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경제의 흐름에 두 가지 현상이 동시에 나타나고 있다. 그것은 세계화와 지역화 움직임이다. 경제적 관점에서 세계화란 무역과 자본의 자유화 추진으로 전 세계가 하나의 거대한 시장을 형성해 나가는 과정을 의미한다. 1995년 다자간 자유무역체제의 활성화를 추진하는 WTO(세계무역기구) 출범으로 세계화가 더욱 가속화되는 계기가 되었다. 반면, 지역화는 특정한 국가 간에 무역의 장해를 없애고 경제활동을 자유화하는 경제통합(Economic integration)을 추진하는 과정이다. 또한 경제 분야를 포함 사회·문화·정치 분야 등에 대한 지역 간 협력기구를 탄생시키는 과정도 포함할 수 있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세계화와 지역화의 관계를 어떠한 시각으로 바라봐야 할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경제학자에 따라 세계화와 지역화의 관계를 갈등 관계로 보는 시각이 있는가 하면 보완 관계로 보는 시각도 있다. 갈등 관계로 보는 시각은 지역주의가 세계화라는 거대한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나타났다는 것이다. 세계화로 인한 무역 경쟁의 심화가 유럽에서 지역경제통합을 가속화시켰고 그러한 경제통합이 다른 지역의 경제통합을 탄생시켰다고 보는 견해이다. 이와 반대로 보완 관계의 시각은 지역주의 현상을 세계화가 추구하는 자유 시장에 도달하기 위한 중간단계로 해석한다. 지역경제통합이 궁극적으로는 세계자유무역화의 디딤돌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1980년대부터 나타나기 시작한 지역경제통합은 저마다 탄생 배경이 있지만 분명한 것은 역내국가 간에는 특혜 대우를, 역외국가인 제3국에게는 차별 대우를 하겠다는 것이다. 세계화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나타난 대륙별 지역경제통합 그리고 지역협력기구의 이해를 통해 세계경제가 어떠한 방향으로 흐르고 있는지 알아보자.
지역통합, 먼저 주변국가와 장벽을 낮춰야
1993년 11월 유럽공동체(EC, European Community)가 확대되어 유럽연합(EU, European Union)이 탄생했다. EU의 출범 목적은 유럽 내 단일시장을 구축하고 단일통화를 실현하여 유럽의 경제·사회 발전을 촉진하자는 것이다. 2015년 6월 현재 EU에 가입된 가맹국은 독일, 프랑스 등 28개국에 이른다. EU는 유로화 출범으로 단일 경제권을 형성해 미국이 갖고 있는 세계 경제의 패권을 탈환하고 과거의 영광을 되찾자는 목표도 가지고 있다. 현재 공동시장의 단계를 넘어 경제동맹(Economic Union) 수준의 경제통합 단계에 진입한 상태이다.
1994년 1월 미국, 캐나다, 멕시코는 관세와 무역장벽을 폐지하고 자유무역지대 형성을 목표로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을 출범시켰다. NAFTA는 미국의 자본과 기술, 캐나다의 자원, 멕시코의 노동력을 결합해 국제경쟁력을 향상시키자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또한 EU를 견제하고 멕시코를 협정에 포함시켜서 중남미와 관계도 강화해야 한다는 정치경제적 탄생 배경도 내포하고 있다.
