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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릭경제교육(종간)
이달의 책: 명화 속에 숨겨진 경제학 코드 『그림 속 경제학』
문소영 코리아중앙데일리 문화부장 2015.07.29

장 프랑수아 밀레(18141875)이삭 줍는 여인들만큼 우리에게 익숙하고 정다운 그림이 또 있을까. 너무 친숙한 나머지 좀 따분하게 느껴질 정도다. 하지만 1857년 프랑스에서 처음 발표됐을 때, 이 그림은 선동적이고 불온하다는 비난을 받았다.


당시에는 이삭 줍기라는 테마가 심상치 않게 받아들여졌다. 먼 옛날부터 추수가 끝난 뒤에 이삭을 줍고 다니는 사람은 자신의 농지가 없어서 주운 이삭으로 배를 채워야 하는 최하층 빈민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밀레의 그림 속 여인들은 자기 밭에서 이삭을 줍는 게 아니라 남의 밭에서 품을 팔고 품삯만으로는 모자라 이삭을 줍는 가난한 아낙네들인 것이다. 그런데, 이들의 굽힌 등 너머 멀리 보이는 풍경에는 황금색으로 풍요롭게 빛나는 곡식 낟가리와 곡식을 분주히 나르는 일꾼들, 그들을 지휘하는 말 탄 감독관, 즉 지주의 대리인이 있다. 이 조용하면서도 드라마틱한 대조야말로 빈부격차를 고발하고 농민과 노동자를 암묵적으로 선동하는 것이라고 당시의 보수적인 비평가들은 생각했던 것이다.


사실 밀레는 정치적인 사람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그림에는 당대의 정치·경제적 현실이 반영되어 있다. 뛰어난 화가는 세상을 예리한 눈으로 관찰하고 재구성한 다음 화폭에 담기 때문에, 역사 속 경제적 변화가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그림에 스며들기 마련이다.


19세기 영국 화가 터너의 유명한 그림 전함 테메레르에는 해체될 범선을 끌고 가는 증기선이 등장한다. 산업혁명으로 인한 새로운 기계 문명과 저무는 옛 문명의 충돌을 극적인 이미지로 구현한 것이다. 게다가 터너는 산업혁명이 초래한 빠른 속도를 표현하기 위해 붓질을 이전 화가들보다 훨씬 거칠게 했다. 클로드 모네 같은 프랑스 인상파 화가들은 터너의 붓질을 계승해서 시시각각 변하는 빛과 대기를 묘사했다. 산업혁명이 사회 전체의 속도를 빠르게 하면서 미술에서 나타난 현상이었다. 사회 전체적으로, 증기기관차 등으로 인해 이동 속도가 빨라졌을 뿐만 아니라 분업으로 인해 생산과 업무 속도가 빨라졌다. 그 뒤에는 분업과 분업을 활성화하는 자유시장을 지지한 고전파 경제학의 거두 애덤 스미스가 있었다.


이처럼 미술가와 경제학자는 직·간접적으로 관련이 있었다. 채석장 노동자들의 열악한 상황을 묘사한 프랑스 사실주의 화가 귀스타브 쿠르베와 그 그림을 격찬하며 초기 자본주의 산업사회를 비판한 사회주의자 피에르 조세프 프루동처럼 절친한 친구 사이였던 경우도 있었다. 영국의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와 대공황 시대 미국 정부에 고용되어 우체국 벽화를 그린 수많은 화가들도, 직접 만난 적은 없을지언정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우체국 벽화 프로젝트는 불황 타개를 위해 정부가 나서서 고용을 창출하는 뉴딜 정책의 일환이었는데, 뉴딜이 바로 케인스 경제학에 기반을 둔 정책이었으니 말이다.


이렇게 미술과 정치·경제적 변동, 그 저변에 깔린 경제학과 철학의 흐름은 몇 겹의 고리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이 책은 그 고리를 찾아나가는 통섭의 여정이다. 학생들은 이 책을 통해, 오늘날 우리가 포털 뉴스에서 볼 수 있는 정치·경제·사회적 사건들과 변화들이 문화예술과 동떨어져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을, 미술에는 단지 아름다움뿐만 아니라 그 시대의 사회상과 생각이 담겨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이 책을 보면서 과거뿐만 아니라 우리가 사는 현재와 미래에 대해 고찰해 보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