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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릭경제교육(종간)
적정기술은 ‘인간’의 얼굴을 한 ‘기술’
정해원 마을기술센터 핸즈 대표 2015.07.02

우리는 현재 첨단기술의 시대에 살고 있으며, 첨단기술의 발달은 전 지구적으로 영향력을 가진다. 하지만 우리는 이런 거대한 흐름 속에 기술의 방향에 대해서 더 이상 고민하지 않은 채 맹목적으로 시장의 논리에 따라가고 있다. 스마트폰의 짧은 교체 주기를 돌아보면 금세이런 흐름을 깨닫게 된다. 그런데 이렇듯 최신의 기술을 선망하고 그 기술을 소비해 버리는 우리의 삶은 과연 정상인 것일까? 과연 우리에게 기술이란 무엇이고, 그 기술은 우리를 행복하게 할 수 있을까?

 

지역중심적·노동집약적·친환경적 방식으로 에너지 고효율 달성

 

적정기술(Appropriate technology)’이란 적당한 기술, 알맞은 기술이라는 말로, 해당지역의 자원을 활용해서 누구나 쉽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기술을 말한다. 역사적으로는 인도 민족주의 지도자 간디가 물레를 돌려 옷을 만들어 입은 운동을 시작으로 본다. 1973년 경제학자 에른스트 슈마허(Ernst Schumacher, 1911~1977)작은 것이 아름답다(Small is Beautiful)라는 책을 통해 적정기술의 개념을 제안했는데, 그 무렵 발생한 1차 오일쇼크와 맞물려 전 세계적으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적정기술은 지역중심적이고 노동집약적이다. 그리고 친환경적인 방식으로 에너지 고효율을 달성하여 궁극적으로 인간의 삶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는 기술이다. 또한 정보와 기술을 누구나 쓸 수 있게 공개하는 것도 적정기술의 중요한 특징이다.

 

적정기술의 사례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흙부대로 집을 짓는 건축법, 햇빛으로 공간을 난방하는 햇빛온풍기, 주변의 재료로 물을 깨끗하게 하는 모래여과장치, 빗물을 농업생수와 생활용수로 활용하는 빗물저금통, 우리집에서 에너지를 생산하는 태양광발전장치, 소형풍력장치, 계곡물을 이용해서 발전을 하는 소수력발전장치, 인간의 동력을 전기로 바꾸는 자전거발전기, 콩기름으로 디젤을 만드는 바이오디젤, 그리고 크게 보면 우리 주변에 있는 자전거도 적정기술의 예라고 할 수 있다.

 

흔히 적정기술의 예로 라이프스트로우‘Q드럼등을 이야기하며 제3세계를 돕는 기술임을 강조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원조형적정기술뿐만 아니라 국내형적정기술 역시 각자 자신이 처한 환경에 적합한 기술적인 해결책을 찾는 데에 의미가 있다. 특히 원조형 기술은 그 지역주민들의 자발적인 참여가 필수적이며 지속가능해야 한다. 플레이펌프(Roundabout Play Pump, 놀이기구를 돌리면 그 힘을 이용해 지하의 물을 끌어올리는 펌프)의 사례와 같이 외부 기획과 대규모 투자 행위만으로는 실패할 확률이 높다. 또한, 현재 국내형 적정기술도 아마추어적 시도와 낮은 효율성으로 인해 실험 혹은 이벤트 수준에 머무르는 경우도 있다.

 

 

즐거운 불편 vs. 첨단기술의 유혹

 

시작이나 발전과정을 볼 때, 적정기술은 나름의 철학과 운동성을 갖고 있기에 널리 알리기 위해서는 나름의 교육과 지원이 필요하다. 인간은 대부분 더 편한 기술을 선호하기에 첨단기술의 유혹에 쉽게 빠진다. 그래서 자전거를 타는 사람도 기회가 주어지면 자동차를 타고 싶어 한다. 그런데 적정기술운동은 자동차(첨단기술)를 타는 사람에게 조금은 불편한 자전거(적정기술)를 타라고 하는 셈이니 쉽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자동차로 길이 꽉 막히는 서울과 보행자와 자전거 천국인 암스테르담을 비교해보면, 우리가 어떤 사회제도를 택하고 이에 알맞은 기술을 택하느냐에 따라서 우리의 삶이 달라질 수 있다. 그래서 내 집에 태양전지판을 달아 전기를 생산하는 것이 거대한 원자력발전소보다 인간의 얼굴을 한 기술이라 말할 수 있는 것이다.

 

본질적으로 적정기술은 운동성을 띠며, 기술내용을 공개하므로 기존의 자본주의 체제 내에서 수익을 내기는 어려운 구조이다. 이에 대해 적정기술의 주창자인 폴 폴락(Paul Polak)그동안의 적정기술은 선의를 가진 서투른 사람들이 기술적 해답만을 찾으려 했다고 비판하며 냉철한 사업가의 마인드로 비즈니스 모델을 찾을 것을 주문했고, 이후 슈퍼머니메이커 펌프와 같은 수익모델의 예가 나오기도 했다. 이에 따라 2000년대 후반부터 시장성과 디자인을 강조하는 소외된 90%를 위한 디자인이라는 개념이 적정기술의 새로운 흐름으로 부상하고 있으며, BOP 시장을 겨냥해서 적정기술을 활용하거나 ODA의 과제로 접근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한국 내에서 시도하는 적정기술은 어떤 경제적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까? 예를 들어 집에 햇빛온풍기를 달아 난방을 해결하려 노력하는 사람들이 많아진다면 이런 신재생에너지 분야가 새로운 사업으로 자리를 잡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앞으로의 닥칠 에너지 위기에 대한 해결책 중에 하나의 대안이 될 것이다.

 

이미 첨단기술이 지배하고 있고 소비가 미덕인 한국사회에서는 고장난 물건을 고쳐 쓰고, 버려진 물건을 다시 재활용하며, 지역 내에서 첨단기술에 의존하기보다 스스로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궁상맞고 시류에 뒤처져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자본이나 첨단기술로부터 한발 물러서서 자립적인 삶을 살고 싶은 사람들이 추구하는 적정기술은 2차 대전 당시, 해저에서 산소포화도의 지표역할을 했던 잠수함의 토끼처럼 기술의 방향을 고민하고, 우리에게 진정 필요한 기술이 무엇인지 계속 질문하게 해준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있다.

 

 

ODA(Official Development Assistance, 공적개발원조)

공적개발원조는 선진국의 정부 또는 공공기관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개발원조위원회(DAC) 수원국 리스트에 포함된 개발도상국에 경제개발과 복지향상을 목적으로 증여 및 양허성 차관을 제공하는 것으로 정부개발원조라고도 불린다.

 

BOP(Bottom of Pyramid)

'피라미드의 맨 밑바닥을 뜻하며, 소득계층의 최하위에 있는 연간 3,000달러 미만의 저소득층을 지칭한다.

 

슈퍼 머니메이커펌프(Super Money Maker Pump)

적정기술 사회적 기업인 킥스타트(Kick Start)’에서 만든 수동식 페달형 소형 펌프. 케냐, 탄자니아 등에 판매하여 약 6만 개의 일자리를 창출하고, 70만 명이 빈곤으로부터 탈출하는 등 경제발전에 기여한 성공적인 모델로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