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테이블에는 각종 색연필과 색종이들이 놓여있고 학생들은 삼삼오오 모여 전지에 그림을 그리고 있다. 한 쪽에서는 학생들이 시간을 체크하며 발표 대본을 연습하고 있다. 교실에서 책상에 가만히 앉은 학생은 찾아보기 힘들다. 소란스럽기도 했지만 학생들은 무언가를 만드는 데에 집중하고 열띤 토론을 벌이기도 한다. KDI가 매년 여름·겨울 방학에 개최하는 ‘청소년 경제교실’의 올해 수업 풍경은 이전의 조용한 수업 모습과는 사뭇 달랐다.
경제 개념을 활용해 아이돌 그룹을 만들자
2015 청소년 경제교실은 강의식 수업에서 탈피해 학생들의 주체적인 활동을 유도하는 PBL(Project Based Learning, 학생이 주어진 프로젝트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학습이 이루어지도록 하는 수업 모형) 수업을 전면적으로 도입했다. 수업은 시작부터 학생들에게 과제를 부여하고 스스로 계획해 문제를 해결하도록 유도했다.
양일간 모든 수업은 ‘우리 모둠의 아이돌 그룹을 데뷔시키자’라는 큰 주제 하에 네 개의 미션들로 구성되었다. 학생들은 엔터테인먼트 회사의 인턴사원이 됐다고 가정하고 첫 번째 미션으로 자기를 표현하는 키워드를 찾고 라이프 그래프를 만들어 자신을 소개했다. 이어지는 수업에서 회사를 대표할 아이돌 그룹을 직접 만들고, 아이돌 상품(스타의 얼굴이나 상징이 그려진 상품)을 개발했다. 이렇게 만든 아이돌 그룹을 어떻게 대중에게 홍보할 것인지 전략을 세우면 미션은 완료된다. 학생들은 각 미션마다 모둠별로 협동한 결과물을 발표하고 가장 잘 만들어진 아이돌 그룹에 대해 서로 평가했다. 미션이 끝난 뒤 토론 수업 ‘KDI 비정상회담’에서는 아이돌이 되기 위해 고등학교 진학을 포기하려는 학생의 사례를 두고 찬반 논쟁이 오갔다.
공은주(KDI) 학교경제1팀장은 “중학생들의 흥미를 끌만한 아이돌 그룹을 주제로 모든 수업을 기획했어요. 여기에 PBL 방식을 도입해 학생들의 참여를 높이고 수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했어요. 학생들이 과제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경제 개념을 배우고 모둠으로 활동하면서 서로 협동하는 법도 배우게 되리라 기대해요”라고 전했다. 그렇다면 아이돌 그룹을 만드는 것과 경제 개념을 어떻게 연관 지을 수 있을까? 학생들은 과제를 수행하며 자연스럽게 경제 개념을 만나게 된다. 아이돌 멤버를 선택할 때는 주어진 예산에서 매니저 월급, 트레이닝 비용 등을 고려하며 ‘기회비용’과 ‘합리적 선택’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 아이돌 상품을 개발할 때는 이 상품들이 ‘희소성’ 때문에 가격이 높다는 사실을 고려해야 하고, 상품을 만들 때는 필요한 ‘생산요소’들을 검토하게 된다.
자기주도적 능력을 기르는 PBL 수업
학교에서 자리에 앉아 수업을 듣는 것에 익숙한 학생들은 모둠별로 협동하여 과제를 수행하는 것이 처음에는 익숙하지 않았을 것이다. 주어진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학생들은 웹서핑을 하기도 하고 바닥에 머리를 맞대고 둘러 앉아 발표 내용을 꾸미기도 했다. 숱한 고민 후 발표시간에 선보이는 학생들의 참신한 아이디어들이 돋보였다. ‘우리잘해보죠’ 모둠은 자기소개 미션에서 각자 포스트잇에 적은 자기소개 키워드를 테트리스 블록 형식으로 배열했다. 각자의 개성이 드러나면서도 하나의 모둠으로 뭉치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아이돌 그룹 홍보 미션에서 ‘수민과 아이들’ 모둠은 아이돌 그룹의 홍보방안으로 팬들에게 찾아가는 서비스를 뉴스보도 형식으로 발표했다. 짧은 시간임에도 동영상을 제작하고, 종이인형으로 연극을 시연하는 모둠도 있었다. 발표 시간은 아이디어를 나누는 축제현장 같았다.
PBL 수업에서는 학생들의 참여를 이끌어 내는 것이 관건인데 여기에 멘토의 역할이 컸다. 강사 외에 각 모둠에는 멘토가 배치되어 학생들의 과제 수행시 해결 방향을 잡아주고 학생들이 어려움을 만나면 이에 대해 조언했다. 김수한(고려대 경제학과 석사과정) 멘토는 “처음에는 학생들이 서로 어색해하고 적극적이지 않아 과제를 많이 도와줬어요. 시간이 지나면서 학생들이 나서서 계획하고 역할도 분담도 하기 시작했어요. 미션이 진행될수록 제가 개입하는 부분은 점점 줄었어요”라고 했다. 권오현(고려대 경제학과 석사과정) 멘토는 “강의식 수업이었다면 이렇게 오랫동안 학생들의 집중과 흥미를 이끌어내지 못했을 겁니다. 과제수행을 위해 서로 협동해야 되기 때문에 학생들이 책임감을 느끼며 수업에 임한 것 같아요”라고 했다.
주최 측은 참가한 학생들을 대상으로 문제해결력, 발표 태도, 모둠활동 등 20개 항목에 대한 사전·사후 설문을 실시했다. 그 결과 수업 후 19개 항목의 평균이 향상되었다. 특히, 용돈기입장을 쓰겠다는 의지가 강화돼서 경제관념이 투철해졌음을 시사했고, 발표를 할 때 실수에 대한 두려움이 크게 줄어들었다. 황민경(연서중 2학년) 학생은 “학교에서는 기회비용을 교과서로만 배웠어요. 이번 경제교실에서 아이돌 그룹을 만들며 경제 개념이 실생활에 어떻게 쓰이고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어요”라고 했다. 한수빈(광장중 2학년) 학생은 “처음에는 낯가림도 하고 어색했는데 친구들과 협동하면서 내 의견을 논리적으로 말하고 설득하는 법도 배웠어요”라며 의사소통 능력도 향상되었음을 시사했다.
이번 청소년 경제교실은 학생들이 어렵고 딱딱하게만 느끼는 경제 개념을 친근한 주제로 접근했다는 점, 주입식 강의가 아닌 학생들이 직접 참여해 개성과 창의력을 발휘하며 자기주도적 태도를 가지게 했다는 점에서 청소년들에게 신선한 경제수업이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