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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릭경제교육(종간)
이달의 책: 경제학이 외면한 토지를 다시 보자 『토지의 경제학』
전강수 대구가톨릭대 경제통상학부 교수 2015.07.02

내가 이 책을 집필한 것은 토지에 관한 오해를 불식하기 위해서다. 많은 경제학자들이 토지를 인공물인 일반 상품과 동일하게 취급한다. 하지만 토지는 일반 상품과는 매우 다른 성질을 갖고 있다. 성질이 같은 물건을 동일하게 취급하는 것은 옳지만, 성질이 전혀 다르다면 그렇게 취급할 수 없다. 일반 상품과 달리 토지는 천부(天賦) 자원이다. 필요하다고 해서 사람이 더 만들 수 있는 물건도 아니다. 그러니 공급량이 고정되어 있다. 일반 상품은 수요가 있는 곳으로 얼마든지 운반할 수 있지만, 토지는 그렇게 할 수가 없다. 공급량뿐 아니라 위치도 고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면 토지는 영속성을 갖는다. 닳아 없어지지도 않고 가치가 떨어지지도 않는다는 말이다. 인간이 사용하는 물건 가운데 이처럼 특성을 여럿 구비한 것은 없다. 워낙 독특한 성질을 가진 자원인 만큼 초기의 경제학자들은 토지를 특별하게 취급했다. 그리고 그것이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서도 면밀히 관찰했다. 토지의 특수성과 중요성을 인정하는 전통은 19세기 말까지 지속되었다.

 

하지만 19세기 말~20세기 초에 현대 경제학의 뿌리로 평가받는 신고전학파 경제학이 성립하면서 사정은 달라졌다. 신고전학파 경제학자들은 19세기 후반 토지 중심의 경제학으로 전 세계를 뒤흔들었던 헨리 조지(Henry George, 1839~1897)의 경제이론을 논파하기 위해 토지를 경제학에서 추방하려는 작전을 전개했는데, 그 작전이 성공을 거두어 헨리 조지와 토지는 경제학에서 사라져버렸다.

 

오늘날 경제학원론 교과서 도입부에서 생산의 3요소를 토지, 노동, 자본이라고 해 놓고 그 후 끝까지 토지에 관해 전혀 언급하지 않는 이상한 구성을 갖게 된 데는 이런 사정이 작용했다. 현대 주류 경제학은 토지를 인공물과 똑같이 취급한다. 수요와 공급이 상호 작용해서 가격을 결정하고, 시장 참가자들은 가격의 움직임을 신호로 삼아 의사결정을 하며, 수요와 공급이 괴리될 때는 즉시 가격이 변동해서 양자가 일치하는 균형 상태를 회복하는 것을 일컬어 시장 메커니즘이라고 부르는데, 주류 경제학자들은 이 메커니즘이 토지시장과 부동산시장에서도 똑같이 작동한다고 보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부동산 가격이 폭등해서 거품이 생겨도 금방 시장이 자체적으로 해결할 것이기 때문에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현실은 토지를 인공물과 똑같이 취급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가르쳐준다. 일반 상품과는 달리 부동산 가격에 거품이 생겼다가 꺼지면 금융과 경제는 엄청난 타격을 입는다. 일본의 장기불황과 미국의 서브프라임 위기를 생각해보라. 또 토지를 일반 재산과 똑같이 취급해서 개인이 사용권, 처분권, 수익권을 몽땅 행사하게 하면 토지 소득의 편중으로 말미암아 소득과 부의 계층 간, 지역 간 불균형이 심해진다. 토지에 관한 한, 초기의 고전학파 경제학자들이 옳았다. 토지는 매우 특수하며 경제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므로, 현실 시장의 자기 조절 기능에만 맡기고 방임해서는 안 된다. 토지를 올바로 취급하려면 우선적으로 토지제도를 정의롭게 만들어야 한다. 토지보유세를 강화하고 공공토지임대제를 시행하면 그렇게 할 수 있다.

 

이 책을 통해 학생들이 토지의 특수성은 물론이고 제도의 중요성을 깨닫기 바란다. “제도와 정책은 물길과도 같다. 물이 물길을 따라 흐르듯이, 사람들은 제도와 정책의 방향에 맞추어 행동”(328)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주류 이론이 말하는 내용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지 말았으면 한다. 의외로 오류가 숨어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