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생만 되어도 경제학의 아버지가 애덤 스미스(A.Smith)라는 것쯤은 안다. 고등학생이면 ‘보이지 않는 손’이라는 말도 자연스럽게 나옴직하다. 그렇다면 대학에서 경제학을 공부하는 학생들 가운데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을 읽어 본 사람은 과연 몇 명이나 될까? 솔직히 그리 많지는 않다. 심지어 대학에서 경제학을 가르치는 교수들 가운데 정작 『국부론』을 읽어 본 적이 없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누구나 다 알지만 아무도 읽지 않는 책이 바로 고전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영국의 정치사상가 제이슨 바커(Jason Barker)는 이와 달리 말한다. “고전에는 역사를 초월하는 가치가 있으며, 그 가치는 어느 시대, 어느 사회에서나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공자(孔子)가 ‘옛 것을 익혀 새 것을 안다(溫故而知新)’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물론 고전을 찾아 직접 읽는 일은 그리 쉽지 않다. 학생들이 읽기에는 내용이 너무 어려운 경우도 많다. 그러다 보니 한 권의 책에 여러 고전을 소개해 놓은 해설서들이 정작 고전보다 더 잘 팔리는 일도 있다. 그렇다면 혹시 이 책도 그런 종류의 해설서가 아닌가 하고 생각하는 독자도 있을 듯싶다. 그러나 이 책은 고전에 대해 설명하는 책이 아니라 고전이 쓰인 그 시대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설명한 책이다. 가령 토마스 모어(Thomas More)의 『유토피아』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요즘도 이상향을 이야기할 때 우리는 흔히 ‘유토피아’라는 말을 쓴다. 하지만 왜 모어가 『유토피아』라는 책을 썼는지, 그리고 책에서 ‘양이 사람을 잡아먹는다’는 이야기를 한 이유가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이는 봉건제 사회가 해체되면서 농민들이 토지로부터 추방되는 과정을 이야기한 것이다. ‘식량은 산술급수적으로 증가하는데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는 말로 유명한 맬서스(Thomas Robert Malthus)의 『인구론』이나 마르크스(Karl Heinrich Marx)의 『자본론』 과 같은 고전들도 마찬가지다.

요컨대 고전을 조금 더 잘 이해하는 방법 가운데 하나는 고전이 나오게 된 시대적 배경과 연결해서 읽는 것이다. 물론 고전이 그 시대에만 한정되어서 가치를 가진다는 뜻은 아니다. 이미 말한 것처럼 고전의 가치는 역사를 초월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고전이 어떤 시대에 어떤 사회적 배경을 가지고 왜 그렇게 쓰였는지 모르면서 마구잡이로 읽어서는 그 의미와 가치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시대를 가장 잘 반영한 고전이 가장 영원한 가치를 가진다. 그래서 우리는 고전이 탄생한 그 시대를 올바로 알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이 책에서 소개하는 고전들이 경제학이나 사회과학의 딱딱한 책들만 있는 것은 아니다. 가령 찰스 디킨스(Charles Dickens)의 『올리버 트위스트』나 스콧 피츠제럴드(F.Scott Fitzgerald)의 『위대한 개츠비』와 같은 문학작품들은 그 어떤 고전들 못지않게 그 시대를 잘 보여준다.
다른 분들도 자주 지적하지만 요즘 경제학이 너무 수학적 논리를 강조하다보니 마치 그것이 경제학의 본모습인줄 오해하는 분들이 적지 않다. 그러나 나는 경제학이란 수학보다는 심리학이어야 하고, 심리학보다는 문학이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자주 한다. 비단 경제학뿐 아니라, 모든 학문의 중심은 바로 사람이어야 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