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Why not change the world?’ 내가 재학 중인 한동대학교에서 귀에 박히게 듣는 말이다. 우리 학교의 슬로건이기도 한 이 말은 어느 전공의 어떤 교수님이든 수업에서 가장 중심에 두는 가치다.
2년 전, 현대자동차 ‘해피무브(Happy Move) 글로벌 청년봉사단’에서 활동하며 최빈국이라 불리는 아프리카 말라위(Malawi)에 2주간 단기 봉사활동을 다녀왔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현지인들과 함께 일하고 가정을 방문하면서 이들의 삶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이 기회를 통해 학부에서 공부 중인 경제학과 법학으로 세계 각국의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기 위한 방안과 빈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을 고민해보며 ‘국제개발’이라는 분야에 자연스럽게 관심을 갖게 되어 YKSP에 지원했다.
석유부자 쿠웨이트의 경제 숙제는?
YKSP에 합격한 이후, 쿠웨이트 사업에 참여하게 되었다. 나의 임무는 출장 준비를 돕는 것이었다. ‘쿠웨이트’의 정부 기관과 사업을 하게 된 만큼, 해당 국가의 최신 뉴스와 동향, 문화 등을 조사하고, 그 결과를 한국 연구진에게 전했다.
불과 몇 개월 전만 해도 나에게 쿠웨이트라는 국가는 중동의 석유 산출국, 브라질 월드컵 예선전에서 우리나라와 맞붙었던 국가라는 게 전부였다. 사전 조사를 통해 오일 파워를 가진 ‘부자 나라’ 쿠웨이트도 나름의 고충이 있다는 사실을 엿보며, 어떠한 문제 때문에 KSP 사업을 요청했는지 자세히 알게 되었다.

2014년 쿠웨이트 KSP의 사업 주제는 ‘거시경제모형 개선: 경제계획 구축을 위한 거시경제모형 개선’, ‘주거케어 프로그램: 인구 증가에 따른 공공주택 제공 방안’으로 두 가지였다. 첫째 주제인 거시경제모형 개선에서 ‘거시경제모형’은 경제학자들이 한 나라 혹은 한 지역의 경제를 설명할 때 쓰는 하나의 도구로 국가의 통화정책, 재정정책의 밑받침이 된다고 간략하게 정의할 수 있다. 쿠웨이트는 석유 산출국인 만큼 석유 가격 변동에 아주 민감하다. 그리고 인구의 69%가 외국인(2014년 기준)으로 독특한 노동인구 구성을 보인다. 그래서 쿠웨이트는 한국의 연구진과 함께 쿠웨이트의 거시경제모형을 개선시켜 경제계획 수립에 도움을 받고자 했다.
성취감과 아쉬움은 더 좋은 미래를 설계할 수 있는 계기
쿠웨이트는 결혼한 내국인 부부에게 주택을 무상으로 제공하는 복지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당국에서 법적으로 보장하고 있는 주거면적은 무려 400㎡(약 120평)에 이르기 때문에, 주택을 제공받으려는 국민들의 수요가 굉장히 높은 상태다. 하지만 집이라는 것이 단기간에 생산해 낼 수 없는 특성을 가진데다가, 쿠웨이트의 국토 면적이 우리나라의 경상북도 정도로 협소하고 사막지역이 많아 주거지로 활용할 수 있는 공간이 한정돼 있었다. 이러한 점 때문에 쿠웨이트는 국민의 주택 수요를 다 감당하지 못하고 있었고 주택을 제공하는 복지정책을 현재 진행 중인 신도시 개발과 향후 도시 계획과 연계하여 개선방안을 찾고자 ‘주거케어 프로그램’을 한국과 함께 연구하게 되었다.
쿠웨이트 출장은 2014년 10월, 5박 6일 간의 일정이었다. 출장 중에는 녹음기와 노트북을 들고 다니며 각각의 회의를 녹취·정리하여 회의록을 만드는 일을 맡았다. 회의는 주로 영어로 진행되었는데, 아랍 발음과 억양이 섞인 말을 이해하는 것이 어려워 녹음을 두 세번 반복해서 들어야만 겨우 알아들을 수 있었다. 하지만 사업의 기초가 되는 중요한 대화가 오가는 회의이기 때문에 많은 시간을 들여 정확한 회의록을 작성하려 했다.
철저한 준비를 했지만 첫 출장에서의 긴장은 어쩔 수 없었나 보다. 쿠웨이트 기관의 관계자들과 처음 만나는 자리에서 반갑다는 인사를 건네며 한명씩 돌아가며 악수를 나누는데 한 여성 관계자 앞에서 멈춰섰다. 상대는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내 악수를 거절했다. 그 찰나 ‘아차! 여긴 이슬람 문화권이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쿠웨이트에서는 이성(異性)끼리는 악수를 꺼린다는 사실을 모르는 게 아니었는데도, 긴장한 탓인지 이미 멋쩍게 나가 버린 내 손을 원망했다. 그때는 왜 그렇게 실수 하나에도 자책하고 아쉬움이 남았던지 모르겠다.
국제개발은 가난한 국가에 대한 원조에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이제 어떠한 국가도 다른 나라의 영향 밖에 있을 수 없는 상황인 만큼, 한 국가의 경제적 흥망은 전세계적인 문제다. 서툴고 어설픈 게 많은 25살 대학생이었지만 쿠웨이트 YKSP활동으로 국제개발에 작은 힘을 보탠 것 같아 뿌듯하다. 그리고 아쉬움도 많이 남는다. 하지만 이러한 생각이 세계로 한발짝 나가게 하는 열정과 10년, 20년 후에도 나의 비전을 향해 달려갈 원동력이 되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