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든 책을 읽게 하고 싶었다. 학교 교육의 본연의 임무는 학교를 떠나서도 스스로 배움을 지속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독후감 숙제를 내보기도 하고, 퀴즈·빙고게임 등 다양한 방법으로 독후 활동을 해보기도 했다. 이렇다 할만한 성과가 보이지 않았다. 요즘 아이들은 책을 읽을 시간도, 여유도, 환경도 모두 충분하지 않기 때문에 금쪽같은 수업 시간을 책 읽기에 할애하기로 했다. 이후로 내내 이어질 진도의 압박은 어떻게든 해결될 수 있을 것이라 믿으며, 학기 초 수업을 책 읽기로 시작했다.
학생들이 책을 읽는 모습을 관찰하고 작성한 결과물을 검토하면서 믿기 힘든 현실을 직면하고 말았다. 아이들이 책을 읽을 줄 모르는 것이었다. 아무리 쉬운 책을 학생들의 손에 쥐어줘도 “선생님, 책이 너무 어려워요!”라는 비명이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엄살이 아니었다. 정말로 책을 읽을 줄 몰랐다. 많은 아이들이 글자는 알지만, 그 글자들이 모여서 만들어내는 의미들을 파악하는 데서 큰 어려움을 겪는 ‘실질적 문맹 상태’였던 것이다.
나의 책 읽는 방식을 분석해 보기도 하고 학생들이 어려움을 겪는 근본적인 원인을 살펴보면서 해결책을 찾아보았다. 핵심을 파악하는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책을 보기만 할 뿐 제대로 읽는 법을 모르는 것 같았다. 핵심을 파악하는 능력을 키워준다면, 그 핵심을 중심에 두고 독서 과정에서 얻는 정보들을 종합해 가면서 책의 내용을 이해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해야 핵심을 파악하도록 할 수 있을지 구체적인 방법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고심을 하고 있던 내게 한 학생이 가져다 준 자료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2014년에 희망제작소에서 진행한 노란테이블 토론 행사에서 사용된 육각형 형태의 카드로 다양한 키워드가 적혀있는데, 이 카드에 적힌 키워드는 토론에 참여하는 학생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단서를 제공하는 역할을 하여 학생으로 하여금 적극적으로 토론에 참여하게 만드는 기능을 갖고 있었다.
학생들의 관심을 끌려면 활동의 이름부터 그럴 듯해야 한다. 육각형과 단어를 각각 뜻하는 헥사곤(hexagon)과 키워드(keyword)를 조합하여 ‘키워드 헥사’라는 이름을 지었다. 키워드 헥사란 ‘육각형의 카드에 키워드를 적고 그것을 바탕으로 책의 내용을 정리하고 토론하는 것’이다. 왜 육각형이냐고 묻는다면? 키워드를 그 연관에 따라 배열하다보면 카드가 여러 방향으로 가지를 뻗을 수 있어야 하는데, 사각형은 가지를 뻗을 수 있는 방향이 제한되어 있고, 팔각형은 카드와 카드 사이에 빈 공간이 너무 많이 생겼다. 육각형이 딱 좋았다.


『잘 산다는 것』(강수돌 저, 너머학교), 얇지만 깊이가 있는 이 책을 4번에 걸쳐 나눠 읽었다. 30분은 읽고 20분은 모둠별로 키워드를 중심으로 읽은 내용을 정리하도록 했다. 학생들은 육각형의 알록달록한 카드에 책을 읽고 발견한 키워드를 적었다. 서로 연관 있는 키워드를 배치하면서 읽은 내용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만화책도 읽기 어렵다고 했던 아이들이 책을 읽고 내용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공동체 카드를 자본주의 카드 옆에 놓으면 어떻게 하냐? 여기, 살림의 경제 옆에 놓아야지.”라고 얘기하는 소리를 들으니 기뻐서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이렇게 4시간을 거치고 나서야 한 권의 책을 온전히 읽을 수 있었다.
키워드 헥사를 활용할 수 방법은 생각보다 무궁무진하게 많았다. 어떤 식으로 키워드 헥사를 활용해 나갔는지, ‘키워드 헥사로 책읽기’를 지도하는 과정에서 생겨난 문제들은 어떻게 해결했는지 등은 다음 호에 계속 알아보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