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 만들기(Making a Miracle)」, 1995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로버트 루카스(Robert Lucas) 미국 시카고대 교수가 한국의 경제 발전을 연구한 논문에 붙인 제목이다. 1960년대 이후 한국의 경제 성장이 그 어떤 경제 이론으로도 설명하기 어려운 기적과 같다는 뜻이다. 실제로 한국처럼 단시일에 후진국에서 선진국 수준까지 오른 사례는 전 세계에서 찾아볼 수가 없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아프리카 빈국보다 국민소득이 낮았던 우리나라의 경제 규모는 반세기 만에 세계 13위(2014년 국내총생산 기준)로 올라섰다.
피원조국 설움을 딛고 눈부신 성장
한국이 1955년 국제금융기구인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WB)에 가입할 때 1인당 국민총소득(GNI)은 65달러로, 아프리카의 가나·가봉보다 낮았다. 전란(戰亂)은 외국 원조에 의존해 가까스로 이겨냈다. 전후 복구를 위해 원조금을 지원하던 미국국제개발처(USAID)는 한국의 경제 관리 능력을 ‘밑 빠진 독’이라고 혹평했다.
밑 빠진 독으로 끝날 수는 없었다. 산업화의 첫걸음은 1962년 박정희 정부가 시작한 경제개발 5개년 계획으로 뗐다. 영화 ‘국제시장’ 속 덕수(광부)와 영자(간호사)들이 1963년부터 대거 독일로 가 외화를 벌었다. 이 외화는 경제 성장을 위한 종잣돈이 됐다. ‘수출 주도형 경제 발전’을 성장 전략으로 잡은 정부는 1970년대부터 중화학공업을 집중적으로 육성하고 수출기업에 각종 특혜를 줬다. 건설기업들은 해외로 진출해 ‘중동 붐’을 일으켰다. 제1차 경제개발계획 마지막 해인 1966년, 한국의 연평균 경제성장률은 11.9%였다. 처음으로 연 성장률 두 자릿수 시대였다. 제2차 계획(1967∼1971년) 때 연평균 성장률은 10.0%, 제3차 계획(1972∼1976년) 때는 10.2%에 이르렀다. 수출 주도형으로 급속한 경제성장을 할 수 있었지만 동시에 그늘도 생겼다. 지금까지도 한국 경제의 주요 문제로 거론되는 대기업에 대한 경제력 집중이 그것이다. 삼성, 현대, LG, SK 등은 1960∼1970년대 정부 지원에 힘입어 크기 시작했다.
1980년대에는 대외개방을 하고, 1990년대 이후엔 정보기술(IT)·벤처기업을 적극적으로 육성하는 등 한국경제는 계속해서 또 다른 활로를 찾았다. 조선·반도체·철강·자동차가 수출을 주도하는 가운데 1996년 선진국 그룹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입성했다. 2009년엔 OECD 산하 개발원조위원회(DAC)에 가입하면서 세계 최초로 원조를 받던 나라가 원조 공여국이 됐다.
1인당 국민소득은 1953년 67달러에서 2014년 28,180달러로 증가했다. 국민총소득(GNI)은 1953년 483억 원에서 1,497조 원으로 3만 배 넘게 불었다. 제1차 경제개발계획을 시작할 때 1억 달러가 안됐던 수출은 지난해 5,730억 달러로 컸다. 수출·수입을 합친 무역규모는 현재 세계 8위이다.
‘제2의 도약’ 어떻게 할까
쉴 새 없이 달리는 동안 좋은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1973년과 1978∼1982년 터진 1·2차 오일쇼크는 석유 한방울 나지 않았던 우리에게 큰 충격을 줬다. 1973년 3.2%였던 소비자물가상승률은 1974년 24.3%로 뛰었다. 1997년에는 외환위기라는 전대미문의 위험과 맞섰다. 30대 그룹에 속하는 대기업이 무너지고 은행도 문을 닫았다. 대규모 구조조정으로 ‘평생직장’이라는 개념이 사라졌고, 외채를 갚을 돈이 없던 정부는 IMF에 손을 벌렸다.
2003년엔 카드사태로 수백만 명의 신용불량자가 양산됐다. ‘길거리 모집’을 통한 신용카드사의 무분별한 확장과 정부의 부실 감독이 빚은 일이었다. 2008년 미국 발(發) 금융위기로 세계 경제가 출렁였지만, 한국은 외환위기 이후 강화된 대외건전성을 방패로 다른 나라보다 비교적 이른 시기에 정상을 되찾을 수 있었다.
광복 후 70년을 맞은 2015년 한국은 전환기를 맞고 있다. 고령화사회(65세 이상 인구가 14% 이상)로 다가가고 있는 우리나라는 2060년이 되면 고령인구 비중이 40.1%가 돼 세계에서 두 번째로 늙은 나라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출산율은 1.23명(2010∼2014년 평균)으로 세계에서 네 번째로 낮다. 그만큼 경제활동을 할 수 있는 인구가 적어진다는 뜻이다.
한국 경제가 이제 저성장 국면으로 접어든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1961년부터 50년간 한국의 연간 경제성장률이 3%를 밑돈 것은 다섯 차례로 오일쇼크, 외환위기, 카드사태, 글로벌 금융위기 등의 특수한 이유가 있었다. 그마저도 충격을 딛고 1~2년 안에 경제가 빠른 반등에 성공했다. 하지만 2012년부터는 이렇다 할 외부충격이 없는데도 작년(3.3%)을 제외하고는 계속 2%대의 낮은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제2의 도약’을 위해서는 한계점에 다다른 기존 산업의 성장, 비정규직·정규직으로 분화된 노동시장, 세대갈등, 청년실업 등 풀어야 할 문제가 한둘이 아니다. 외환위기 직후 재정경제부 수장으로 경제정책을 이끈 강봉균 전 장관은 “한국은 과감한 개방 등 다른 개발도상국이 못하던 것들을 해내 선진국 문턱으로 올라설 수 있었다”며 “선진국들이 힘들어하는 구조개혁에 성공하면 다시 한번 도약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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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력 집중
소수의 대기업이 제품 생산 및 공급의 대부분을 차지하거나 소수의 자본가가 회사의 지분을 다량으로 보유하는 상태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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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국제개발처(United States Agency for International Development, USAID)
미국 국무성에 설치된 비군사적인 원조프로그램 수행 기관. 1961년 미국대통령 존 케네디의 제안으로 설치되었고 개발도상국에 개발 차관 기금 대출, 대외 경제 협력과 기술 지원 등을 담당하고 있다. 1960년대 한국 경제는 USAID 차관의 도움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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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원조위원회(Development Assistance Committee, DAC)
선진국의 개발도상국에 대한 원조정책을 조정하고 전략을 수립하는 OECD의 산하 기관. 한국은 2009년 11월에 가입하여 2010년부터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