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정무역은 소농에게 최소한의 생활을 영위하고 기본적인 의료와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소득을 창출하기 위한 '최저가격'을 보장해주기 위해 생겨났다. 공정무역 바나나의 판매 확산을 위한 퍼포먼스를 벌이는 NGO 회원들
커피에 함유된 카페인은 근심을 없애고 기분을 좋게 한다. 칼럼니스트 마크 펜더그러스트(Mark Pen dergrast)는 “커피가 확실히 알코올 소비량을 줄였다”고 주장할 정도로 커피는 매혹적이다. 심지어 그는 “카페들이 프랑스 혁명을 잉태하는 배양지 구실을 했다”고 했는데, 당시 유럽 대륙의 커피하우스는 평등주의를 추구하는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였기 때문이다. 이처럼 커피가 자유무역보다 공정무역(fair-trade)과 더 잘 어울리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자유무역과 공정무역
약 200년 전 데이비드 리카도(David Ricardo)는 한 나라가 절대열위에 있더라도 생산의 기회비용이 적은 재화는 반드시 존재하며, 해당 재화를 특화하여 교역하면 모두에게 이익이 돌아간다는 ‘비교우위론’을 주장했다(1871). 여기에 그 누구의 강요도 필요없다. 비교우위론에 따른 자발적 거래는 참여자 모두에게 이익이 돌아가기 때문에, 서로 거래하기 위해 안달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어느 누구의 만족도 감소하지 않고 모두 더 행복해지는 것을 ‘파레토 개선’이라고 한다. 경제가 효율적인 상태로 변하는 것이다. 자유무역이 아름다운 이유다.
그런데 다음의 경우를 생각해보자. 자유무역으로 100이 증가했는데, 한 쪽이 1을 가져가고 다른 한 쪽은 99를 가져갔다면? 기여도와 생산능력에 따라 이익이 배분된 것이라면 1을 가져간 쪽도 손해 본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그냥 지나치기에는 뭔가 석연치 않다. 1은 너무 적다. 그 정도 배분으로는 거래자가 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기본적 삶을 영위할 수 없다. 그들의 자녀들은 학교 대신 농장으로 나가고 있다. 이들은 여전히 1을 위해 매일 열심히 일하고 있지만 상황은 나아질 기미가 없다. 그래도 여전히 서로 이익이 창출되었으니 ‘괜찮아’라고 말할 수 있는가? ‘그런 상황이 싫다면 다른일을 하거나 다른 재화를 생산하라’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나쁜 건강상태와 낮은 교육수준이 인적자본의 축적을 어렵게 만들고 있어 구조적으로 지속된 가난을 벗어나기 힘든 상태에 놓여있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생각해 봤는가? 1을 가져가는 사람이 제3세계 사람들이고, 99를 가져가는 사람들이 선진국이라면? 효율성뿐만 아니라 가치관이 포함된 ‘공정’이라는 단어가 무역 앞에 붙게 되는 이유다.
농부 데이비드는 얼마를 벌까?
