장형, 정년퇴직자를 계약직으로 재고용하되 정년 이전부터 임금을 조정하는 고용연장형으로 분류하고 있다.
한편 임금피크제는 미국이나 일본, 유럽 일부 국가에서 실시하는 워크 셰어링(work sharing)의 한 형태로 알려져 있으나, 본래 개념과는 차이가 있다. 워크 셰어링은 임금을 줄이지 않고 근로자의 노동시간을 줄여 일자리를 창출하는 제도이기 때문이다(그와 같이 하면 기업의 인건비는 줄어들지 않아 기업의 입장에서는 부담이 되레 늘어날 수도 있는 측면이 있다). 그렇지만 기획재정부가 설명하는 잡 셰어링과는 임금삭감·고용 창출 면에서 공통점이 있다.
생산성과 도덕적 해이 어떻게 풀지 관건
임금피크제를 실시하면 고령근로자는 계속 일할 수 있고, 청년의 일자리도 늘어난다. 점차 심화되는 고령화문제에 대처할 수 있고, 고령근로자들의 임금을 줄인 만큼 근로자를 새로 채용할 수 있는 여력이 생기는 것이다.
또한 정년을 맞아 퇴직하는 근로자를 신규 인력으로 대체하려면 교육을 시켜야 하고, 경험도 쌓게 해야 하는데 이때 임금피크제가 도입되면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시간과 비용을 절약하고 생산성도 높일 수 있다.
그러나 바로 이 생산성 측면에서, 계속 고용이 보장되면 해당 근로자는 열심히 일하지 않을 수도 있다(도덕적 해이가 발생할 여지가 있는 것이다). 또한 다수의 베이비부머 세대가 퇴직을 앞두고 있는 현재와 같은 상황에서는 임금피크제 대상자가 크게 늘어, 기업이 인력의 규모를 늘리지 않는 한 신규 인력이 고용의 기회를 빼앗기는 결과를 낳게 된다. 이로 인해 청·장년층 실업문제가 심화될 수 있다.
근로자들로부터 반발도 예상해볼 수 있다. 임금피크제는 유형을 막론하고 임금이 줄어드는 공통점이 있다. 물론 겉으로 보기에는 정년 이후 몇 년 더 일하면서 월급이 줄어드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것이 자신과 가족의 일이 된다면 생각이 달라질 수 있다. 50대 중·후반은 대체로 자녀의 대학 학자금이나 결혼 자금을 위해 지출이 발생하는 시기다. 당장 쓸 수 있는 돈이 없거나 대출을 해야 한다면 월급이 줄어드는 것은 곧 생존의 문제가 될 수도 있다.
일자리를 늘리는 것, 특히 고령층에 알맞은 일자리를 더 만드는 것은 어려운 문제다. 상대적으로 낮은 업무 강도, 높은 임금 수준을 모두 충족하는 일자리를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문제는 정책적이고 장기적인 문제로, 시장에서 자율적으로 해소하기에는 오랜 시간이 걸려 실현 가능성이 낮아지게 된다.
임금피크제와 관련해 정년 60세 시대를 맞아 임금피크제를 법제화해야 한다는 정부와 경영계 측 주장과, 법제화에 반대하는 노동계측 주장이 맞서 있다. 노동계측은 60세를 넘긴 근로자에 한하여 노사 자율로 결정하자고 하고 여기에 임금을 줄이는 대신 근로시간도 줄이자고 주장한다. 그러나 법제화 여부를 떠나, 사회 속 제도는 사회 구성원들의 합의가 이루어져야만 자리 잡고 원활하게 기능할 수 있다. 제도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사회 구성원의 합의를 도출하는 것이 중요하다.
● 임금피크제의 유형
· 정년연장형
기존의 정년을 56세 이상으로 연장하면서 55세 이후 일정 연령부터 임금을 줄임.
· 재고용형
정년이 55세 이상인 사업장에서 정년퇴직자를 3개월 내에 재고용하면서 정년퇴직 전의 임금을 줄임.
· 근로시간단축형
기존의 정년을 연장하거나 정년은 그대로 두고 정년퇴직자를 재고용하면서 임금을 줄이고 근로시간을 주당 15~30시간으로 단축
● 잡 셰어링(job sharing)
근로시간을 줄여 일거리를 나누는 워크 셰어링이나 직무분할을 통해 일자리를 나누는 협의의 잡 셰어링을 포함해 임금동결·삭감 등을 통한 고용유지 및 창출까지 포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