남미공동시장(MERCOSUR)은 1995년까지 공동시장 완성을 목표로 브라질, 아르헨티나, 파라과이, 우루과이 등 4개국 참여하에 1991년에 출범되었다. 2012년 7월에는 베네수엘라가 추가로 가입하였다. 대외 공동관세제도를 채택하여 관세동맹의 형태를 띠고 있으나 일정기간 예외품목 규정을 두고 있어 경제통합 단계 중 자유무역지역과 관세동맹의 중간단계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자유무역주의 표방하에 출범한 MERCOSUR는 각 나라에서 좌파 정권이 들어서면서 보호무역주의와 자립주의로 성향이 바뀌었다. 최근 남미공동시장이 보호주의 강화로 경쟁력을 잃어가는 사이, 중남미의 또 다른 핵심축인 멕시코, 페루, 칠레를 중심으로 한 태평양동맹(Pacific Alliance)이 2012년 5월에 출범되었다. 태평양동맹은 자유무역, 경제통합 그리고 국제교역 활성화를 목표로 회원국 간 92%의 관세를 철폐하였으며 2020년까지 100% 무관세 교역을 목표로 하여 남미시장에서 급성장하고 있다.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은 1967년 8월 태국, 인도네시아 등 5개국이 결성한 지역협력기구다. 그 후 브루나이, 베트남, 캄보디아 등 5개국이 가입해 현재 10개국이 회원국이다. ASEAN 동남아 지역 협력을 통해 경제, 사회, 문화 등 각 분야의 기반을 확립하고, 외국의 간섭을 배제하며 지역 내의 평화와 안정을 추구하기 위해 창립되었다. 1997년 12월에는 동아시아의 협력 필요성을 인식해 우리나라를 비롯해 중국, 일본 등 3개국을 초청하여 제1차 ASEAN+3 정상회의가 개최되었다. 최근 글로벌 기업들은 풍부한 자원, 거대한 소비시장, 중국 대체 생산기지 그리고 이제 막 시장이 제대로 열리기 시작했다는 점 등을 이유로 동남아국가연합에 주목하고 있다. 2015년 말에는 단일시장 형성을 목표로 한 아세안경제공동체(AEC) 출범이 예정되어 있다.
중동지역에는 1981년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해 6개국이 설립한 걸프협력회의(Gulf Cooperation Council)가 있다. 이란혁명으로 인한 왕정붕괴, 이란과 이라크 전쟁, 소련(현재 러시아)의 아프가니스탄 침공 등 걸프만을 둘러싸고 다양한 분쟁과 전쟁이 걸프협력회의를 탄생시키는 배경이 되었다. 걸프협력회의는 이러한 안보 협력을 목적으로 출범했지만 그 후 관세동맹과 공동시장을 창설하는 등 경제협력 분야도 강화하고 있다. 걸프협력회의 회원 국가들은 세계 석유매장량의 45%를 차지하고 있어 세계 시장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
경제협력체의 속내도 자유무역 추구
자유무역을 목표로 출범한 지역경제통합과 차이는 있지만 경제, 사회문화, 정치 분야 협력을 위해 탄생한 지역간 경제협력체도 세계경제의 지역화에 한몫하고 있다.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는 아시아와 태평양을 둘러싼 회원 국가들의 지속적인 경제성장과 공동 번영을 위해 1989년에 출범됐다. 단기적으로는 무역과 투자의 자유화를 실현하며, 중장기적으로는 APEC을 창설하여 아시아태평양자유무역지대(FTAAP)를 실현하는 것이 목표다. 미국은 APEC을 우루과이라운드(UR) 타결과 도하개발어젠다(DDA) 출범 등 다자무역체제 강화를 지원할 수 있는 수단으로 인식하고, EU와의 협상에서 협상력 강화를 위한 창구로 활용하기도 했다. 1996년에는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가 유럽과의 연계를 통해 미국견제를 원하는 아시아 측과 경제관계 강화로 아시아시장 확보를 원하는 유럽 측간의 상호이해관계가 일치하면서 출범됐다.
2005년 6월에는 아시아·태평양 지역 경제의 통합을 목적으로 뉴질랜드, 싱가포르, 칠레, 브루나이 4개국 체제로 다자간 자유무역협정인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이 출범됐다. 2015년까지 모든 무역 장벽을 철폐하는 것을 목표로 삼으며, 협상 참가국이 모두 최종 협정에 서명하면 최대 규모의 자유무역지대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은 초고속 경제성장을 하고 있는 중국을 견제할 의도로 TPP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지역경제통합이 세계무역기구(WTO) 체제보다 빠른 속도로 무역장벽을 철폐하고 재화와 서비스 그리고 생산요소의 자유로운 이동으로 자유무역을 극대화시키는 것을 도모하고 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세계 시장의 패권을 위한 정치적, 안보적인 갈등 요인도 녹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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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협력체의 특성
·자유무역협정
역내 무역 자유화
·관세동맹
역내 무역 자유화, 역외국에 공동관세율 적용
·경제통합
역내 무역 자유화, 공통된 금융·재정 등의 정책 수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