커피는 남반구의 태양 아래서만 자랄 수 있는 풍토성이 강한 작물이다. 향기로운 커피는 남반구 농부의 땀과 정성이 녹아있다. 케냐의 소농 데이비드 가치기는 1파운드 커피를 2~10센트에 판다. 이웃인 헨리는 1파운드에 2센트를 받고 커피를 팔지만, 자신이 판 커피가 로스팅을 거쳐 7달러에 판매되는 것을 전혀 알지 못한다. 1파운드 커피 생두는 약 45잔의 커피로 탈바꿈할 수 있다. 커피 1잔이 약 4달러라고 가정할 경우 농부가 10센트에 판 커피 생두는 180달러의 근사한 음료가 된다. 180달러의 커피에서 농부가 가져간 몫은 0.055%일 뿐이다. 커피 생두가 너무 낮은 가격에 팔리기 때문에 먹고 살기에 급급한 남반구 소농인 데이비드는 학교를 5년도 채 다니지 못했다. 그는 글을 읽고 쓸 줄 모른다. 오로지 할 수 있는 것은 대대로 물려받은 커피농사 기술뿐이다. 교육 수준이 낮기 때문에 커피농사가 힘들다고 다른 일하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공정무역은 이러한 소농에게 최소한의 생활을 영위하고 기본적인 의료와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소득을 창출하기 위한 ‘최저가격’을 보장해주기 위해 생겨났다. 농민에게 생산의 몫을 더 많이 보장해 주어 상생하는 지속가능한 성장을 달성하기 위함이다. 대표적인 단체는 FLO(Fairtrade Labeling Organization, 국제공정무역인증기구)다. FLO는 공정무역 인증기준과 감시시스템을 만들고 이를 준수한 원두에 공정무역 마크를 부착한다. 공정무역 원두는 ‘최저가격+프리미엄’을 받고 소매업자에게 판매된다. 시장가격보다 높게 책정된 가격은 농부에게 돌아가며, 프리미엄은 의료와 교육 등 지역사회 발전에 쓰인다(20~21쪽 인포그래픽 참조).세계 최고급 원두를 판매하는 스텀프타운 커피 로스터드의 운영 책임자인 맷 라운즈베리에 따르면 “공정무역커피는 대개 1파운드에 1달러 50센트 정도에 팔리고, 가공을 거쳐 북미에서는 12~13달러에 팔린다”고 한다.
효율성이 아닌 공정성의 관점에서 바라봐야
분명한 것은 공정무역이 시장경제 원리에 어긋나는 움직임이라는 점이다. 최저가격제도는 만성적인 초과공급을 초래하며, 더 낮은 가격에 소비할 수 있는 가능성을 차단한다. 그러나 공정무역은 자유무역에서 추구하는 효율성의 관점이 아니라 공정성의 관점에서 등장한 것임을 기억해야 한다. 자본이 없어 대규모 투자는 물론이고 재투자마저 원활하지 않은 이들에게 정글과 같은 시장은 너무 가혹할 수 있다. 이들에게 자본을 모을 수 있는 최소 수익을 보장해주고, 신용대출 통해 대규모 투자를 기반으로 한 농업 시스템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을 열어주면 어떤가? 이들은 자신이 만든 생두의 가치를 전혀 알지 못한다. 읽고 쓸 수 없기 때문에 시장의 중요한 기술과 정보를 습득하고 대응할 능력이 없다. 이들에게 교육투자가 반드시 필요한 이유다. 물적자본과 인적자본을 활용하려면 질병의 통제를 통한 신체적 건강은 필수적 요인이다. 대한민국 국민이 누리는, 아니 인간이라면 기본적으로 누려야 하는 건강한 생활과 좋은 교육의 기회를 공정무역을 통해 남반구의 소농에게 주고 싶은 것이다.
공정무역의 성공은 다음의 두 가지 요인에 달려 있다. 첫째, 비영리기구인 공정무역 단체들이 부패하지 않아야 한다. 이들은 공정무역 마크를 붙여 시장보다 높은 가격에 원두를 공급한다. 소비자들이 비싼 공정무역 마크가 붙은 원두를 소비하는 이유는 소농을 위한 것이다. 그런데 중개상의 역할을 하는 공정무역 단체가 부패할 경우, 소비자의 선한 마음이 엉뚱한 곳에 전해진다. 따라서 이들은 기관의 운용 내역을 투명하게 공개하여 생산자와 소비자의 신뢰를 얻어야 한다.
더 중요한 열쇠는 소비자의 의지다. 공정무역은 최저가격제도를 활용한 것이기 때문에 높은 가격에 팔려는 사람은 많고, 사려는 사람이 적다. 시장경제 하에서는 안정적인 시스템이라고 할 수 없다. 그러나 소비자들이 공정무역 커피를 더 선호하면 수요가 증가하고 초과공급은 줄어들거나 사라진다. 이제 윤리적 커피를 마시기 위해 공정의 향기를 찾아가는 소비자가 되는 것은 어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