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표>에서 ①, ②, ③이 각각 어떤 지표를 나타내는 것인지 추리해보자. ①은 1,820년 동안(1~1820년) 4.6배 증가하는 데 그친 반면, 이후 약 190년 동안(1820~2008년)에는 6.4배나 증가했다. ②의 변화는 더욱 극적이다. 기원후 1년부터 1820년까지 6.5배가 성장하는 데 그친 반면, 이후 약 190년 동안 무려 73.5배가 증가했기 때문이다. ③도 1820년을 기점으로 놀랍게 증가했다. 숫자에 밝은 사람이라면 ‘③=②÷①’의 관계도 알아챘을 것이다. 자료를 통해 알 수 있는 확실한 사실은 위 지표들이 과거 1,800년 동안 매우 느리게 진행되다가 최근 200년 동안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급격한 성장의 대가로 자원고갈에 직면
①은 지구상에 존재하는 사람의 숫자다. 1820년 약 10억 명이던 세계 인구는 2008년 약 70억 명으로 7배나 증가했다. 1798년 영국의 고전학파 경제학자 멜서스(Thomas Robert Malthus)가 『인구론』에서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지만, 식량은 산술급수적으로 증가하기 때문에 식량이 부족해지고 기근이 지구를 덮칠 것’이라고 예견한 대로 세계 인구는 놀라울 정도로 증가했다. 그러나 약 200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오히려 윤택한 생활을 누리고 있다. 그것은 인구보다 더 빨리 증가해버린 ②의 덕분이다. ②는 지구가 1년 동안 생산한 재화와 서비스를 달러로 측정한 값이다(이를 GDP라고 한다). 인구가 7배 증가한 최근 200년 동안 지구의 생산능력은 73.5배나 증가했으니 멜서스의 불길한 예언은 보기 좋게 빗나간 것이다. ③은 ②를 ①로 나누었으니 한 사람이 1년 동안 생산한 재화와 서비스의 총량을 뜻한다. 생산된 것은 지구 안에서 소비되므로 ③을 ‘한 사람이 1년 동안 사용할 수 있는 재화와 서비스’로 해석할 수 있다. 기원후 1~1820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1인당 소비 능력이 1.4배 증가했다. 반면 불과 최근 200년 동안에는 1인당 소비 능력이 무려 11.4배 증가했다. 1인당 소비 능력이 행복 수준을 반영한다고 가정하면 최근 200년 동안 지구에 살고 있는 인류의 행복은 놀라운 속도로 증가한 것이다.
그런데 급격한 성장으로 마냥 행복하기만 했을까? 인류가 기원후 1820년 동안 해내지 못했던 많은 것들을 산업혁명 이후 200년 동안 빠르게 완수했지만, 에너지를 비롯한 자원 고갈도 그만큼 빠르게 진행되었다. 산업혁명 이후 최근 200년 동안 인구가 7배 증가했고, 1인당 에너지 소비량이 10배 이상 증가했기 때문에 에너지 소비량이 최근 200년 사이 적어도 70배는 증가했을 것이다. 자원(resource)이라는 말이 ‘다시 일어선다’라는 라틴어 ‘resurgere’에 기원하고 있는 데서 알 수 있듯이 자원은 다시 회복되는 ‘지속성’이 중요하다.1) 그런데 경제성장에 따른 자원의 소비 속도가 지속성을 훼손할 정도로 빠르다면 인류는 언젠가 자원 고갈에 직면할 것이다. 원금 100만 원을 저금해두고 이자만 쓰던 사람이 원금까지 꺼내 쓰면 이자와 원금이 동시에 줄어 언젠가 통장 잔고가 0이 될 것이다. 이 사람은 성격이 급하고 현재를 미래보다 중시하기 때문에 자신이 저축한 돈을 물 쓰듯 쓴 것이고, 그 결과 말년이 초라해진 것이라면 온정주의가 아닌 이상 동정의 시선을 받지는 못할 것이다. 그러나 돈을 쓴 사람이 할아버지고 그 부담은 손자가 지고 있다면? 할아버지가 쓴 돈도 자신이 번 것이 아니라 할아버지의 부모에게 받은 것이라면? 나아가 우리 할아버지가 아닌 이웃집 할아버지가 돈을 많이 써서 우리 집이 현재 가난하다면?
언제 생산할 것인가, 언제 사용할 것인가
MIT 대학의 경제학과 교수였던 새뮤얼슨(Paul A. Samuelson)은 ‘무엇을 얼마나, 어떻게, 누구를 위하여 생산할 것인가’를 세 가지 기본적인 경제문제로 정의한 바 있다. 최근에는 여기에 ‘언제 생산할 것인가?’를 추가하기도 한다.2) 이는 석유, 석탄, 천연가스 등 재생 불가능한 자원을 이용한 생산에서 중요한 의사결정 요인이다. 만약 현재 세대를 위해 재생 불가능한 자원을 많이 써버려서 자원의 지속성을 걱정해야 한다면 그 부담은 고스란히 후세대가 진다. 언제 생산할 것인가는 자원을 언제 사용할 것인가와 관련이 있고 세대간 자원 및 부의 공평성(형평성) 문제로 이어진다.
자연 자본은 생명을 지탱해주는 생태 시스템의 총합으로, 지구의 탄생과 함께 인류에게 무상으로 제공되어 왔다. 우리는 자연 자본을 부모에게 무상으로 전해 받았을 뿐이고, 우리의 부모의 부모도 마찬가지다. 자연 자본은 인간이 만들어낸 기계 등 개인이 소유할 수 있는 생산 자본과 본질적으로 다르다. 따라서 어느 누구에게도 마음대로 쓸 권리가 주어졌다고 말하기 어렵다. 1820년 동안 우리 선조가 잘 간직해온 자연 자본을 산업혁명 이후 불과 200년 동안 우리가 너무 많이 활용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생산의 네 번째 중요한 문제인 ‘언제 생산할 것인가?’에 대해 ‘바로 지금! 모두!’라고 답할 수 있는 권리가 우리에게 있는가?

이기적이고 무한한 욕망을 가진 호모에코노미쿠스(Homo economicus)가 희소한 자원을 효율적으로 분배하기 위한 의사결정을 연구하는 학문이 경제학이다. 경제학자들은 위에서 언급한 세 가지 경제문제뿐만 아니라 세대간 부의 재분배 문제 같이 시간에 따른 효율적 의사결정도 ‘동태적 최적화’라는 이름으로 고민하고 있다. 그러나 아주 긴 시간에 대한 의사결정이 이론적으로 가능하다고 해도 정보의 문제를 비롯한 불확실성이 매우 크기 때문에 미래를 정확히 예측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심지어 내일의 일기예보조차 자주 틀리는 것이 현실 아닌가? 그럼에도 우리는 그들이 긴 안목을 갖고 인간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믿는 편이 마음 편하다.
1) 이기훈, 『자원경제의 이해』, 충남대학교출판문화원, 2013.
2) 김대식 외, 『현대 경제학원론』, 박영사,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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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에코노미쿠스(Homo economicus)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소비를 추구하는 사람을 말한다. 영국의 철학자 밀(John. S. Mill)이 이 용어를 처음 사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