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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살림 편성의 패러다임 바뀐다-양출제입에서 양입제출로
김태준 매일경제신문 경제부 기자 2015.06.02

지난 5월 13일, 정부는 청와대에서 국가재정전략회의를 열고 향후 국가 재정운용 방안을 논의했다.

 

매년 한 가정의 가계부를 정리하고 계획을 수립하는 데 가장 먼저 고려하는 것이 수입의 규모이다. 여기에 맞춰 각종 씀씀이의 규모를 정하고 저축도 해서 살림살이를 늘려가는 것이 기본이다. 만약 적은 수입으로 큰 지출을 계획하면 필연적으로 부족분이 발생하게 되고, 그 부족분은 가계부채로 쌓인다.

 

수입이 먼저냐, 지출이 먼저냐

가계부채가 너무 쌓여 더는 감당할 수 없는 상태까지 이르면 가계는 파탄을 맞이한다.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살림살이도 마찬가지다. 그동안 우리나라는 정부 주도 의 성장 위주 경제개발정책으로 정부의 역할이 커지면서 재정원칙도 어쩔 수 없이 양출제입의 원칙이 당연시되어 왔다. ‘양입제출’(量入制出)수입을 헤아려 지출을 계획하는 것이고, 반대로 양출제입’(量出制入)지출을 헤아려보고 수입을 계획하는 것이다.

 

건국 이후 우리 정부는 양출제입의 원칙으로 예산을 짜왔다. 예전엔 세수가 당초 예상보다 많이 걷혔기 때문에 문제가 심각하지 않았지만 최근 3년간 세수는 예상에 못 미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앞으로도 세금 수입은 종전 예상보다 덜 들어올 것으로 추산되면서 마침내 정부는 우리나라 건국 이후 재정 편성의 원칙으로 삼아온 양출제입의 원칙을 양입제출로 바꾸기로 했다. 이 원칙은 당장 내년 예산안부터 적용한다. 늘어나는 복지 수요에 세출은 눈덩이만큼 불어나는 것을 더는 두고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개인들에게 상식으로 통하는 번만큼 쓴다는 원칙이 그동안 국가 재정을 운용할 때는 적용되지 않았다. 이유는 두 가지다. 우선 국가 기능상 꼭 필요한 곳에는 돈을 써야 한다는 논리가 작용했다. 예를 들면 국민 복지를 정부가 책임져야 한다는 논리가 득세하면서 정부가 쓸 곳을 미리 정해놓을 수밖에 없었다. 정부 산하 공기업까지 동원하면 세수가 조금 부족해도 감당할 수 있었다. 옥동석 조세재정연구원장은 양출제입 원칙은 개발연대를 포함해 대부분의 시기에 작동했다고 볼 수 있다우리나라는 공기업들을 동원해 국가사업을 추진했기 때문에 세수에 대한 의존도를 덜 수 있었다고 말했다.

 

다음으로 우리나라는 세금을 항상 예상보다 많이 걷었다는 점이다. 정부가 능력을 발휘하면 세금을 몇 조 원 더 걷을 수 있다는 낙관론이 작용했다. 그러다 보니 정부가 쓸 곳을 다소 늘려도 세금을 거둬 맞출 수 있다고 스스로 과신했다. 하지만 2012년부터 상황은 180도 달라졌다. 정부 예상보다 수입이 부족했던 것이다.

 

경제성장이 급속히 둔화했고 정부가 행정력을 아무리 동원해도 세금은 늘지 않았다. 향후 5년간 세금이 얼마나 들어올지를 예측하는 기준이 되는 경상성장률 예측치는 지난해 6%에서 4.5% 선으로 낮아졌다. 이 경우 2014년부터 2018년까지 5년간 우리나라 세금은 당초 전망보다 78조 원가량 덜 들어올 것으로 예상된다. 경상성장률은 실질성장률에 물가상승률을 더한 것으로 소득세·법인세·부가가치세 등 우리나라 조세 산정의 기준이 된다.

 

부족한 세수, 양출제입에 제동걸어

정부 관계자는 내년 예산을 편성할 때는 소리 나는 곳이 여럿 생길 것이라는 말로 구조조정 의지를 피력했다. 기획재정부 예산실은 이미 모든 예산을 제로베이스에서 검토하기로 방침을 정했다. 과거 예산을 지원했던 사업이라 하더라도 원점에서 다시 논의를 시작한다는 뜻이다. 이에 따라 그동안 정부지원을 받아 수행했던 사업에 대한 대대적인 구조조정이 불가피해졌다. 기초연금, 무상급식, 무상보육 등 무상복지 관련 재정 지출은 국회 동의가 있어야 줄일 수 있다.

 

이 때문에 정부세출 구조조정은 정부가 자체적으로 할 수 있는 사업성 예산을 줄이는 데 초점이 맞춰질 것으로 보인다. 정부 관계자는 법에 따라 의무적으로 지출해야 하는 의무지출은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재량지출에 대해서는 최대한 증가폭을 축소하는 것이 불가피하다모든 예산도 제로베이스에서 검토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2014년부터 향후 5년간 재정지출 증가율을 종전 4.5%에서 4%대로 낮출 방침이다. 이렇게 되면 5년간 재정지출 규모는 당초 전망치인 1,9578,000억원에서 1,9271,000억 원으로 307,000억 원가량 줄어들게 된다.

 

이렇게 정부지출을 줄이더라도 세금 감소폭이 워낙 커 재정적자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정부도 재정적자 규모가 주요국과 비교할 때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고, 올해 경제상황 또한 녹록치 않다는 점을 고려해 재정적자 규모는 어느정도 용인할 뜻을 내비쳤다. 이렇게 되면 정부가 애초 예상했던 올해 재정적자 규모는 종전 336,000억 원에서 약 40조 원으로 6조 원가량 늘어날 전망이다.

 

제로베이스 예산

예산 편성 시 각 항목에 대해 매년 제로로 두고 과거 실적, 우선 순위 등을 엄격하게 따져 결정하는 것을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