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내용으로 건더뛰기

KDI 경제교육·정보센터

ENG
  • 경제배움
  • Economic

    Information

    and Education

    Center

클릭경제교육(종간)
전염병, 경제에 빨간불 켜다
박태희 중앙일보 선데이경제 기자 2015.07.29

기획재정부가 지난 6일 국회에 제출한 올해 추가경정 예산안에는 이런 별칭이 붙었다. 정부는 매년 1월부터 12월까지 1년 단위로 예산, 즉 나라의 수입과 지출계획을 짜고 이에 따라 재정활동을 한다. 그런데 도중에 이 계획을 바꿀 필요가 있을 경우 추경을 편성한다. ‘메르스 추경이란 말에는 올 2분기 창궐한 중동호흡기증후군(MERS) 때문에 경제활동이 매우 위축돼 있으니, 정부 재정을 긴급 투입해서라도 경기회복의 불씨를 살려야 한다는 절박함이 담겨 있다. 예산 규모도 무려 118,000억 원이나 책정됐다. 이 가운데 메르스 대응과 피해업종에 직접 지원하는 돈만 25,000억 원에 달한다.


 

관광·유통 산업 직격탄 맞아 

여기서 궁금증이 생긴다. 전염병이 경제에 주는 충격은 얼마나 될까. 정부가 긴급히 큰돈을 마련해 경제 회생의 불쏘시개로 써야 할 정도로 경기 위축이 심각한가.


메르스가 한국 경제에 주는 피해가 얼마나 될지는 현재로선 정확히 가늠하기 어렵다. 확산 기간과 희생자 규모, 소비심리 위축의 정도에 따라 피해규모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다만 적신호는 곳곳에서 감지된다.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이미 방한을 취소한 관광객은 수만명을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5월 일본을 방문한 관광객 수는 589만 명에 달했으나 한국을 찾은 관광객은 459만 명에 그쳤다. 엔화 값이 떨어지면서 한·일 간에 생긴 관광객 역전현상이 메르스 발생으로 심화할 수 있다는 얘기다. 특히 중국·홍콩·대만 등 한·일 관광업계의 큰손인 중화권 관광객은 사스의 기억 때문에 전염병에 매우 민감하다. 관광업계에선 중국 관광객의 소비가 10% 줄면 국내 수요는 15,000억 원이 줄어드는 것으로 분석한다.


유통업계도 비상이 걸렸다. 소비자들이 다중밀집지역 노출을 꺼리면서 백화점·대형마트의 매출이 급감하고 있다. 이마트 마케팅연구소 관계자에 따르면 메르스가 한창 기승을 부리던 6월 말, 이마트 매출은 전국 평균 20%, 수원·평택 등 메르스 위험지역 내에서는 50% 이상 줄었다. 유통업계뿐 아니라 화장품, 면세점, 항공운송, 호텔·레저, 외식업종이 줄줄이 타격을 입고 있다.


전염병이 경제에 주는 충격은 해외에서도 여러차례 입증됐다. 2003년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SARS·사스) 사태 이후 세계보건기구(WHO)에 의해 세계적 공중보건 비상사태가 선포된 것은 세 차례다. 2005년 신종인플루엔자, 2014년 소아마비 대유행과 에볼라(Ebola) 바이러스 확산 때였다. 이 가운데 경제에 가장 충격을 줬던 전염병 사례로는 사스와 에볼라 사태가 꼽힌다.


 

적극적 재정·통화 정책 필요 

2002~2003년 중국과 홍콩을 덮친 사스 공포는 이번 메르스보다 훨씬 심각했다. 당시 중국·홍콩에서 사스 감염자와 사망자 수는 각각 7,082명과 648명에 달했다. 사망자 급증이라는 사회적 충격은 곧장 경제적 파장으로 이어졌다. 중국의 20032분기 성장률(전년 동기 대비)은 전분기보다 2.9%p(10.8% 7.9%) 급락했다. 관광산업은 거의 문을 닫을 지경이 됐다. 홍콩으로 향하는 중국 관광객 수요는 58.5%나 급감했다. 홍콩은 20031, 2분기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다. 세계은행은 사스로 인한 홍콩의 경제적 손실을 최대 500억 달러(55조 원)로 추정했다. 한국개발연구원(KDI) 김성태 연구위원은 전염병 창궐로 활동이 위축되면 사람따라 돈이 흐른다는 경제 작동 원리가 멈추고, 경제도 중증 질환을 피하기 어렵게된다고 설명한다.



지난해 2월 서아프리카 기니 산림지대에서 창궐한 에볼라 바이러스도 사회적 공포와 경제적 충격의 대표적인 사례다. 시에라리온·라이베리아·나이지리아 지역으로 확산한 이 질병은 무려 48%에 달하는 치사율로 전 세계를 떨게 했다. 세계은행은 기니·라이베리아·시에라리온 3개국의 에볼라 바이러스 피해액을 1~8억 달러로 추정한다. 기니의 국내총생산(GDP)72억 달러에 불과할 정도로 이 지역 경제발전 수준이 낮은 점을 감안하면 치명적인 숫자다. 이 밖에 영국은 1998년 구제역 파동으로 300억 달러의 손실을, 1995년 광우병 파동으로 130억 달러의 손실을 입은 것으로 추정된다.


전염병이 소비활동과 소비심리를 동시에 위축시킨다는 점에서 경제적 피해는 일정부분 불가피하다. 다만 이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느냐는 정책 당국의 노력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과거 사스 유행기간(200211~20037)동안 국내에서도 소비 심리가 위축됐지만 적극적인 정책 대응으로 그 후 수출 증가율이 다시 증가하고 주가지수도 반등에 성공했다. 이번에도 경제당국의 대응능력이 시험대에 올랐다. 재정정책과 통화정책을 총동원해 메르스로 인한 경제피해 최소화에 나서야 할 때다. 어렵게 마련한 실탄인 추경을 적재적소에 빠르게 투입하고, 필요하면 금리를 낮춰 소비 진작을 유도해야 한다. 그간 국내에서는 엔저에 맞서야 한다는 금리인하 요인과, 미국 금리인상, 가계부채에 대응해야 한다는 금리 유지 요인이 맞서왔다. 그러나 메르스라는 돌발 변수로 상황이 달라졌다. 시장은 쪼그라든 내수경기를 되살리기 위한 강력한 경기 부양책을 기다리고 있다.



추가경정예산

예산은 한 회계연도의 수입·지출을 망라하여 편성해야 하기 때문에 한 해 한 번의 본 예산 편성으로 그치는 것이 원칙이다. 하지만 회계 연도가 진행되는 중 국내의 경제정세의 변화나 천재지변과 같은 돌발사태 등으로 예산을 변경할 필요가 있을 때 추가 또는 경정(更正, 바르게 고침)하는 예산을 편성할 수 있는데, 이를 추가경정예산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