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등학교 때 소외계층 중학생들을 대상으로 교육 봉사를 한 적이 있다. 학생들이 조금씩 배우고 성장하는 모습을 보면서 머릿속에만 머물러 있는 지식으로 다른 이를 성장할 수 있게 도와준다면 비로소 그 지식이 빛을 발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더 넓은 무대인 국제사회에서 우리가 가진 지식을 다른 국가에게 나누어 성장을 도모하는 KSP 사업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마침내 헝가리 YKSP에 문을 두드리게 되었다.
정부주도의 경제성장과 IMF 차관 겪어
헝가리는 1960년대 후반 공산주의 정권의 주도로 공업화가 진행되었다. 1980년대 말 자유시장경제로 전환한 뒤 혼란 속에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하다가 1990년대 후반부터 본격적인 경장성장을 시작했다. 그러나 2008년 금융위기 때에는 다시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하는 등 경제적으로 큰 타격을 입었다. 이때 IMF로부터 차관을 받았지만 2013년 전액을 상환하고 다시 성장세에 들어섰다. 이처럼 정부주도로 경제성장을 했다는 점과 IMF의 도움을 받았다는 점이 우리나라의 경제 경험과 유사하다. 그래서인지 이제 다시 성장 국면에 들어선 헝가리의 경제 성장에 참여한다는 것에 사명감을 느꼈다.
KSP 사업은 ‘중부유럽의 허브로서 도약하기 위한 헝가리 경제발전계획 수립’이라는 주제 하에 ①기업의 경쟁력 및 위험요소 평가기관 설립 ②공공 고용서비스 및 직업훈련 시스템 개발 ③미래 산업정책의 글로벌 메가트렌드 검토라는 세 가지 소주제를 다뤘다. 평가기관 설립과 관련한 회의에 참석해 녹취록을 작성하는 역할을 맡았다. 회의에서 가장 기억에 남았던 것은 기업평가에 대해 헝가리의 벤처캐피탈(Venture capital)이 신생 기업을 어떻게 평가하고 투자하는지에 대한 것이었다. 벤처캐피탈은 장래성이 있다고 판단되는 벤처기업에 투자하는 회사로 이러한 금융기관이 기업들을 평가하며 경제 성장에 크게 기여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고용서비스 및 직업훈련 개발은 한국의 직업훈련 정책과도 관련된 주제다. 연구보조 활동의 일환으로 구직자들의 직업훈련에 참여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내일배움카드제’에 대해 훈련대상자들의 수기를 읽고 조사한 적이 있었다. 실업으로 고통 받던 가장이 재취업을 통해 행복을 되찾았던 가슴 따뜻한 이야기들이었다. 마침 헝가리도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을 추구하고 있어 정책 결정자들은 국가차원의 직업훈련 개발을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고 했다. 헝가리에서도 취업을 통해 삶과 가정의 행복을 되찾을 사람이 있겠다는 생각에 가슴이 뿌듯해졌다.
우리가 나눈 지식이 빛을 발하기를
헝가리 산업에서 자동차 분야는 주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자료를 조사하며 헝가리 자동차 산업은 2013년 180억 유로의 규모로 헝가리 GDP의 약 10%를 차지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헝가리가 체코, 슬로바키아처럼 중유럽 자동차 산업의 허브 국가가 될 것이라는 전망에 걸맞게 현지전문가들은 ‘미래 산업정책의 글로벌 메가트렌드 검토’에 큰 관심을 보였다. 헝가리 자동차 산업에서 해외 본사가 기술개발을 담당하고 국내 중소기업은 부품을 조달하자는 KSP의 정책제안이 있었다. 현지전문가들은 자동차 산업 발전이 중요한 만큼 KSP 최종보고회가 있은 바로 다음날, 해당 액션플랜이 발표되었다. KSP 전문가들이 현지 경제 상황을 겨냥해 헝가리 관계자들의 공감을 얻어 냈고, 현지전문가들이 추진력 있게 사업을 운영한 덕택에 우리의 제안이 탁상공론으로 끝나지 않았던 것 같다.
출장 중 이동하는 시간을 이용해 회의 녹취록을 듣곤 했다. 회의에서 KSP 연구진들은 경제학 지식을 바탕으로 사안을 논하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헝가리 자동차 산업구조를 분석할 때도 실업 문제를 다룰 때도 경제학적 지식이 바탕이 되었다. 경제학은 책에 갇혀 있는 학문이 아니라 실생활에 넓게 적용될 수 있는 학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경제학을 더 깊이 알았더라면 헝가리의 경제 상황이나 회의에서 정책제안의 바탕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었을 것이다. 앞으로 국제개발협력의 꿈에 더 다가기기 위해서 경제학을 복수전공으로 이수하기로 결심했다.
우리나라는 ‘기적’이라고 불릴 정도로 눈부신 성장을 했다. 우리의 경험과 제도는 우리가 가진 일종의 지식이다. KSP 사업에서 경험했던 것처럼 이 지식이 어떤 나라에게는 주요한 정책으로 실현될 수도 있다. 마치 교육이 인간을 성장시키는 것처럼 국제개발협력으로 한 국가의 성장을 도모할 수 있을 것이다. KSP 사업을 통해 헝가리에 조금이나마 우리의 경험을 전한 것으로 그 지식은 빛을 발할 수 있었다.
